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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Mar 04. 2022

전쟁,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그로티우스, 전쟁을 논하다


<< 불변의 사상, 자연법 >>


선을 넘은 그로티우스는 이야기들을 이어나갑니다.


로마시대부터 주장되었지만

신법의 등장 이후에는 그 존재가 희미해진,

'자연법(lex naturalis)' 의 개념을 꺼낸 것입니다.


자연법은 불변이기 때문에
신도 그것을 변경할 수 없다.

<'전쟁과 평화의 권리' 제1권 에서 >


음... 그럼, 자연법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인간의 본성이나
물건들의 성질,
자연의 법칙 등...,

자연(Nature)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법칙들을 의미합니다.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듯,

따듯한 공기는 위로 오르고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듯, 2 곱하기 2는 4가 되듯...


우리네 삶에는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인간의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있는 법칙들이 존재합니다.


과거 중세시대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합리성과 신앙에 대한 고민이 있어왔습니다. (출처 : Youtube 2시간 철학 채널)


과거 그리스 시대의

스토아(Stoa) 학파 학자들은


인간들은
이러한 법칙들을 따를 수 있는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통하여
자연의 법칙들에 깨달을 수 있다


고 보았습니다


다만, 인간들이 타락한 이후에는

이러한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졌기에, '신의 법률'을 통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의 하나님 농장의 사과는 아마도,
하느님의 사유지에 물건이었기에,

아담과 이브는 먹으면 안 된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뱀의 사악한 꼬임으로 인해 타락한 인간들은
그 사과를 먹게 되고....

음...,
이제 이성이 오염되어 버린 인간이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의 법률'을 통한 캐어>가 필요하다는 그런 .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를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종교는
그런 인간의 행위를
<보조 하기 위한 수단>


이 됩니다.


이는 당대의 사제들의 입장에서는

팔짝 뛸 주장이었습니다.


동로마시대 이후의 법이란

인간보다는 종교가 항상 우선했기 때문이었죠.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사고를 한다?

신성한 예수님의 말씀이 적혀있는 '성경'과

여러 신학자들의 '말씀' 이 있는데?


감히 너희가 여기에 토를 달아?

조금은 재미없어 보이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AD 9세기부터 유럽 전역을 뒤덮은 이러한 종교 중심의 사상을 교과서에서는 스콜라(Schola) 주의라고 합니다.


이들은 수 세기의 시간을 유럽을 지배하였고,

당시에도 유럽 국가들의 중요한 통치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로티우스의 생각이 혁명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세상을 지배한 


그리스도 교인만을 위한 법

강자만을 위한 법


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힘과 종교가 아닌,

'도덕과 법률' 이라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하는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러한 국가 간의 정의는 당연히

'서로의 동의와 법률관계' 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더 이상 국가의 나약함이

죄악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었죠.


<< 전쟁, 그 정당성에 대하여 >>


전쟁은 필요한 것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

왕들과 귀족들의 화풀이 대상으로 여기며

전쟁이 합법적인 방법이라 여겨지던 시대.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과부와 고아들과 폐허만을 남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초기 기독교 사상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로마군단병으로 복무를 거부하는(그래서 심지어 사자밥이 되기도 하던) 교인들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왕에게 권위를 부여해
국가를 통치하기는 좋지만,

너무나
비폭력적인 종교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제국의 신학자들은 '전쟁' 을 신성한 행위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정당한 전쟁' 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성인으로 추서 된 베르나르두스 경우에는


이교도와의 전쟁은 살인이 아닌,
<악을 처단하는 성스러운 행위> 이다.


라는 무시무시하지만 강력한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상대를 향한 잔학행위, 전쟁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현대에도 종교적 면죄부는 종종 이용되곤 합니다.

자연법사상을 끌고 온 그로티우스 역시,

'전쟁' 이란 행위 자체를 완벽히 부정하진 않습니다.

