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환자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식욕 조절의 어려움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가운에 가려진 제 몸이 본래 살이 안 찌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어보실 때가 있습니다.
원장님은 살 한 번도 안 쪄보셨죠? ㅜㅜ
저는 "아... 저도 옛날에 쪘다가 뺐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렇게 살 한 번도 안 쪄본 것 같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묘하게 보이실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풀어보면 실제로 저는 비만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때가 기억이 납니다. 남녀 구분 없이 한 반에서 신체검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ㅎㅎ 체중을 재고 나서 선생님이 크게 몇 킬로! 하고 부르면 옆에 있는 반장이 기록하는 식이었습니다. 짓궂은 선생님은 그걸 더 크게 부르셨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 당시 체중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친구들과 앞자리가 달랐던 것 같고, 그 시간이 정말 부끄러웠던 기억만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결과지에 '비만'으로 기재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 두 분 모두 직장생활을 하셨고, 부모님 마음에 어린아이 혼자 두고 출근하기 안타까우셔서 종종 서랍장 위에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만원 한 장을 두고 가셨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였던 저는 그 돈으로 부지런히 치킨을 시켜먹었고, 때가 되어 쿠폰 10장이 모이면 또 한 마리를 시켜먹었습니다. 그 결과 부모님도 저도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린 나이에 비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본래의 골격이 좀 작아서 그랬는지 헐렁한 옷을 입으면 티가 잘 안 나 기도 했고, 외모에 썩 관심 있지 않을 만큼 어렸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때부터는 주로 앉아서 공부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운동도 잘 못해서 체육시간에도 움직이기 싫어했고, 그늘에 앉아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0교시부터 시작하는 수업, 아무도 빠질 수 없게 설정된 야간 자율학습, 주말까지 이어진 학원 스케줄 등으로 일상이 채워졌습니다. 부족했던 활동량은 거의 0으로 수렴하였고, 그때부터 점차 몸이 아파왔습니다. 등과 허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나타났고, 자주 병원에 다녔고, 일상은 점차 활력을 잃어갔습니다. 차라리 그때 운동을 주 2회라도 했었으면 생활이 훨씬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그때 생겼던 통증은 입시가 끝나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간이었고, 아마 그때쯤 몸무게가 최고치를 기록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 입학 즈음이 되어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게 되었는데, 입고 싶은 옷이 잘 안 들어가는 현실을 마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다이어트는 대학 1학년 여름 방학쯤에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 한 달 혹은 한 주 몇 킬로 계획도 세워봤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세운 계획은 그렇게 순순히 흘러가 주지 않았고, 체중이 계획한 것에서 벗어날 때마다 스트레스만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적당히 체념하고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처럼 체중조절용 간편식이나 닭가슴살을 편하게 구하기 어렵던 시절(?)이었어서, 특별한 식단을 구성하지는 못했고, 집에 있는 밥을 먹되 양을 조금 줄이고 간식도 줄였습니다. 그리고 운동량을 많이 늘렸습니다. 비용을 많이 들이는 운동은 부담스러워서, 서랍 한구석에 들어있던 줄넘기를 들고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줄넘기 500개를 하다가 차츰 1000개, 1500개, 이후에는 3000개를 하는데도 20-30분 만에 끝내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짧게 끝나니까 이게 운동을 한 건가 싶어서 어떤 때에는 오전 오후로 나갔습니다. 덥고 나가기 싫었을 때가 많았지만, 그냥 줄이 보이면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수영을 잠깐 등록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수영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서 1시간 수업이 끝나면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장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던 기간은 그러했고, 그 이후에는 식사 조절을 엄격하게 한 기억은 없는데, 운동은 주 2~3회라도 지속하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최고점이었던 몸무게보다 12kg 정도 적은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빠지기는 했었으나, 해가 지나면서 약간 체중이 늘어났고, 표준 범위의 현재의 몸무게로 지낸지는 6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은 있는데 언제 끝이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기간에 얼마를 뺐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다만 그 시작 시점으로부터 아주 서서히 거의 1년에 걸쳐 조금씩 빠졌고, 1년이 지난 시점에 가장 낮은 체중이 되었습니다. 초기에 분명히 계획과 목표가 있었지만, 그게 틀어지기 시작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이 반복되는 게 싫어서 그냥 계획 없이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즐겁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운동을 골라 1~2년 이상 지속하기도 하고, 또 다른 걸로 바꿔서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는 집을 좋아하고 혼자 넷플릭스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결코 운동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의 피곤하고 힘없는 일상에 운동이 유례없는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은 쉬는 날이면 밖에 나가서 오래도록 걷기라도 하려고 합니다.
