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학개론- 동네마다 후레아들 하나씩 있다.
"엄마, 근데 애들이 패드립을 진짜 심하게 해. 지나가면서도 그냥 계속 ‘응 니엄마’ 중얼거리고 지나가고."
학교는 어떠냐는 질문에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애들은 그냥 막 해."
(이런 말을 들을 때 혹시 너도 그런 건 아니니?라는 생각을 꼭 하게 된다.)
하준이는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인데 중학교에 와서 반에서 패드립의 왕으로 떠올랐다. 쉬는 시간에 주로 잠을 자지만 누가 건들고 도망가거나 장난을 치면 번개같이 쫓아가서 패드립을 친다. 처음에는 친구가 많았던 하준이 주변에 애들이 점점 사라졌다. 하준이는 개의치 않았다.
-너희 할아버지 광해군. 광해군은 처녀 밝히지. 너희 엄마도 그중 하나 처녀.
-너희 엄마 **털. 니 아빠 게*라서 너랑…
처음에는 어린애들이 무슨 저런 욕을 하나 기분이 더러웠다. 하굣길에 본 중학생 떼는 시골 강아지를 떠올리게 순박하게 생겨 귀여웠다. 막 초등학교에서 넘어와 교복이라고 걸치고 우리는 이제 청소년 하고 앉아있는 앳된 얼굴이 안쓰러워 코끝이 시큰해지도 했다. 처진 눈망울이 까맣고 촉촉한 녀석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쏟아지는구나. 중학생의 세계란 저런 것인가.
하진이는 키가 보통이고 피구를 잘 하지만 달리기나 악력 등 기초 체력에서 기록이 좋지 않은 걸 보면 아주 센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아들은 자기랑 붙으면 그 정도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한다.(얼씨구?)
승헌이와 하준이는 지난주에 패드립 배틀을 떴다. 그 배틀은 하준이의 승리로 끝났다. 속사포로 쏟아지는 패드립 랩에 승헌이는 말문이 턱 막혔다. 승헌이는 이를 갈고 연구해 패드립 백과사전을 만들었다. 승헌이의 패드립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이번주에 다시 배틀이 붙었다. 2번 붙어서 2번 다 승헌이가 이겼다. 노력하는 자에게 장사 없다.
이제 막 중학교에서 한 학기도 안 지난 아이들. 왜 이렇게 센 욕을 할까. 옛날 애들은 수틀리면 맞붙었다. 살과 뼈가 밀리고 부딪치고 주먹의 압력이 얼굴 피부를 세게 두들기고 짓이겨 결국 시커먼 보라색 멍을 남기는, 피가 터지는 주먹질을 했다. 지금의 학교폭력은 더 치밀하고 매끄럽다. 찌푸린 얼굴로 침이 튀고 혀를 휘둘러 날 선 패드립을 칼처럼 주고받으며 양측이 할 수 있는 최대로 감정이 치닫는다. 마지막엔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기지만 밖으로 눈에 띄진 않는다. 학교폭력법이 강화될수록 주먹질은 줄어들고 교묘함과 욕은 수위를 더해간다.
어제 패드립 배틀이 다시 벌어졌다. 기 우승자들의 싸움엔 긴장감이 돌았다.
-니 엄마 다섯 명. 니 아빠 가성비.
그 말을 듣고 어벙벙해진 승헌이는 대꾸하지 못했다. 나도 듣고 무슨 말인가 한참 꿈벅거렸다.
- 작은 개가 짖는다고 하준이가 마음이나 힘이 약하니까 입으로 더 세게 하는지도 몰라.
욕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쐐기문자로부터 유구한 세월을 자랑한다. 조선후기 금령전, 설인귀전의 낙서에도 심한 패드립이 적혀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자란 시골에도 쌈이 붙었다하면 쥐톨만 한 애들이 *새끼, 니미로 시작하는 속사포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월월 짖었다. 한참 욕할 나이, 중학생. 그래도 이렇게 패드립을 밥먹듯이 중대한 이유도 없이 난발하진 않았는데.
하루 일과를 마친 퇴근길, 아이들은 잠시 저당 잡혔던 핸드폰과 뜨거운 상봉을 한다. 빠짐없이 모두 핸드폰에 코를 박고 내려온다. 여럿이 함께 또는 각자. 혼자임이 쑥스러워 보는 척하는 아이도 있는지 모르겠다. 핸드폰은 각자의 이야기에 위안을 준다. 익숙한 하굣길에 아이들의 발은 좀비처럼 어슬렁거리며 움직인다. 그들의 눈과 영혼은 모두 손바닥 속 세상으로 파고 들어가 버렸다. 하굣길은 남자아이들 수백 명으로 꽉 찼지만 또 텅 비어있다.
그들의 열망. 넓디넓은 초록 운동장을 누비며 야수처럼 지르고 쏟기 바라는 건 늙은 꼰대의 과욕이겠거니.
공부는 과하고 스트레스를 풀어놓을 물길은 좁다. 터질듯한 끓는 마음은 틀어 막아도 화구처럼 입을 통해 패드립으로 뿜어져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패륜, 막장의 원조, 오이디푸스를 알까?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패륜의 운명을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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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좋은 것을 베푸시는 행운의 아들로 여기므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리다. 나는 그 행운을 어머니 삼아 태어났으니. 나의 친족인 달님은 나를 작게도 크게도 정해 주었소. 나는 그렇게 타고났으니 앞으로 결코 다르게는 될 수 없소. 나 자신의 혈통을 밝혀낼 수밖에 없소.