왕, 그리고 왕의 권력에 상응하는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이나

자기들의 신하들에게 가해진
위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과 는 특별히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에게든지,

<자연법이나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 들에 대해서 처벌할 권리를 가진다.

왜냐하면,
처벌권은 처음에는 사람들 각자에게 있었지만시민사회와 법정이 설치된 이후에는 최고의 권력을 소유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의 권리' 제2권 에서 >


그로티우스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 당연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전쟁' 은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자연법'을 위반 하는 

<부당하고 문명적이지 않은 존재> 에 대해서만 

전쟁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왕 사람들이 사회라는 무리에

모여 살기로 결정한 이상,


개인들의 보복 권한은 역시

사회가 가져가야 한다도고 정의하였답니다.


(그가 예를 들기로는

 부모들에게 폐륜적인 행위를 하는 야만인들,

 사람을 잡아먹는 행위를 하는 야만인들,

 바다에서 약탈을 일삼는 해적들 ...


이 모두를 자연법을 위반한 행위,

인류 공통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원시시대 같으면,

이런 못된 짓을 하는 녀석들을

내가 가진 돌도끼로 때려버릴 수 있겠지만,


정식 사회를 갖추고,

법률에 따라 착하게 살아보려는,

우리들에게  돌도끼는 이제 맞지 않다는 것이죠 ).



그로티우스가 대단한 점은,

3권에 이르는 저서를 통해

전쟁의 성격을 자세하게 분석 했다는 점입니다.


우선,

1)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
2) 내가 피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잠재적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예방전쟁
3) 아무런 예고 없는 침략행위


등은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이

우리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먼저 전쟁을 할 것이다~

라는 논리 또한 부당하다고 이미, 400년 전에 그가 이야기를 했군요~~오우).




또한 새로운 땅에서 발견된

그리스도교를 믿지않는 이들이,


'어리석거나, 악하거나,

 잘못된 신들을 믿고 있다고 해서'


벌이는 전쟁 행위 역시 금지하였습니다.


양보하고 양보하여,

전쟁 개시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성급하게 전쟁을 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정당한 수단을 따르고,

폭력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과 정치인들은

'여성, 어린이, 비무장한 시민들, 포로들' 보호 의무 를 가지며, '무자비한 파괴' 역시 금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정당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약탈' 은 죄악시되어야 할 행위이고,

'평화로운 주변 이웃들을 늘리는 것' 이,

전쟁보다 낫다는 의견을 주장합니다.

어쩌면 자연법이란 저런 간단하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그로티우스의 이런 사상은

여러 학자들에게 퍼져 나갑니다.


특히 과거 잠자고 있던 '자연법' 이라는 사상은 여러 계몽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다듬어져, 결국 봉건주의 사회가 뒤집히는 시민혁명사상 으로 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그로티우스는 일생동안

약 50여 권의 책들을 집필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갑니다.


법학자로서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역사학자로서..., 자유로운 풍조가 가득한 네덜란드에서 자란 그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서 빛을 발하죠.


동로마제국 이래로

유럽을 지배해오던 신의 권위에,

그로티우스는 조그만 돌맹이를 던집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점점 커지게 되었죠.


어떻게 보면, 그가 태어난 조국,

네덜란드'의 현실 역시 그러했습니다.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

조그만 도시국가들.


영국, 프랑스, 독일, 바다 멀리 스페인까지....,

항상 주변국들의 등쌀에 시달리면서,


늘 불안한 안보를 고민해야 했던

네덜란드의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더 평화가 절실했습니다.


그가 자연법사상을 꺼내어

바다의 자유로운 이용을 주장하고,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전쟁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신앙을 가진 후 더욱 잔인해진 인간사회를 비판한 것은,


어떤 측면에선 작은 국가,

네덜란드가 세계질서에서 주권국가로 살아남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일이기도 했답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했을까요?


아쉽지만, 혁신적이던 그의 주장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되게 됩니다.


유럽에 분 제국주의의 바람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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