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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문장가 Dec 31. 2023

자기 주도 자신감 학습

아빠의 사랑이라는 치트기

 겨울은 추울수록 김이 모락모락 붕어빵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난다. 마음은 추울수록 사랑이 더욱 그리워진다. 어린 딸을 뒷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느 아빠의 모습은, 세상풍파를 다 막아주는 히어로 같아서 마냥 부럽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딸바보 아빠를 선택하는 옵션은 없었기에, 아내바보 남편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연애할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만났다고 생각해서 결혼했다. 그런데 신혼이 지나가고 도파민의 도움 없이, 오리지널로 살아보니 딸바보에 세팅된 남자였다. ‘왜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완전히 다르지?' 하고 시댁을 관찰했는데 아버님이 원조 딸바보셨다.

 

큰 시누이, 작은 시누이가 시댁에 오면, 아버님 주변에는 배경음악으로 "별빛이 내린다. 샤랄랄라"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눈에서는 하트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막내 시누이는 날씬한 체형인데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조금 더 말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우리 막내 애 둘 키우느라 홀쭉해져서 어떻게 하냐"라면서 애틋해하셨다. 그때 나는 '아이들 어릴 때는 아무래도 손이 더 가는 부분이 있어서 약간 살이 빠진 건데. 아버님은 왜 이렇게 애틋해하실까?'라며 오버하신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은 명절날 다 같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식사를 다 잡수시더니 형님한테 가셔서 엉덩이를 토닥이며 "우리 딸 밥 많이 먹어"라고 얘기하시는 거였다. 형님은 나보다 2살이나 많고 딸 둘 도 중, 고등학생이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아빠한테서 이런 애정 어린 표현을 들을 수 있는 걸까?      

 

조선시대에 서양의 신문물을 접한 사람처럼 문화충격이었다. 아무리 코흘리개 시절을 떠올려봐도,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거나 토닥여준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감기기운에 아파서 조퇴는 하더라도 결석은 있어서는 안 되는, 군대교관 같은 우리 아빠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였다. 늦둥이 동생을 돌보느라 오지 못했던 엄마대신, 아빠와 단둘이 함께했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어찌나 어색했던지. 사진을 찍어주며 웃어보라는 아빠의 계속된 주문에 억지 미소 가득한 사진들만 남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먹었던 짜장면과 탕수육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음식들 같았고, 어렵기만 한 아빠와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듯했다.

 

아빠의 사랑이란 치트키가 있는, 시누이들은 항상 자신감이 있게 얘기하고 행동했었다. 시댁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을 충분히 감안하고도 나와는 다른 당당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듣게 된 강의에서 김미경 선생님은 강사의 길을 걷고 싶어서 고민했을 때를 얘기하셨다. 그때 김미경 선생님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넌 말하는데 재능이 있었으니까 강사 하면 무조건 잘될 거다."라고 응원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 말에 힘입어 지금의 김미경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는 대목이 너무 인상 깊었다.

 

아빠의 사랑이란 치트키는 그 사람의 인생을 당당하게 만들고 역전시킬 만큼 참 힘이 세다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깨달았다. 부럽지만 다시 인생이란 게임을 리셋해서, 나만의 딸바보 아빠 캐릭터를 세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진: UnsplashNachelle N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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