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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정원 Jul 29. 2023

카레의 변신은 무죄

같은 듯 다른 맛


''아빠가 내일 건강검진하셔서 저녁은 우리끼리만 먹을 거야. 지난번에 먹었던 카레 먹자. 금요일이라서 냉장고도 이제 텅텅 비였어!''



아이들에게 선언하듯 저녁메뉴를 이야기한다. 몇 가지 예외 품목을 제외하고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잘 먹지 않는 아이들.


엄마의 선포에 표정들이 썩 밝지 않다.

''카레를 또 먹자고요?''

''다른 건 없어요?''

뽀로통한 얼굴로 더 맛있는 요리를 요구하는 모습에 마음이 또 약해진다.



나는 전업주부였다. 결혼과 동시에 선택한 '자발적 전업주부'. 그래서일까? 직업정신이 있었다. 신랑이 경제적인 책임감으로 매일 출근을 하듯, 나도 주부로써 가족들을 위해  가정을 돌볼 책임감을 가지고 집안일을 보살폈다. 그중 으뜸이 바로 '집밥'이다.


오징어볶음 하나 만드는데 2시간이 걸리던 초보 살림꾼이 어느새 14년 차의 중년 살림꾼이 되었고, 몇 가지를 만들어도 1시간 정도면 뚝딱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시간이 주는 흐름은 나를 노련하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잔꾀에 능통하게도 만든다.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식혀진 음식을 갓 만들어진 새로운 음식인 것 마냥 식탁에 내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아이들의 맛있는 저녁을 갈구하는 눈빛과 표정을 보면서 잔꾀가 발동한다.


''카레우동을 먹을까? 밥 말고 쫄깃한 우동을 넣으면 완전 별미거든. 실제로 가게에서도 팔잖아.''

''우동? 맛있을까?''

''한 번 시도해 보자. 원래 가게에서는 생크림 넣어 만들어주지만 엄마 카레에도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니까 분명 비슷한 맛이 날 거야!''

''그럼 좋아요. 근데 카레우동만 먹어?''

단일품을 줄 때는 사이드 메뉴를 곁들어 내주는 편이었기에 아이들의 요구가 당연한 집이다. 냉장실을 열어보니 물만두가 보인다.


''여기에 만두 구워서 열무김치랑 단무지랑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어때, 만두 괜찮지?''

''와.. 좋다! 수영 다녀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더운 날, 주방에서의 시간은 곤욕이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그 열기가 무섭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여름철 집밥사수의 핵심포인트다.


이렇게 남아 있는 것으로 단일품을 만들고, 사이드메뉴는 대부분 우리 집 1등 공신인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는 날은 복된 날이다.


꽁꽁 얼려진 우동사리 2개를 물에 담가 해동시켜, 카레가 벨 수 있게 우유를 좀 더 넣어 약한 불에 올려두고, 만두는 그대로 에어프라이어에서 10분 동안 튀겨주면 끝이다. 카레우동이 다되면 허브솔트로 간과 향미를 살려 그릇에 담아내고, 튀겨진 작은 만두도 푸짐하게 담아 저녁을 차려낸다.



재탕인 듯 재탕 아닌 새로운 모습의 카레를 맛본 아이들의 눈이 동그레 진다.

''맛있다. 정말 맛있어요!''

먹는 동안 맛있다는 말을 재잘거리며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내는 모습은 음식을 차려주는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한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만족도가 달라진다. 비단 요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지친다고 얘기한다. 특히 전업주부가 느끼는 일상의 단조로움은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더 크고, 우울감마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어나 육아와 가사만 하다 끝나는 느낌!


시선을 조금만 달리 해보자. 매일 차려야 하는 밥이지만 메뉴가 매번 달라지고, 그 안에서 오고 가는 대화도 다르지 않은가!



그날 준비하는 음식에 따라 나의 기분과 감정도 달라진다. 자신 있게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치트키 요리와 색다른 것에 도전하기 위해 레시피 흘깃거리며 만드는 요리, 가족들이 먹고 싶다는 말을 기억했다가 재료를 준비하고 환하게 웃으며 맛있게 먹어줄 모습을 상상하며 하는 요리 등 우리는 다양한 상황과 기분으로 주방에 서고, 집밥을 짓는다.



지겹다는 생각보다는 그때의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같은데, 같지 않은 음식 재탕처럼 우리의 일상도 살짝 비틀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한다면 매일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를 밥 차리는 식모가 아닌  '밥상예술인'이라 생각하고 매일 식탁을 도화지 삼아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준비해 보길 조심스레 권해 본다.





똑같은 메뉴를 내놓으면 젓가락 안 가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 같은 메뉴지만 다른 음식인 것처럼 줄 수 있는 작은 센스를 나누고 싶어요.


요리팁! 카레 만들 때 우유와 버터 한 조각 넣어보세요! 맛과 풍미가 달라진 고급진 카레를 맛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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