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이야기
중증외상팀이 호출되었다. 하던 일을 던지고 곧바로 외상 소생실로 향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의료진들이 이미 구조대와 함께 들것에서 환자를 내리고 있었다. 풀썩. 소생실 침대 위로 작은 체구의 아이가 옮겨졌다. 아이는 아주 작은 미동도 없었다. 즉시 기관삽관이 시행되었다. 청진기를 대고 들어 보니 숨소리는 나쁘지 않다. 다음으로 배를 만져본다. 복부 출혈의 징조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안돼. 남은 것은 머리다. 펜라이트를 들어 눈동자를 비추어 보지만 야속한 동공은 반응이 없었다. 하굣길에 집으로 걸어가다가 덤프트럭에 치인 뒤 실려온 11살 민영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걷던 길을 가고 있던 것뿐인데….
예상대로 머리 시티를 찍자 심한 경막하 출혈과 혈류를 공급받지 못해 검게 변해버린 뇌 실질이 확인되었다. 시티실 문틈으로 이제 막 연락받고 도착한 아이 아버지가 상황을 몰라 두리번대는 모습이 보였다. 이 정도의 뇌 손상이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는 뇌사상태로 진행할 것이다. 복부 시티에는 이상이 없어 외상팀 외과의사로서 나의 역할은 더는 없었다. 간호사가 그를 신경외과 의사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이후 이어질 상황은 차마 볼 수가 없어 당직실로 얼른 발길을 돌려버렸다. 평범했던 그의 세상이 지옥보다 더 한 나락으로 바뀌는 순간 이리라. 최대한 빨리 걸음을 재촉해 보았지만 아이를 잃게 된 아비의 절규는 아주 멀리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날 밤은, 나도 악몽을 꾸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민영이가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와 단 둘이서만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중환자실로 입원한 지 일주일 째가 되어가도록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한 번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던 터였다. 지난 일주일 간 민영이 아버지는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의자를 지키고 있었다. 해가 뜨고 지는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현상은 이미 초월한 지 오래였다. 그는 온종일 정자세로 같은 자리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중환자실 가족 면회는 2년째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의 중환자들은 죽기 직전이 되어야만, 아니 죽어야만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가 있다. 그러니 중환자실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는 것만이 그나마 물리적으로 아이와 가장 가깝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내 아이가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우주와, 아이 없이 나 홀로 남겨질 또 다른 우주. 부모에게 아이가 삭제된 우주는 세상의 종말이나 다름없다.
4년 전 아기 엄마가 된 후로 나는 소아 환자의 보호자들과 그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것은 이를테면 ‘어머 27개월인데 또래보다 수용 언어가 훨씬 많네요.’ 라던지, ‘제 딸이라면 수술을 시키는 쪽으로 결정하겠어요.’ 하는 시시콜콜한 부모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해 보이는 민영이 아버지에게는 도대체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는 나 자신을 보며 그것은 아주 알량한 자신감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한 번도 눈물을 흘리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긍정적인 기운을 지키고 있어야만 생과 사의 길목에서 싸우고 있는 민영이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처럼. 그래서 그는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평온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의 강인함은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내 마음을 아리게 하고 어떨 때는 죄스럽게도 하였다. 하지만 회진 길에 프로틴 음료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중환자실 쪽을 향해 보다가도, 결국은 뒤돌아 내 갈길을 가게 되곤 했다. 어설픈 나의 위로가 오히려 그 안온함과 희망의 끈을 잘라버리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민영이가 일 주, 이 주가 지나 어언 삼 주를 버티고 있었다. 불안정한 활력징후, 붉은색 숫자로 뒤덮여 가는 검사 수치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하였지만, 이제는 정말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민영이 아버지에게 위로를 건넬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안의 망설임이 또다시 여러 반론들을 제기했다. 너는 민영이 담당 교수도 아닌데? 몇 주 눈인사했다고 너무 나대는 것 아니야? 아이를 잃어본 경험도 없는 주제에 감히 뭘 안다고. 산처럼 커다란 슬픔과 분노에 말 한마디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우물쭈물거리다가 결국 또 중환자실 대기의자가 보이지 않는 길로 돌아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민영이는 별이 되었다. 차갑게 식은 아이의 손을 잡고 민영이 아버지는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더는 보호자 의자에서 민영이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적운형 구름은 이렇게 둥글게 그려야 예뻐요.”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마루에서 누군가 상을 펴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붓을 요리조리 돌리며 나에게 구름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는 어린아이. 처음엔 빛이 너무 밝아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민영이였다. 이렇게 똑똑하고 예쁜 아이였구나.
“민영아, 이제 안 아파?”
“선생님도 한 번 따라 그려보세요.”
“그래 그럴게.”
마치 사고당한 적 없었다는 듯 건강해 보이는 민영이는 하얀 도화지에 연신 예쁜 구름을 그려냈다.
“아빠가 보고 싶어요.”
“아빠도 민영이 많이 보고 싶으실 거야.”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바람에 그렇게 꿈은 짧게 끝나버리고 나는 침대 위였다. 천사가 내 꿈에 와 주었구나. 민영이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아빠가 보고 싶다 했다고. 아이 생전에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해 죄송했다고. 이 말을 이제는 민영이 아버지에게 전할 방법이 없다. 그저 민영이가 아빠의 꿈속에도 꼭 한 번 들러주길 기도할 뿐이다. 별이 된 아이들만을 위한 천국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곳은 인공호흡기도, 고통도, 눈물도 없는 그런 따뜻한 곳이어야만 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보면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 아빠와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살게 되는 날도 오겠지. 민영아, 먼 훗날 아빠와 다시 만나는 날 부디 천국의 문으로 마중 나와 줄 수 있겠니? 너의 생에 가장 예뻤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