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90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조직을 외부의 시선에서 객관적이게 볼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긴 논의끝에 저는 3월 1일 밭에 CMO라는 역할로 복귀합니다. 유의미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봅니다. 늘 그렇듯 크루들에게 보낸 편지를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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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밭 크루 여러분. 이미소입니다.
밭을 떠난 지 90일이 지났네요. 해가 바뀌어서 그런지 훨씬 더 오래된 기분이에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계속된 변화에 모든 크루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밭을 떠난 90일은 은 개인적으로도, 조직의 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도 정말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7년간 밭을 일구며 어떤 역할의 이미소가 아니라 개체 이미소로써 놓쳤던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개인과 조직을 하나로 두었던 저에게 개인과 조직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조직의 한 일원으로써는 내부가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보게 되면서 제가 리더로서 얼마나 무모하고 오만했는지 그리고 크루들이 얼마나 많은 역할들을 해왔는지 더 객관적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우리의 배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저 혼자만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탱하고 있던 힘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내가 하는 역할은 역시 청지기일 뿐이구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밭에 작물이 자랄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주는 것 그것뿐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제가 없는 동안에도 밭은 계속해서 잘 성장했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 주신 크루 한 분 한 분이 있었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일들이에요.
첫 임원 워크숍에서 지금의 동빈 부대표님, 그때의 동빈 디렉터님의 질문이 기억납니다.<그래서 성장의 주체가 회사라는 말씀이신가요?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성장의 주체는 개인인가요, 회사인가요?> 그때 당시 저는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물쩍 저물쩡 다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세 달이 넘어서야, 불과 얼마 전이 되어서야 동빈 님에게 그때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동빈 님이 하신 질문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고요. 저는 성장의 주체가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장의 주체가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아니 조직이 곧 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해야 한다고,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과 90일 전의 저는 나 자신도 구할 수 없으면서 누군가를 구하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조차 나를 모르면서, 나조차 나를 찾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의 사명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크루들에게는 자신에게 시선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제 스스로는 저에게 시선을 향하지 못하고 외부에서만 모든 원인을 찾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조급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저의 무능함이 드러날까 두려웠고 그로 인해 밭이 잘못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90일간 제가 없이 변화하는 밭을 보며, 제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두려움과 무능함을 마주하며 변화하는 저를 보며 조급함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더는 조급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가 되고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긴 논의 끝에 저는 3월 1일부터 다시 CMO로 밭으로 복귀합니다. 90일간 반성해온 마음을 동력 삼아 다시 한번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화가 계속될 거예요. 변화는 고통을 동반하겠죠.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할 거예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크루들이 함께해 주길, 한 번 더 믿어주길 바라봅니다.
농업은 2차 3차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뿌리를 담당하는 산업입니다. 농식품은 다른 시장에 비해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 작기에 농사를 한번 짓는다고 생각하면, 10년을 해봐야 10번밖에 해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플랫폼 사업이나 AI처럼 계속해서 시도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시장은 인내와 기다림이 함께해야 합니다.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농부는 그 누구보다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먹거리와 땅을 잘 지켜서 돌려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시기만 넘기겠다는 생각이 나 10년, 20년을 보는 것이 아니라 50년 100년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농부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우리 지역, 우리 국가, 나아가 우리 인류 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부가 꿈이되는 사회라는 사명에 맞게, 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리더가 되어볼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을 담아,
이미소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