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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Mar 04. 2022

문명인이라는 착각

그들이 바라본 바깥세계


<< 방벽 밖의 사람들 >>


영화 <글래디에이터> 첫 장면, 도나우 전선의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막시무스가 외칩니다. Roma Victor


블록버스터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장면은 회색 눈밭에서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로마군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도나우강 빈도보나 병영에서 마지막 전쟁을 맞은

로마군 장군 막시무스와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고, 보병들이 뒤섞여 난전을 벌이고, 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져 적들과 뒹굴며 마지막 사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피와 불꽃이 난무한 전장에서,

마지막 승리자인 로마 군단병들이 칼을 들고 외칩니다 ~


Roma, Victor !


영화에서는 철인황제가 로마의 마지막 전쟁을 마무리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로마의 방어선은 사실 카이사르의 갈리아전쟁 이후로  여러 황제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이었습니다.


로마는 이제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 발칸반도와 소아시아,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를 어우르는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황제들은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커다란 로마제국의 국경선이 생기고, 제국 안에는 이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게 됩니다.


(1)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동포, 로마 시민권자들  

(2) 제국이 커지면서 로마 체제에 들어온,

     이탈리아반도 밖의 시민권자들 또는 예비시민들

(3) 제국 방벽 밖의 사람들, 흔히 말하는 이민족들


제국은 이제 이런 사람들이 섞여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섞여 살면서 점점,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관습과 사고로 인해

크고 작은 분쟁들이 일어나게 되죠.


이는 로마 군단병들의

압도적인 무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제국은 이제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로마사 연구에 독보적인 작품들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 는 자신의 책, <로마인 이야기> 에서 이러한 로마법의 발전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1) 제1기 (BC 753년 ~ BC 150년),

지중해 패권을 지배한 로마인들의 시대.

이탈리아 반도의 라틴민족들을 중심으로  법률들이 만들어지던 시대.


—-> 이탈리아인을 위한, 이탈리아인에 의한, 이탈리아인의 법


(2) 제2기 (BC 150년 ~ AD 300년),

보편제국 로마의 시대,

다민족,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를 아우르는 로마법 시대로 이미 로마법 자체가 '국제법' 의 성격을 띠는 시기.


—->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에 의한, 로마인  


(3) 제3기 (AD300년 ~ AD 530년),

기독교와 오리엔트 법률의 시대,

기독교의 국교화 이후 법률이 이에 따라 변화한 시대.


—-> 예수님과 황제를 위한, 두 절대자에 의한, 두 절대자의



역사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제2기에 이르는 시기에 로마제국의 엘리트들은 이제, 너무나 커져버린 제국에 맞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각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 작품이 하나 탄생하였으니, '하드리아누스 황제' 가 그를 따르는 법률학자들을 갈아(?)넣어 만든 <로마법대전(Codex Justinianus repetitae Praelectionis)> 이 AD 131년에 탄생하게 됩니다.


음...
오해하진 말아야 할 것이, 대법전이 탄생했다고 해서, 기존에 로마에 법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초기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모든 성문법, 관습법들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정리하여 발간하였고,
이후에도 매년 단위로 이와 관련된 판결이나 보완되는 법률들은 기록되어 '공문서 보관소' 에 업데이트 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로마 제국의 대단한 점은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이 아닐까 해요.


로마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까칠하면서도 어마무시한 능력을 가진 팀장님형 황제였습니다 ㅎㅎㅎ 물론 밑에 사람들이 어떤 혹사를 당했을지는 ^^;;;


로마 사회는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상황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방벽 밖의 사람들, 로마가 아닌 세계의 사람들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우선 방벽 안에 위치한 '로마 시민권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시민법 (유스키빌레, Jus Civile)' 을 규정합니다.

(음~~(1)과 (2)번 시민들 입니다)


그리고,

제국의 경계선 밖에 사는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들'  

로마시민권자들사이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법인 '만민법 (유스겐티움, Jus gentium)' 을 만들어 공표합니다.

(방벽 밖 (3)의 사람들이 (1),(2)와 일이 있을때군요)


학자들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국제법의 컨셉을 잘 구현한 것이

로마시대의 '만민법' 이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는 조금은 오만(?) 하지만

'문명화된 시민들' 과 장벽 너머에 사는

'바바리안' 들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었죠.



<< 신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


<휴고 그로티우스 (Hugo Grotius, 1583 –1645)>, 근대 국제법의 아버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시는 분입니다.


시간을 아주 뒤로 감아서 ...

1625년, 프랑스 파리.


국제법 교과서 맨 처음에 항상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네덜란드의 델프트 출신의 열정적인 (너무 열정이 과해, 네덜란드 총독 암살 기도파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언도받고 드라마처럼 탈출에 성공한) 변호사 '휴고 그로티우스' 는 목숨을 걸고 프랑스 파리로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존경받는 변호사이자 역사학자,

외교관으로 조국 네덜란드를 위해 봉사했던 몸.

