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일으키는 법
지금까지 나의 '생활 개선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계획을 총 4개의 글(<나는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 <천 리 길도 계획부터(1), (2), (3)>)에 걸쳐 설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뿐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월 16일이다. 그리고 첫 번째 글(<나는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을 구상하기 시작한 시점은 2월 1일이다. 그때는 말하자면 시작의 시작 단계였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도 전이었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의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는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작성할 때까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네 번째 글을 완성하면서 이제는 부딪혀야만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가 신청'을 할 때가 됐다. 그리고 결과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다행히 한 번에 심사를 통과했다. 정말로 기뻤지만, 동시에 막막해졌다. 신청서에 뭐라고 써서 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프로젝트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마쳤으니 이제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사실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게다가 계획에 대한 설명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작가 신청 & 승인'이라는 관문을 거쳐야만 했던 탓에 계획 수립과 본격적인 실행 사이에 텀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물론 작가 심사를 통과할 때까지 손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계획을 구상할 때까지만 해도 빠르게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에 2월 2일부터 바로 일정 관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때는 모든 게 불투명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작가 신청이 점점 미뤄지자 생활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과만 말하자면 성공적이었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얼떨결에 시작한 베타 테스트였다고는 해도 보고는 제대로 하겠다. 지난 글(<천 리 길도 계획부터(3)>)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내가 하루 단위의 일정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 앱은 '투두메이트'와 'ATracker' 두 가지이다. 지금부터 후자는 편의상 '타임 트래커'라고 칭하겠다. 이 두 앱에 남은 기록을 토대로 지난 2주 동안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문제를 개선하면 좋을지 구상해 보았다. 먼저 타임 트래커 기록을 공개하겠다.
나의 생활을 이렇게까지 낱낱이 공개해도 되는 걸까...? 걱정이 들지만 지금으로선 더 나은 보고 방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저 기록은 빠뜨린 것도 많고 정확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30분 미만으로 소요된 과제는 기록에서 제외했다. 나는 하루 평균 2분 동안 샤워하는 사람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다.
아무튼 위 데이터와 투두메이트의 기록을 바탕으로 내 생활 습관의 문제점을 몇 가지 추려보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저녁 식사 시간이 늦고 불규칙하며 기록이 적다.
2. 취침 시간이 늦고 불규칙하다.
3. 생산적인 활동(하고 싶은 것들)이 적고 빈둥거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
4. 일간 계획 작성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 문제점들에 대한 부연 설명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서 쓰도록 하겠다.
저녁 식사 시간이 늦고 불규칙하며 기록이 적다.
먼저 첫 번째 문제점이다. 내 타임 트래커 기록을 살펴보면, 점심 식사 시간은 비교적 잘 기록이 되어있고 시간대도 안정된 것에 비해 저녁 식사 시간은 불규칙하고 시간대가 너무 늦은 데다 기록 자체가 적다. 추측컨대 야식과 저녁의 경계가 흐릿한 탓에 기록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7~9시 사이로 저녁 식사 시간을 당기도록 노력하고 당기는 데 실패하더라도 기록은 꾸준히 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관리 없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선에서 고쳐보기로 했다. 이미 하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취침 시간이 늦고 불규칙하다.
마찬가지로 내 타임 트래커 기록을 살펴보면 기상 시간은 후반부로 갈수록 12시 내외로 안정되고 있는 반면에 취침 시간은 매우 들쭉날쭉하다. 기상 시간은 알람을 5분 간격으로 10개 정도 설정해 두면 어찌어찌 관리가 되지만 취침 시간은 억지로 눕는다고 해서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참 난감하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의 원인으로 지나친 핸드폰 사용을 거론한다. 나는 불면증은 아니지만 잠들기 직전까지 핸드폰을 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책을 펴면 약 5분 내로 잠드는 버릇도 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어떨까?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하는 대신 독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늦은 취침 시간은 기상 시간을 앞당기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다. 따라서 목표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기상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오전 11시에 기상해서 오전 3시에 잠드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경험상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어렵기에 기상 시간을 15분 혹은 30분 단위로 쪼개서 천천히 앞당기기로 했다. 그리고 독서 시간은 오전 2시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으로 결정했다.
