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프피 Mar 01. 2024

‘엄마’를 발음하는 게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태생 INFP의 혼자 사는 이야기_3

나는 아직도 앰뷸런스나 응급실을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피어난 것인지 말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카라 꽃을 봐도 생각난다. 거울을 들여다보다가도.

엄마. 나를 바보처럼 사랑한 사람.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의사의 허락을 받고 외출증을 쓸 수 있다. 명칭은 외출증이나 말하자면 외박증이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간 집에는 엄마가 와있었다. 병원으로부터 이틀간의 외박을 허락받은 건, 나를 크리스마스에까지 혼자 있게 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었다. 병원 앞 시장에서 사 온 검은 봉투들은 분명 양손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 많은 짐 중에는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있었다. 빨간색 목도리와 발목 위까지 오는 회색 어그 부츠.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그것들을 아주 잘 그릴 자신이 있다. 바다에 가면 늘 있는 파도처럼 기억을 뒤지면 늘 있는 형상이다.





엄마를 떠올리면 내 감정은 복잡해진다. 단언할 수 없다. 애도가 앞섰다가 연민이 되기도 하고, 연민이 앞섰다가 외로움만 남기도 한다. 살고 싶어 하면서도 스스로를 살리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했음이 답답하기도 하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남겨주지 않았기에 원망스럽기도 하다. 끝내 살리지 못한 자식을 원망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엄마는 내게 회전목마 같다. 노란색 따뜻한 불빛. 롤러코스터 같고 회전 컵 같은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안전한 곳. 그러나 목마는 같은 자리만 맴돈다. 회전목마에 올라있으면 나는 그대로다. 나를 둘러싼 세상만 바뀐다.






한 사람, 한 여성이 지친 채로도 붙들고 늘어졌던 인생의 이유가 될만한가, 나는.

나는 엄마가 어렵다. 십수 년을 보지 못한 엄마가 기적처럼 유령으로라도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을 지으려다 결국 아무 표정도 짓지 못하면 어쩌나.

살다가 힘이 빠지면 종종 주저앉던 나는, 일어날 때도 내 힘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잘 주저앉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매번 연연하지 말자며 걸어서 지나친다. 그게 좋은 걸까. 엄마가 있는 4층 중환자실 비상계단에서 울며 보내던 나의 새벽은 날이 갈수록 애틋해지는데.





작가의 이전글 갈색은 가을의 색이라 갈색인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