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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Jul 12. 2024

이상(李箱)의「오감도」 87년만에 제대로 읽었다(2)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경남일보

 김유섭 시인,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 87년만에 제대로 읽었다(2)


  지난 호에서 지적한 대로 김유섭 시인은 연구서 『이상 오감도 해석』(북 속길, 2021)에서 15편 오감도 연작시를 다 읽었고, 이어 『한국 현대시 해석』(북 속길, 2023)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외 2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외 1편, 한용운의 「님의 침묵」 외 3편, 김수영의 「풀」 등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김시인은 언제나 시를 읽을 때는 인간적으로 서로 바라보며 상식적인 사고와 순리를 따라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다고 한다. 그럴 때 무슨 전제적 이론이나 굳어진 사조를 들고와 의미를 덮어 씌우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은 시집 『비보이』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비보이’는 이주자와 이주자가 대립하는 사회에서 그 세를 과시하기 위해 기괴한 춤(브레이크댄스)을 추는 남자를 말한다. 시인은 시집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8년 동안 쌓인 쓰레기더미에서 50편을 건져 올려 책으로 묶는다./ 세상은 겹겹의 빙벽에 막힌 겨울이다. 겨울 아니었던 적 있나/ 강철 기둥 내리꽂아 숲으로 세운 거리다.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감싸 안는 시절이 오기 바란다./ 깊은 밤, 어느 들판을 혼자 거닐고 있을 별의 눈을 생각하며.”


  세상은 빙벽에 막힌 겨울이고 그 거리는 강철 기둥을 내리꽂아 숲이 된 곳이다. 추위와 강철 문명으로 던져진 세상은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고 서로 감싸 안는 사랑이 필요한 곳이다. 자연은 망가져 있고 문명은 구제불능의 시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인간의 세를 드러내는 비보이의 춤을 추는 것이 일상인 시대, 어쩌면 조현병에 걸려서 자기 훼손의 길을 가다가 혼자 별의 눈을 올려다보는 비극적 상황이다.


  필자는 갑자기 이 대목에서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머리말 「군말」이 떠오른다. “나는 해저문 벌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한 그 대목이다. 여기서 길을 잃은 것은 나라 잃은 설움의 상황이고 혼자 ‘별의 눈’을 생각하는 것은 빙벽의 겨울이거나 강철로 내리꽂힌 초문명사회에서 헤매는 우리 인간들의 미래상, 곧 비보이의 염려로 얼룩이지는 상황으로 읽을 수 있다.


시 「비보이」를 살펴 보자.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동전 하나로 되살아나는 웃음이 싫어/ 날개는 잘린 것인지, 삭제되었나?//대낮에도 즉석 별들이/ 은하수 유성으로 떠다니는/ 두 평반 옥탑방에서 퍼덕거리다가// 뒹굴 뒹굴 반지하에서 질척거려보다가/ 빵 내쫓겨, 시멘트바닥을 굴려/ 비보이 춤을 춘다.”


  동전 하나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AI시대의 인성이랄까 본질이랄까 하는 것이 뿌리 뽑히고 마는 미래로 가는 사회 또는 인간들의 훼손된 애정과 꿈에 대해 비보이로 대응해갈 수밖에 없는 현대를 지적하는 시다.


  김시인은 〈여는 시〉에서 “날마다 배달되는 잿봇 실루엣 따위 쓰레기통에 쳐넣지” “쿵쿵 타들어가는 심장 박동, 나란히 발자국 찍으며 /불구덩이 모래사막이라 해도/ 맨발로 걷는 거야 그치?” 인조 인간의 현실이 엄혹하다는 것, 그 현실이라도 사랑이나 이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담론적 시편에 다름 아니다.


  김시인은 이어 「모래와 바람의 전언」을 쓰고 있다.


  “바람이 산이다/ 아니 모래가 산이다/ 창조란 신의 것이라지만 바람과 모래만 남아/ 뒹굴고 있다. 자연은 모두 피조물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으로부터의 입김은 존재하지만 그 입김은 배제된 채로 산은 산, 모래는 모래다. 그래서”“사슴의 뿔이었던 모래알/ 들판에 이파리였던 바람/ 초록 오선지에서 흩어져 증발해버린 음표들이다” “과거는 무너졌고 눈을 껌벅이고 1억년마다 한 번씩 신음을 뱉어낸다”는 광대한 시간대의 반추와 자성을 자아내고 있다. 시인은 초문명 비판의 저울대를 걸어놓고 혹여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고심, 우수에 젖는다.


 출처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http://www.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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