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하고 소프트한
2022년 2월, 검은 호랑이의 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대규모의 러시아군이 침공해 들어왔고, 이 시각에도 우크라이나 군대와 러시아군이 각 전선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을 주목하던 사람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과 미국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남중국해, 또는 타이완 해협이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죠.
오히려 유럽에서 시작된 전쟁에, 많은 서방 지도자들이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마저 보였답니다.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기억이 아직도 유럽엔 남아있기 때문이겠죠.
뉴스에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했다" 라는 말입니다.
더하여 NATO 나 미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할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 는 이야기도 듣곤 하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뉴스에서 계속해서 '국제법 (International Law)' 라는 말이 나오지만, 도대체 국제법이란 뭘까요?
더하여 법을 어기면 잡혀가든지 혼이 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국제법을 어겼다는 러시아의 탱크와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땅을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정작 국제사회 국가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굴려야 합니다.
이쯤 이르면 '뭔 법이 이름만 거창하고 힘도 없니?'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우선, 그 '국제법' 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저는 모자른 면이 많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넓고 앝은 지식만이 있답니다~~ 굉장히 긴장되네욧 ^^;;; )
우선 먼저,
'법' 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음... 법....
저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론 살면서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단어에요.
먼저,
나를 옭아매는, 또는 구속하는 무엇' 이 대표적인 법의 이미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또는 '감히 법이 하지말라고 하면 행해도 안되고, 그런 행동을 하면 크게 혼날 수도 있을 것 ' 같은 이미지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사실 우리네 교과서에는,
뭔가 유들유들한(?) 의미 로도 '법' 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가령 '도덕 가득한 유교보이로 사는 법' 이라든지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감방에 가진 않습니다 ...... 물론 선을 세게 넘지 않는다면 말이죠~~)
교과서에서는 앞에 처럼
법적 구속력이 있고 지키지 않으면 감방에도 갈 수 있는 터프한 법 을 '경성법 (Hard Law)'
법적 구속력이 없는 법이지만 지키지 않으면 꺼림칙해 잠이 안오고 비난받을 수 있는 소프트한 법을 '연성법 (Soft Law)' 이라고 이야기한답니다.
그런데 이 법이란 것이 종이에 적혀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운전하면 면허취소' 란 내용은 법조문으로 정확하게 적혀있지만, 인도 여행 가서 길 막는 소들 막대기로 내쫓다간 사람들에게 진짜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은 법전에 쓰여있진 않습니다).
법이란 것이 원래 '어디에 적혀 있어야 법이지, 뭔 소리야? 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네, 저도 자기가 잘못해놓곤, 그런 규정 가져오라며 행패 부리던 갑질 상사가 갑자기 떠올라요 ㅜㅜ)
오랜 시절 동안 받아들여지던 ‘관습’ 역시,
현대 사회의 분쟁해결에 엄연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랍니다.
앞에서처럼
법률화된 법을 '성문법 (Statute Law)'
법률화 되지 않은 법률을 '관습법(Custom Law)' 또는 불문법 이라고 부른답니다.
지루하시겠지만~
마지막으로 국제법과 국내법을 살펴보죠.
단편적으로 모든 국가에는
국경이란 물리적인 제한선이 있답니다.
한 나라의 통제력이 미치는
영토, 바다, 하늘 등 가시적 영역이죠.
(물론, 해외에 위치한 재외공관, 운항중인 선박이나 비행기는 국경의 범위를 넘기도 합니다)
쉽게 생각을 하면,
이런 국가의 법적 관할권 내의 존재들 간에 적용되는 법은 '국내법 (Domestic Law)',
국가 관할권의 영역을 벗어난 외국적 존재들과 적용되는 법은 '국제법(International Law)' 이라고 합니다.
국가 관할권을 벗어난 존재는 무엇일까요?
먼저 국가간의 일 이 있을 거예요.
가령 지금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문제에서 푸틴이 전쟁이 아닌, '야야~~법대로 해' 라고 했다면, 이는 두 국가간의 국제법의 영역이 됩니다.
예전에는 이처럼 국가 간의 일들이 국제법의 주요 영역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은 다른 예도 있다는 것이겠죠!)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에서는 르완다 내전에서 50만 명의 학살 혐의를 주도한 '장 캄반다(Jean Kambanda)' 전 총리를 체포하고 종신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제노사이드 ...
단지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학살한 '반인류적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였죠.
이 판결은 여러모로 의미를 가집니다.