이렇게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감이 있던 오이디푸스. 그는 코린토스의 왕자였고 스핑크스의 난제를 풀어 이소카스테와 결혼하고 라이오스를 이어 테비아의 왕이 되었다. 모든 사람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던 당당했던 인간. 그는 이성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고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과 용기를 갖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은 알 수 없었다.
모르고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조차 인간은 책임을 져야 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라는 이름도 오이디푸스에서 가져와지었다고 한다. 모르고 저지른 잘못, 패륜.. 고전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되풀이되고 다른 빛깔로 마음을 울린다.
극은 오이디푸스가 전왕의 살인자를 색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처벌을 약속하는 데서 시작한다. 전개가 5G급이라 중간중간 장탄식을 늘어놔도 지루하지 않다.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눈먼 예언자가 와서 진실을 쏟아 놓는다. 네가 범인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더러운 놈.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고 예언자를 저주하고 쫓아내지만 점점 진실은 오이디푸스를 조여 온다. 내가 알던 것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의 충격. 운명 앞에 너무나 연약한 인간이다.
아아, 필멸의 종족이여
그대들이 살아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아님을
내 얼마나 헤아렸던가.
대체 누가, 어떤 인간이
겉으로만 행복해 보이고, 그러다가
기울어 저무는 것 이상의 행복을 얻고 있는가.
오 가여운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그대의, 그대의 운명을
거울로 삼아,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하다 여기지 않으리.
그대는 모르고 행했지만, 모든 것을 보는 시간은 그대를 찾아냈고
오래전부터 자신이 거기서 나고.
자식을 낳기도 한 결혼 아닌 결혼을 벌합니다.
아아, 오, 라이오스의 아들이여.
차라리 그대를, 차라리 그대를
보지 않았더라면!
저는 입에서
넘치는 비명을 쏟으며
애곡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바로
말하자면, 나는 그대로 말미암아 다시 숨을 쉬게 되었고
내 눈을 덮어 채웠습니다.
그의 부인이 꼬인 올가미에 얽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행한 그는 그녀를 보고는, 무섭게 울부짖으며
매달린 밧줄을 끌렀습니다.
그리고 가련한 그녀가 바닥에 누웠을 때, 보기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그녀의 옷을 고정해 주던
금 세공된 브로치를 뽑아 들고서는
자신의 둥근 눈알을 찔렀던 것입니다.
그 눈들은 그가 당한 것이든 행한 것이든 끔찍한 것을 보지 말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그가 보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을,
그가 알고자 원했으나 알아보지 못한 이들을 어둠 속에서 보라고 말입니다.
이런 말을 되풀이 노래하며. 여러 번 손을 들어 눈을 찔러 댔습니다.
그때마다 피범벅이 된 안구가 뺨을 젖게 했습니다.
배어나는 핏방울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소나기 같은 검은 피의 비가 흘렀던 것입니다.
아, 그의 눈에서 뿜어 나오는 소나기 같은 검은 피.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자신의 눈을 저주하며 그는 눈을 여러 번 찔렀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이자 부인이었던 이를 아름답게 빛내주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되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형벌로 자신의 죄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어둠에 가둔 것이다.
차라리 라이오스 왕이 운명을 몰랐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미리 재앙을 피하려고 한 것이 일을 더 꼬이게 했다. 알고 보니 라이오스 왕은 원죄가 있었다. 은인의 아들을 겁탈하려다 죽인 죄를 지어 벌로 이런 신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노력하고 피하면 자신의 죄의 결과를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인간의 본능이지만 욕심이다. 왕비의 입장에서 본다면 또 욕심이다. 한번 왕비를 했는데 왕을 바꾸어 다시 왕비가 된다는 것이 과욕 아닌가 싶다. 게다가 저런 저주스러운 신탁을 알고 있던 사람인데 의심해 볼 만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행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오카스테는 하모니아의 목걸이를 갖고 있어서 나이를 먹지 않고 젊음을 유지해서 비극을 키웠다고 한다. 나이가 많아 보였으면 오이디푸스가 의심이라도 했을 텐데. 아님, 이모뻘하고 결혼은 좀.. 하고 도망갔을 텐데 미모가 김사랑 급이었나 보다. 이것도 아이러니다. 모든 상황은 자연스럽게 신탁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불행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계곡의 물이 아래로 흐르기만 하듯이.
중학생들아, 니들이 패드립을 아느냐. 내 부모와 내가 인륜이 아닌 동물적으로 얽혀버린 걸 알았을 때의 슬픔과 운명에 대한 미칠듯한 심정을 니들이 아느냔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숨 쉬고 먹고살다 죽는 유기체, 동물이었다면 제 눈을 찌르는 고통을 만들고 남은 인생을 들판을 헤매다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륜을 지닌 사람이기에, 모르고 저지른 잘못도 이렇게 통렬히 반성하고 뺀 안구를 수염에 달고 다니다가 비운을 다한 사람이 있는데 니들은 어? 그걸로 욕을 만들고 조롱거리 삼으면 되겠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