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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Nov 18. 2023

퇴사 후 이것은 실험의 시간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퇴사한 지 한 달이 조금 못 되었다.

퇴사하고 하루하루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을 누리고 살아가니 내가 언제 직장인이었나 싶다. 퇴사 후 몇 개월은 지난 것 같은데 따져보니 한 달도 안 되었다. 지금의 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며,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쓰고 있다.


아침과 점심을 잘 챙겨 먹고, 낮에는 햇살을 받으러 공원 산책을 나간다. 이제는 날이 추워져서 사람이 없는 공원을 걷고, 날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기며 사진으로 담는다. 일상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다채롭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아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 아이의 하루에 대해 세세하게 알아간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사춘기 초기에 접어든 5학년 아들과 같이 초콜렛을 먹으며 산책을 할 수도 있다.




잘 먹고, 아이들과도 더 가까워지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살고 있으니 지금 너무 행복하지만 이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기까지 꽤나 힘들었다. 퇴사 후 얼마간은 현실공포가 몰려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음에도 시작을 못하고, 그만둔 지 며칠 만에 다시 채용정보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간 살아온 직장인으로서의 삶의 모드를 단번에 바꾸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나도 오랫동안 유지했던 직장인의 삶.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꽤나 오래 하고 있었을테니.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불안함이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살고 싶은대로 한번 살아보자고 호기롭게 퇴사해놓고, 쉬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불안함이 한바탕 크게 지나가고 나서 나는 지금의 이 시기를 '실험의 시간'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실험

1. 실제로 해 봄. 또는 그렇게 하는 일.

2. 과학에서,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함.

3. 새로운 방법이나 형식을 사용해 봄.


그래, 나는 한 번 뿐인 내 인생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보는 실험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이들어서 이런 실험의 시간을 가지면 늦었을텐데 지금이라도 이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매일매일 지금의 내 것이 된 하루에 감사하며 다른 모드로 살아보자.


실험 결과가 어찌될 지는 나도 궁금하다. 과연 내가 원하는대로 집에서 일하면서 돈도 벌고,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내 것처럼 쓸 수 있을까.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역시 직장 밖은 지옥이구나 하면서 다시 다른 직장을 찾아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럼 그 때는 또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다니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대로 살아봤는가 이다. 남에게 보여지는 대로 맞춰 살지 않고, 내가 선택한대로 살아봤는가.


그러니 두려워말고 이제 실험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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