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명과 암
안녕하세요.
슬프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30일 차에 들어서려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 측은 전투원만 만 명 단위 이상의 사상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벌써 수 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발생한 상황이죠.
오늘은 지루한 이야기에서 조금 사이드로 벗어나서, 실질적인 우크라이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많은 주변분들이 물어봐 주셨답니다.
도대체 국제사회는 뭘 하고 있냐고?
(음..... 저는 항상 말씀드리지만 소심한 작가적 시점에서,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반영하여, 약간의 일탈을 하여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
많은 분들이 이번 전쟁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겁니다.
'저렇게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유엔군은 왜 개입을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네 머릿속에는
약간의 이상적인 이미지들이 있답니다.
악당들로 인해 난장판이 된 도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인과 경찰들,
그리고 어디선가, 하늘 멀리에서 달려온 히어로들이 복잡한 상황들을 정리해 줍니다.
마블의 어벤저스,
워너브라더스의 저스티스리그 ....
는 물론 환상이긴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최소한 파란 모자를 쓴 UN군,
이나면 적어도 성조기를 날리는 미군이 나타나면,
세상에 해결 안 될 일들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진 않습니다.
일단 이러한 군인들이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국가의 3대 구성 요소,
국민, 영토, 주권(Sovereign)'... 이 있기 때문이죠.
그중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눈에 보이지 않는 '주권' 이 있습니다.
주권이란 뭘까요?
어려운 단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국가라는 하드웨어가, 독립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소프트웨어를 의미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리,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권력,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
을 가지게 하는 무엇인가라고 합니다.
사실 이 주권이라는 것이 국민에게 오기까지도
많은 역사적 시간이 걸렸답니다.
(이 내용은 많지만 그건 번외편에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기에~~ 그로티우스 뒷 이야기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주권' 이란 것은 어느 나라에게나 저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국제사회는 어떨까요?
아니나 다를까,
국제사회 역시 이 '주권' 은 불가침의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국제연합(UN) 헌장
<제1조 2항 7조> 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적어놓고 있죠.
'어떠한 국가의 자국 관할권 내의 사항에 대하여
유엔이 간섭할 권한이 없다'
< 제1조 2항 7조 (주권면제의 원칙)>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국제연합에 부여하지 아니하며,
또는 그러한 사항을 이 헌장에 의한
해결에 맡기도록 회원국에 요구하지 아니한다.
다만,
이 원칙은 제7장에 의한 강제조치의 적용을 해하지 아니한다.
역사를 뒤로 돌려,
1945년의 8월 15일.
끝나버린 세계대전이 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불과 30년 전에 전쟁에서
군인들은 기관총 하나만 있으면,
수 백명의 사람들이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전장에 뿌려진 독가스 연기 아래서, 병사들은 살충제 맞은 벌레들처럼 발버둥 치다가 죽어갔죠.
그리고, 이제 하늘 위로 거대한 폭격기가 날아다니면서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가리지 않고 폭탄을 떨어뜨립니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적국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합니다.
그 결과물로 종국에는
사람들의 입을 벌리게 만든 거대 무기가 탄생하죠.
수 천년 동안,
지구 안에 깊이 봉인되어 있었던 지옥의 신, 플루토의 돌맹이의 힘을 가지게 된 인류는 수 십만 명의 사람들을 한 번에 사라지게 만들 수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핵무기가 등장한 것이었죠.
아무쪼록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이제,
세상 사람들은 무언가 중대한 깨달음을 얻기 시작합니다.
다음 전쟁에선 정말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제 전쟁은 과거처럼 전선의 군인들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한 번 실패하였던
국제기구의 설립이 다시 논의됩니다.
그리고 이전 '국제연맹' 보다 조금 더 강력해진
'국제연합(UN)' 이 탄생되게 되죠.
두 번의 전쟁으로 정신을 바짝 차린 인류는 이제
국제연합헌장에 명시적으로 기입합니다.
<제1장 2조 3항 (분쟁의 평화적 해결) >
모든 회원국은 그들의 국제분쟁을,
국제평화와 안전 그리고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아니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한다.
< 제1장 2조 4항 (무력행사의 요건) >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1)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2)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
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
이제 국제사회는 해석이 모호했던
'전쟁' 이라는 행위에 대해 규정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앞으로 국제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어떤 분쟁이든 평화롭게 해결할 것,
더하여,
타국의 영토나 주권을 침해하는 '침략전쟁' 과 '국제연합의 목적에 반하는' 경우에만 무력행사가 가능하다고 적어놓은 것이죠.