다이어트 과정이 세세하게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살이 쪘을 때 느꼈던 일상에서의 불편감과 특정 상황에서의 수치심(?)은 기억에 잘 남아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살을 빼고 나니 확실히 많은 것이 편해졌습니다. 내가 원하는 부위가 쏙쏙 잘빠진 것도 아니고, 일생 최저 몸무게에 있었을 때도 연예인 같은 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일상에 불편함이 없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옷을 고를 때 망설이는 게 덜하고, 점차 다이어트 이외의 부분인 나의 일이나 취미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약간 더 자신감 있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살을 뺀 이후에 생활습관 유지가 순탄하게만 흘러간 것은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크던 어떤 해에는, 산더미 같은 일에 몸과 마음이 지쳐서 식사고 뭐고 매일 늦은 밤 라면을 1개씩 먹던 때가 있었습니다. 운동도 전혀 하지 못했고, 잘 유지하고 있던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스트레스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 없이 인스턴트 위주로 섭취하였고 고칼로리 음식을 사료처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몸에 이상반응이 생겼습니다. 무너진 생활습관에 의해 생겨버린 질환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때가 되면 나타나고, 스스로 치료 중이지만 생각보다 잘 낫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다시 크게 정신을 차리고,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지나친 스트레스가 나를 지배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큰 결심을 하고 직장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요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마트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은 계속 바빴고 쉽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일주일 단위의 건강한 식단을 구성해서 챙겨 먹었습니다. 다이어트 관련 식품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고, 오므라이스, 샤브샤브, 토마토 달걀 볶음, 소고기 뭇국, 카레, 비빔밥 등 그때그때 먹고 싶은 메뉴를 만들었습니다. 항상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하루 식사 중 채소나 단백질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살폈습니다. 요리를 시작하니 그릇에 욕심이 생기더군요ㅎㅎ 예쁜 그릇에 건강한 음식을 적당히 담아서 맛있게 먹는 것, 그것이 저의 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였고 1~2년 이상 지속했더니, 어느새 인바디상 골격근량이 체지방량을 앞서면서 멋진 D자를 그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러던 날도 있었네요. 지금은 다시... ;_; ㅎㅎ)
저의 다이어트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결과적으로는 12kg 감량 후 유지이지만, 다이어트 성공 사례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이야기입니다.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루어냈다거나 하는 과정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몸이 좀 무거운 것 같으면 운동을 하고 가벼워진 것 같으면 먹고(?) 그렇게 지냅니다. 지금은 체중 감량 자체가 큰 우선순위에 있지는 않으나, 점차 목표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ㅎㅎ 그리고 지금은 식재료를 선택할 때 동물복지 무항생제 무농약 친환경 이런 단어들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식탐에 대한 조절은 여전히 어렵긴 합니다. 그래도 지난주에는 일주일 내내 베스킨라빈스 파인트를 목놓아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니 충동적인 마음이 줄어서 스르륵 안 먹게 되었고, 풍미 좋은 바닐라라떼를 생각했지만 집에 있는 디카페인 카누 스틱을 타서 마셨습니다. 음식을 좋아하고 식탐이 많지만, 질 높은 음식을 골라서 양을 적당히 먹으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체득한 것 같습니다.
체중을 유지하는 것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끝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원래 나이가 들면 살이 찌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복부 위주로 체지방이 늘어나고, 근육이 감소하게 됩니다. 젊을 때에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사람들조차도 나이가 들면 배가 나오는 경우가 흔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먹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더 부지런히 해야 기존 몸이 유지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이어트가 철저한 계획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이자 선택의 연속으로 느껴집니다. 이게 때론 답답할 수 있지만,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매 순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깁니다. 또한 다이어트를 대할 때 단순한 살 빼기로 생각하기보다, 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기면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의 체중감량은 적당히 마무리되었지만, 저는 진료 분야가 이것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는 언제나 저에게 화두입니다. 그래서 틈날 때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다이어트 관련 글을 찾아보고,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과 고충을 살펴봅니다. 가장 마음이 동할 때는 고도비만이었던 환자분들의 후기를 읽을 때입니다. 최근 살이 약간 쪄서 빼는 정도의 다이어트와 달리, 그것은 차원이 다른 고통을 수반하는 그야말로 피 땀 눈물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폭식증과 거식증의 과거를 기록한 이야기나, 잘못된 다이어트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이야기들도 찾아서 읽어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것과 주어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의 다이어트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의 사례도 올리기는 했지만, 어떤 분들께는 도움이 되고 어떤 분들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이어트 성공 방법은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수많은 사례와 연구들을 통해서 나온 간단하지만 중요한 원칙들은 그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앞으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저의 체중 감량과 유지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오늘의 글은 더욱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