사실 '밥 규칙적으로 먹기'와 '일찍 일어나고 자기'는 처음부터 내 '지키고 싶은 것들' 목록에 있던 것이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엄격하게 관리하기는 까다로울 것 같아 관리 목록에는 제외했지만 식사 습관과 수면 습관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투두 리스트로 따로 체크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신경을 기울이기로 했다.
생산적인 활동(하고 싶은 것들)이 적고 빈둥거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실망스러웠다. 브런치 작업 평균 시간 57분, 독서 평균 시간 17분을 합치면 대략 1시간 14분이다. 야심 차게 '이제는 달라지겠노라' 선언해 놓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한 시간 남짓이라니. 하지만 익숙한 일이다. 나는 ADHD다. 매사에 금방 흥미를 잃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면 한다.
나는 계속되는 자신과의 싸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목표를 이뤄내는 모습이 아니라, 수십 수백 번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끝내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요한 건 한 번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다. 꺾이더라도, '다시 일어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계속해서 다시 일어나는 한 삶은 끝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쨌든 실망은 접어두고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경험상 아무리 계획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무언가에 대해 최소한은 정해두지 않으면 결국엔 '안 하게 된다.' 이번에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뭔가를 하겠다고만 했지 얼마나 할지에 대해서는 정하지 않았다. 아직 시작해보지도 않았기에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충 경험해 봤으니 목표치를 설정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일단 3시간으로 정했다. 한 시간에서 갑자기 3시간이라니 너무 무리한 목표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내 타임 트래커 기록을 보면 외출 일정이 길게 있었던 날과 기록이 거의 없는 날(이 날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뤄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을 제외하면 이미 평균적으로 두 시간 이상은 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마냥 낙담할 만한 결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걱정되긴 하지만, 꿈은 크게 가지라 했으니... 게다가 한 번 목표치를 정해놓으면 그 이상은 절대 안 한다. 그래서 일단 3시간으로 정해놓되 목표 달성에 실패해도 너무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일간 계획 작성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천 리 길도 계획부터(2)>에서 타임 테이블을 통해 일간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나온다. 원래는 전자 다이어리에 작성한 일간 계획과 실제 타임 트래커 기록을 비교하면서 계획의 방향을 수정해나가려 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시간 단위의 계획은 지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식사나 수면 시간 외의 활동은 시간대를 설정하지 않고 목표치(예를 들어 3시간)를 채우기만 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이게 익숙해지면 다시 도전해도 괜찮을 것이다. 따라서 투두 리스트의 '내일 타임 트래커(일간 계획) 작성하기' 항목을 그냥 '타임 트래커 작성하기'로 바꾸기로 했다. 즉, 기록만이라도 열심히 하자.
여기까지가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한심한 결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 수준을 감안하면 성과 또한 많았다고 본다. 그것을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정 관리 및 기록은 비교적 잘해나가고 있다.
2. 기상 후 루틴이 잡혔다. - 기상 후 30분 정도 쉬었다가 3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오고 30분 정도 밥을 먹고 씻는 습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
3. 생산적인 활동이 아직 적긴 하지만 시작하는 데 성공했다.
말 그대로이다. 타임 트래커와 투두메이트 기록을 꾸준히 남긴 덕에 좋은 데이터를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집중을 요하는 생산적 활동에 대한 습관은 잘 형성되지 못했지만 '기상 - 산책 - 식사 - 씻기'로 이어지는 습관은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 동안 브런치 글을 5편 완성하고 책을 한 권 다 읽었다.
사실은 나, 잘하고 있는 거 아닐까?
사실 '잘한다'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ADHD 환자들의 특성 중 하나는 타인의 부정적인 말과 계속되는 실패 경험으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신을 좀 더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 심리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적절한 보상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이는 ADHD 환자들에게 특히나 중요한데 이 또한 다음에 다뤄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상관없다. 내가 칭찬할 만하다 생각하면 칭찬해 주자! 아니, 칭찬할 만하지 않더라도 칭찬해 주자! 적어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 남은 것에 대해서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