하지만 이제는 조국에서 수배령이 떨어진 범죄자.


새로운 터전인 파리에 정착한지 4년째인 1625년.


백수로 살기도 무료하고, 뭔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팠던 그로티우스는 예전 동인도회사의 의뢰로 작성하였던 수기 판본을 토대로 <전쟁과 평화의 법 (Du lure Beli ac Pacis)> 이라는 책 집필합니다.


별 기대없이 펴낸 책 한 권,

하지만, 그의 책은 이후 26쇄의 출판을 거치며,

유럽대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스웨덴의 국왕,
신실한 북방의 사자라 불린 '구스타프 아돌프' 는 이 책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성서와 함께 이 책을 머리맡에 놓고 보았다고 합니다.


<전쟁과 평화의 법, 1625년> , 센세이셔널한 이 책은 이후 근대 계몽주의의 교과서가 됩니다.


이 책이 왜 이렇게나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요?


아울러, 이 책이 어떻게 그로티우스에게

'국제법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게 해 주었을 까요?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로마시대 말기부터 시작하여, 근대 유럽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던 '기독교적 법률(신법)' 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제3기 로마의 법률시대에는

법률에 '기독교적 색채' 가 가미되게 됩니다.


이제 국왕은 종교를 수호하고,

그 종교는 국왕에게 신과 같은 권능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아쉽지만 당시에 신법의 세계는

이교도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심 넘치는 기독교도 전사들이
타국에서 이교도에게 무자비한 학살을 일으킬 수있었던 주된 동력 중 하나는,

'신의 전사이자 대리인'

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직자와 정치가들은 그들에게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

라는 면죄부만 내려주면 되었죠.
종교가 주는 '신의 전사, 대리인' 이라는 면죄부는 인간의 잔혹행위를 너무도 쉽게 합리화시켰습니다. 이는 그릇된 신학자들과 정치가들의 가르침이 한몫했었죠.


더하여 '군주국가' 라는 특수한 국가 상태에서

'전쟁' 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유럽의 국가들에게는,

‘힘은 곧 정의' 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국가 분쟁의 해결수단은 무력이었고,

신에게서 권위를 부여받은 국왕의 행위에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전쟁은 심지어

'신성한 문제해결의 수단'

으로 미화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신의 대리권자인 국왕들의 싸움에서는

결국 승리는 신의 뜻이 되었고,


'패배한 국가, 약한 국가는

 약함 그 자체가 나쁜것'


이라고 인식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루이 13세의 시대의 프랑스의 명재상,

리슐리외의 한마디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국가 간의 문제에서
약자는
언제나 잘못된 것이다!

신은 국왕에게 권력을 주었고, 국왕이 곧 국가이기에, 그 국가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신성하고 옳은 것이다 ???


그로티우스는 이런

'동네 뒷골목 양아치들만 사는 마을' 과도 

다를바 없는 유럽 각국의 상황을 보며 생각합니다.


'' 이라는 이름의 권위가

정말 정당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걸까?


돌이켜보면 이는 현재까지 이어져오던,

세상을 지배하는 규칙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야만인들조차 부끄러워할 정도로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전쟁이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

사람들은 하찮은 이유나
있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성급하게 무기를 찾는다.

일단 무기를 잡으면,
신의 법에 대해서건 인간의 법에 대해서건 아무런 존경심을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그 순간부터는 온갖 종류의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 는 허가를 받은 듯이 말이다.

< '전쟁과 평화의 권리' 제1권 내용 중에서>


이런 의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

그의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유럽인들은 벌써 신대륙으로 건너가 기독교를

모르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고 있었고,


서로 다른 종교의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바다에서 신의 이름 아래 죄책감없이, 서로를 노예로 삼거나 죽이고 있었습니다.


더하여,

프랑스의 용병대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고,


바다에서는 힘없는 나라의 배들이 힘있는 나라의 함선들에게 사로 잡혀, 당연한 듯 화물을 빼앗기고 선원들은 노예로 잡혀가고 있었습니다.


'무법천지' 와 같은 힘의 논리가 유럽을 지배하고,

내가 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하는 상황.


신의 권위를 업고 날뛰는 위정자들.

정의롭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비정상적인 일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하여, 그로티우스는 생각합니다.

.

'신이 없으며, 신은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

라고 감히 가정해도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말하는 일들은 일어날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권리' 제1권 서문 에서 >


어쩌면 신이 세상일을 관여 하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일을 신에 기대어 해결하는 것이 맞을까?


그로티우스는 로마 후반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이후로 이어져온

강력한 국가의 통치이념인 '신의 권위' 에 대해

조심스럽게, 하지만 과감히 말합니다.


신은 없으며,
신은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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