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후, 나는 나의 퇴사 소식을 지인들에게 알렸다. 한 친구가 그 소식에 놀라 차로 3시간을 달려 내가 사는 곳까지 와주었다. 친구는 일단 내가 그만둔 것에 대해 놀랐고, 내가 그 사실을 미리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서 주변에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은, '왜, 도대체 왜 그만뒀냐'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나에게 또 물었다. 왜 그만뒀냐고, 그렇게 힘들었냐고. 직장동료나 다른 주변인들이 그만둔 이유를 물어봤을 때는 "힘들어서요", "쉬려구요"하며 간단히 둘러댔다. 내 안에 괴로울 정도로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은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안의 생각들을 친구에게는 어떻게든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각케이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구의 질문에 답하며 틈틈이 내가 왜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했다.
친구: 사람들이 싫었어? 직원들이?
나: 아니 우리 부서 사람들 다 좋았어.
친구: 그럼 일이? 민원이 너무 많아?
나: 민원은 진짜 많았지, 민원 때문에 정말 트라우마 생겼어. 일은 정말 힘들었어.
친구: 그럼 부서를 바꿔달라고 하지.
나: 과장님이 000로 바꿔준다고 했는데, 그냥 그만두겠다고 했어.
친구: 뭐! (이런 미친..) 000로 가지, 거기 완전 꿀인데. 내가 거기 있었잖아.(친구는 15년차 공무원이다)
나: 정말? 근데 그때는 그냥 빨리 그만두고 싶었어.
친구: 나한테 한 번만 좀 미리 물어보지. 너가 어떻게 들어간 건데..
000부서가 꿀이었다는 말에 나는 잠깐 흔들렸다. 퇴사 후 생계에 대한 불안함이 슬금슬금 올라오면서 이렇게 흔들리는 때가 가끔 온다. 조금만 더 다닐 걸 그랬나, 1~2년만 더 버틸걸 그랬나, 하는 생각.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면서 그만둘 때의 내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본다.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떠올려본다.
일은 정말 힘들었다. 기피부서이기도 했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았을 때 모두가 나를 걱정했다. 생각대로 정말 끔찍했다. 민원이 엄청났고, 하루종일 민원을 상대하면 정작 내 업무는 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런데 막상 내가 퇴사를 생각했을 때는 일이 좀 한가해진 이후였다. 또다시 바쁜 시즌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퇴사 당시의 업무는 이미 익숙하고 수월해져 있었다.
부서 직원들은 모두 좋았다. 내 옆자리 직원과는 나이차가 있었지만 은근히 코드가 잘 맞아서 틈틈이 쓰잘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곤 했다.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우리 팀 직원들은 싫은 소리 하나 없이 서로서로의 일을 잘 봐주었다. 내 나이 또래의 다른 팀 직원과도 오며 가며 잠깐의 수다를 할 수 있었고, 몇 안되지만 사무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의 팍팍한 공무원 조직 생활을 그나마 지탱해 주었다.
친구: 그럼 왜.. 왜 그만둔 거야. 사무실 사람들도 좋고, 일도 익숙해졌고, 부서도 다른 데 보내준다고 했다며..
나: 나는 그냥 이렇게 살기가 싫었어.
친구: 뭐가
나: 하루하루 그냥 버티면서. 내가 다른 부서 가서 좀 편하게 있는다고 해도 고작 1~2년 후엔 또 다른 부서에 가겠지. 그렇게 잘 넘겼다 하고 또 버티고 버티면 내가 어느새 50이 돼있지 않겠어? 그럼 그때 나는 너무너무 후회를 할거같애. 그때 가서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산 거지? 할거같애.
친구: 그래.. 근데 다들 그냥 그렇게 버티고 살아.
나: 그게 싫어.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게.
마흔에 객기를 부린 걸 수도 있다. 그 나이에는 그냥 자리하나 있는 걸로 만족하고 다니는 게 맞는 길일수도 있다. 그런데 계속 반항심 같은 게 들었다. 비빌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답답했다. 지나면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인생인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그저 안정적인 월급을 위해 버텨야 한다는 게 숨막혔다. 모두가 그렇게 사니 받아들이라는 것은 더 싫었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게 맞는 길이든 아니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내 시간을 내 계획대로,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었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막상 나와서 살아보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 퇴사한 걸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나는 다른 인생을 시도해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했고, 두렵지만 이제 나를 믿고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