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트릭이다. 눈속임이다. 딱 이만큼의 따사로움과 선선함이 서로 으스대지 않고 공존하는 시간이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들이, 한낮에 눈을 감고 작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언제냔듯 서늘해진다. 겨울에겐 미안하게도 우리는 늘 그것을 마음의 준비 없이 만난다. 갈색이 완연한 가을빛인 줄 알지만 실은, 우리가 갈색을 인식할 때쯤이면 가을은 이미 저만치다.
가을에는 쓰는 일이 헤퍼진다. 아마도 훌쩍 가버리는 게 아쉬워 그 흔적을 미숙한 솜씨로나마 남겨두고 싶어서일 것이다. 지난주에는 작은 조카의 11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편지를 쓰다가 눈물이 고여버렸다. 생일 축하한다, 꼬물대던 게 이모만큼 커서는, 여전히 귀하고 소중한- 같은 마음을 적다가 운 건 아니었다. 이모가 힘들 때 너를 떠올리듯 너도 고민이 있거나 어려울 때 이모를 떠올리면 좋겠다는 마음을 적다가 울었다. 왜 울었나, 나는.
큰 조카의 한 살을 축하하며 선물했던 앨범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몫까지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새겼었다. 훗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부재와, 그로 인해 자기 몫이었던 애정 중 꽤 큰 부분이 공백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가 이 이모를 감시하길 바랐다. 사는 일에 비척거리다 보면 가장 먼저 해이해지는 게 가까운 이를 향한 애정인지라, 내게서 그럴 기미라도 느낀다면 양껏 서운해하고 원망하기를. 그 서운함과 원망이 다시 나를 나로 돌려놓을 테니까.
가을엔 가버린 것들이 선연해진다. 이미 가버린 것들에 절절해하다 정신 차리면 가을은 이미 가고 없다. 그러니 낙엽을 아무리 밟고 볕 냄새를 아무리 맡아도 가을은 아쉽다. 있을 때보다 가버리고 나서야 얼마나 곱고 좋았는가를 실감하게 하는 것이, 꼭 사람과 사랑을 닮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