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핀 장미
꽃말은, 너의 모든 오늘을 환영해!
한 송이 꽃을 받았다.
고운 빛깔의 담으로 내부를 감싼 꽃이었다. 겹겹이 포개어진 꽃잎이 눈뭉치에 4월의 봄바람을 버무린 것 같은 옅은 분홍빛이었다. 투명한 우윳빛 속살을 하고, 처음 세상에 닿은 듯 가장자리부터 수적색을 띠어가는 그 색조에 나는 설레었다. 모든 처음에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입학식이 있었다. 스승께서 주지로 계시는 절에서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불교 통사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이태 전 12월, 3개월 과정의 불교 기본 교육 때 처음 스승님을 뵙고, 그 이듬해 봄부터 5월 중순까지 스승께 참선 입문 과정을 배운 이후 나는 주말마다 선원에서 줄곧 참선 수행만 해왔다. 지난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첫 안거를 경험한 유월부터 시월까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법회 외에는 스승께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11월, 귀하고도 묘한 인연이 닿아 스승님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고, 드디어 새 학기 정식으로 수강생이 되어 스승께서 만드신 학당에서 도반들과 체계적으로 불법을 배우게 되었다. 올해로 불교에 입문한 지 1주년이었다. 지난 3월, 경칩을 앞두고 참여한 템플 스테이 날 갓 불자가 된 우리들에게 법문을 전하러 오신 스승은 말씀을 시작하기 앞서 돌아가며 이름과 법명, 그리고 사는 곳과 왜 불교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주셨다. 그때 나는 인사를 맺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함께 사는 도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꼬박 열 두 달 가까이 흐른 이날, 스승께서는 짐짓 우리들에게 물으셨다.
"수행은 왜, 해?"
입속에서 곰곰 말을 굴리고 있는데, 스승의 응답이 들려왔다.
"잘 살려고 하는 거지."
내가 허를 찔린 사람마냥 어, 하는 사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인지에 관한 말씀이 이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더 나은 공생과 공존을 하면 그것이 잘 사는 일이지."
사뭇 명료한 어조셨다. '공'으로 시작하는 세 낱말에 밑줄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이 공共은 함께를 뜻하는데, 나는 이것이 연기緣起와 다르지 않은 공空과 일맥상통하는 듯이 여겨졌다. 여기서 후자의 공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과 연이 맞물리고, 조건과 조건이 어우러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흐름, 그리하여 그 흐름을 타면 어디로도 우리를 도달시킬 수 있는 불가사의한 이동에 가까운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며 어디에 있든, 나는 혼자 그 장소, 그 상황, 그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니다. 설령 지금 내가 홀로 있더라도, 나는 더불어 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외로워도 나는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 다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어떻게 더불어 왔는가에 따라 우리는 괴로울 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 함께와 일맥상통하는 공은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이다. 가히 연금술적인 가능성을 내포한 이 공을 굴려나가는 일에 우리는 크든 적든, 알게 모르게 참여하고 있다.
2주 전 법회 때 스승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쓸모 없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작고 미미해 보일지라도, 그 한 가지가 빠지면 이 우주 전체가 존재할 수 없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 생각했었지만 정말로 알고 있었나, 되묻게 되었다. 이 말은 새롭게 내 안에 울려퍼지며 집과 도서관, 그리고 오가는 거리의 풍경을 새록새록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눈 뜨자마자 한 송이 우주를 바라보았다.
우주는 하나의 얼굴로 마주 바라봤다. 그것은 너였다. 이대로 두면 시간에 쓸려 가버릴 너.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네가 시들어 산산조각 흩어지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기 전 네 낯빛을 표현할 더 적절한 말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한데 그보다 먼저 아침 해가 떠올라 있었다. 해는 우윳빛 비단 커튼 자락같이 길고 주름진 구름들 사이로 고개를 살 내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색조가 너를 닮은 살빛 분홍이었다. 나는 물병에 비스듬히 기댄 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너는 어느새 그 고운 담장 같은 꽃잎을 젖혀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방금 본 아침 하늘같이 보드라웠다. 문득 돌아본 하늘빛은 그새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낮은 탁자를 마주한 내 눈앞엔 여전히 아침 그대로의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문득, 깨달음이란 이렇게 열어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그 빛을 볼 수 있도록 펼쳐 보이는 것. 고이 간직하여 자신만 알고 있다면 완전한 자각이라 할 수 없다. 깨달음은 전해져야, 즉 너에게 가 닿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 만개한 꽃은 지지 않는 햇살을 전해줬다. 자신을 고이 싸고 있던 잎 담장을 펼쳐 상앗빛 내부를 열어 보인 꽃은 시들어도 시들지 않을 것이다. 그 빛은 남김없이, 아낌없이 내게로 와 닿았으므로. 석존이 들어올린 꽃 한 송이에 마하가섭이 미소지었듯. 나도 이 빛의 펄떡임이 가시기 전에 얼른 빗장을 열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