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바게트의 탄생 기원에 관한 이야기
아직도 프랑스 전역에서 초당 320개가 팔린다는 프랑스 문화의 상징인 바게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상징인 바게트의 기원에논 3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었던 평등빵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과거 유럽의 식생활사는 부드러운 '흰 빵'에 대한 집요한 추구로 요약된다. 오늘날과는 달리 흰 빵은 순도와 우아함의 상징이었던 반면에, 갈색이나 효모를 사용하지 않은 거친 흑색 빵은 빈민들이 먹는 빵이었다. 1793년에 공표된 법령은 중세 이래로 존재해왔던 '부자의 빵', '빈민의 빵' 이라는 이분법을 종식하고, 모든 빵집 주인들에게 오직 한 종류의 빵만을 만들도록 했다. 이를 어길 시 투옥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것이 바로 '평등빵'의 기원이다. 호밀이 3/5, 밀이 2/5의 비율로 배합된 이 평등빵의 규격과 무게, 가격 등은 모두 행정 당국에 의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졌고, 어디에서나 똑같은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옛날부터 빵은 프랑스 왕정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7세기 경 다고베르트 1세는 빵 가격을 통제한 최초의 국왕이었다. 빵은 민중들의 폭동을 막는데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빵집 주인은 '국가의 공복'이나 다를 바 없었다. 구제도 하에서는 경찰은 빵의 생산과 소비의 모든 과정을 일일이 단속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평등빵은 부자도, 빈민도,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둘째는 나폴레옹이 군인들을 위해 군복 뒷주머니 속에 편리하게 넣고 다닐 수 있는 긴 막대기 모양의 빵을 만들도록 주문했다는 것이다.
원래 평등 빵은 둥근 형태였으나, 나폴레옹이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길이 40cm에 무게 300g의 규격화된 빵을 만들도록 명했다고 한다.
세번째 설은 파리 메트로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 간에 불화와 알력이 심했는데 공사 감독은 늘 어두운 지하터널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할까 늘 전전긍긍했다.
그 당시에는 누구나 빵을 자르기 위해 주머니칼을 지니고 있었는데 감독은 빵집 주인에게 칼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간단히 잘라 먹을 수 있는 가늘고 긴 막대기 모양의 빵을 만들도록 주문했다는 것이다.
원래 '가는 막대기'나 '지팡이'를 의미했던 '바게트'는 1920년까지는 빵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었다. 그 외에도 오스트리아 기원설, 제빵업자들의 노동시간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등 몇 가지의 설이 더 있으나 정설은 없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바게트는 보편화되었고, 1980년대까지도 빵 가격은 법령으로 지정되었다. 현재에도 바게트는 길이 55~70CM, 무게 250~300G가 바게트 대회의 심사 규격이다. 이 대회 우승자는 일년간 공식 엘리제 궁전 바게트 납품업자로 지정되는 영예를 얻게 된다. 2013년엔 ‘파리 최고의 바게트 경연 대회’에서 한국인 서용상 셰프가 최초로 8위에 올랐다. 무려 1200여 곳의 파리 빵집 사이에서 말이다. 서셰프는 2023년엔 프랑스 국민 간식 ‘플랑Flan’*으로 프랑스 지역 플랑 대회 1위에 올랐다.
출처 : 미식 인문학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이범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