그리고 드디어,
전 세계가 같이 인류 공동에 적에 대한 몽둥이질이 가능하다는 것을 규정합니다.
< 제7장 42조 (국제연합의 무력행사) >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할 것으로 인정하거나,
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조치는
국제연합회원국의 공군·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봉쇄 및 다른 작전을 포함할 수 있다.
즉, 깡패 같은 국가가 나타나서
(1) 남의 나라 영토나 주권을 침해한다거나,
(2) 국제연합의 목적에 반하는 나쁜 짓
(2조 4항의 내용) 을 하고 다닐 경우에는,
유엔헌장 <제7장 42조> 에 의거해서
깡패국가의 따귀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이죠.
(오우~~ 세상에나!)
여기서 두 가지의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렇게 같이 깡패 나라의 따귀를 때린다면,
처음 이야기한 각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주권은(?)'이라는 의문이 들 거예요.
이는 처음 보았던 유엔헌장 <제1조 2항 7조> 의
마지막 단서조항에서 이야기되어 있습니다.
'제7장에 의한 강제조치 적용을 해하지 아니한다.'
는 내용이 그것이죠.
다시 말해,
"당신네들의 주권은 존중해 주겠지만,
깡패짓 하면 유엔이 혼낼수 있다는 것을 잊지마라!'
는 조금은 무시무시한 국제법적 근거가 됩니다.
이 조항을 지금의 상황에 넣어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황에 대한 해석을
조심스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러시아는 현재 <국제연합> 가입국이고
국제연합 헌장을 지켜야 할 의무가 존재합니다.
더하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행위는 ~
음, 누가 봐도 제2조 3항과 4항을 위반한 것이네요.
아무리 미운 놈이 옆에 있어도,
평화적으로 해결을 해야 했고 (제2조 3항)
그 우크라이나의 미운 짓이
러시아 영토를 침략하거나
주권을 상하게 한 것도 아니니,
전쟁의 명분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제2조 4항).
그렇다면, 두 번째 의문.
러시아는 유엔에게 뺨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
입니다.
유엔의 정신에 입각한다면, 정의의 유엔은
“이런 극악무도한 깡패국가~용서치 않겠다!”
라고 하면서 등장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바로 저 <유엔헌장 7장 42조> 때문이죠.
조문에는
'안전보장이사회는 ~~
인정한 경우 ~~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네,
유엔에는 '안전보장이사회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UNSC)) 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전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결정기구입니다.
안전보장이사회에는
총 5개의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이 존재합니다.
슬프게도 상임이사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승전국 위주로 만들어졌죠.
이 상임이사국은 어마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 중 하나가 바로 거부권(Vito) 이기 때문입니다.
즉,
유엔의 다른 국가들이 어떠한 제안을 만들어 난리를 쳐도, 이들 다섯 국가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질적인 행동이 불가능함을 의미합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상황이
이번뿐만은 아니었답니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에 규탄에 대하여,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철수 촉구에 대하여는,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였죠.
조지아 사태에 대한 유엔의 참관 요구는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조금은 냉혹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 중 하나인
'UN군은 어디에' 라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아요.
러시아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고,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유엔군은 파병될 수 없는거죠...
이는 사실 국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유엔의 이런 구조를 보았을 때,
1950년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군의 도움을 받은 것은 어떻게 보면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2호 (1950년 6월 25일) ~ 제84호 (7월 7일),
는 전무후무하게 유엔이 국제사회에 단합된 힘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남한 정부에 유엔군이 병력 파견을 의결할 때, 구 소련(현 러시아) 역시 상임이사국이었지만, 당시에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상임이사국인 중화민국(대만)을 정통 중국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아예 회의 자체를 참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다행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더하여,
민주진영이었던 중화민국이 당시에는 상임이사국이었던 것 역시 천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공산권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상임이사국 입니다만...)
이 두 가지의 기막힌 상황이 무너져가던 대한민국 정부를 결과적으로 구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고 있으면,
한 나라의 운명이란 전적으로 그 나라 국민이나
지도자의 무능의 결과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러한 우연의 연속들이 서로 작용하는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보곤 합니다.
물론,
유엔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구조적인 상황에서도 굳건히 저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보면서, 그들의 의지가 이런 운명을 바꿀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들구요.
아무쪼록,
이 전쟁이 빨리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