과거에도 국가들이 개인들에게 형을 집행하였던 일들은 있었지만, 이는 주로 승전국들 위주의 전범재판(뉘른베르크, 도쿄재판) 들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국가별로 법적 처분을 맡기던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 행위들을, 앞으로는 글로벌 공동체가 용인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단죄한 것으로 이 판결은 큰 의미가 있답니다.
(과거 르완다 학살 관련된 범죄자들 대부분은 르완다의 새 정부에 의해, 르완다 '국내법' 으로 단죄되었답니다. 캄반다의 경우는 르완다의 법적 관할권이 미치지 않던, 케냐로 도피 중에 체포되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의문이 들 겁니다.
캄반다는 개인인데 어떻게 ‘국제법의 영역’에서
책임을 물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날 국제범죄나 분쟁에서 국가와 국가 이외에도,
국가와 개인, 국가와 다국적 기업, 국가와 정부간 국제기구(IGO), 국가와 비정부단체(NGO), 심지어 테러단체 까지 ... 너무나 많은 복잡한 참여자들과의 법적 관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전통적인 국가 간의 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늘어나고 있죠.
(IS가 부숴버린 시리아나 이라크의 유적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는 누구를 고소해야 할까요?
IS라는 테러단체? IS 지도자들?
즐겁게 부쉈던 테러범들?
아무튼~~ 복잡한 문제입니다).
현대에는 이들을 통틀어,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 라는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이들의 존재와 참여 영역을 인정해줄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의 중이죠.
장황하게 설명하였지만,
위에 열거한 여러 성격을 보자면 일단 국제법은 '국가 간' 또는 '비국가행위자' 와 국가의 갈등을 조정하는 법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법(Public Law)'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하여,
아쉽게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강력하게 단죄할 수 있는 '강행규범' 들이 부족합니다.
(이는 '각 국가들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주권' 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 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위에서 분류한, '연성법(Soft Law)' 의 성격이 듬뿍 들어가 있지만, 또 르완다 사태 처리에서 보듯 처벌이 없는 것도 아니니 경성법(Hard Law) 의 성격도 가지고 있죠.
후에 설명드리겠지만~~
음..., 국제법은 또 구체적인 조약, 법안을 통해 문서로 남겨지는 성문법(Statute Law)의 성격이 강하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관습법(Custom Law) 영역 역시 엄연히 존재합니다.
적고 보니 조금 더 복잡해졌네요 ^^;;;
간단하게 정리하면, '국가의 관할범위를 넘어가는 국가 또는 유사한 존재들과 갈등을 규정하는, 때로는 터프하지만 유들유들하기도 한, 말과 글로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법' 이라고 타협해보면 어떨까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이렇게 부족하지만 소프트한 정의를 내리고,
다음은 국제법의 역사와 연원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올해 초에 이야기드린 기획 글들을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아 조심 스래 올려볼까 합니다. 다만, 저는 뼛속까지 완벽한 법학 전공자는 아닌지라..., 굉장히 쫄깃한 마음으로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하드한 응원과 소프트한 비판을 부탁드립니다 ^^
[도움 주신 내용들]
1. 정인섭, 『신국제법 강의 』, 2021 --> (국제관계 및 국제법 전공자들의 필독서, 두꺼워서 알게 되면 굉장히 뇌가 번쩍 뜨일 알찬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2. 송지홍, 『까칠한 정치, 우직한 법을 만나다 』, 2016 --> (법의 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놓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론서랍니다).
3. 이상돈, 『MT법학 』, 2011 --> (말 그대로 MT 다녀오는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법학입문서 입니다. 저 같은 법학 초보들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지~).
4. 조지프리드먼, 『다가오는 유럽위기와 지정학 』, 2020 --> (법학서는 아니지만, 현재 유럽의 문제점과 분쟁의 역사들에 대하여 잘 정리해놓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유머 있고 시크한 작가님의 필체가 마음에 들어요~).
5. 김창금, '대량 학살에 대한 유엔의 첫 단죄', 1998,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80907/1p9e970e.html) --> (국제사법재판소의 장 캄반다에 대한 판결 소식을 알린 기사입니다. 이 시기에 많은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이 기념비적인 소식을 전하였답니다).
6.Taarifa, 'How Prime Minister Jean Kambanda Poisoned Academicians', 2018, (https://taarifa.rw/how-prime-minister-jean-kambanda-poisoned-academicians/) --> (르완다 사태와 장 캄반다 총리의 행위들에 대한 취재 기사입니다, 심층적이고... 비극적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