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리 Apr 14. 2022

Boy in the Mirror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07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초보다. 학교 돌아가는 사정은 미루어 짐작하여 알 정도이지만 제대로 일을 해봤다기엔 부족하다. 그건 내가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강사로, 초등 기간제로 일한 탓에 중등에서 담임으로, 주요 업무 담당자로 일해본 적이 없어서다. 지금까지 수업 위주에 비교적 손이 덜 타는 업무들을 맡았다. 여기 대전으로 옮겨온 후 다시 일자리를 구할 때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감사하게도 3월부터 중학교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 경력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중학교였으니 나름 감회가 남다르다 하겠다.


Back in 2009. 내가 학교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던 곳은 서울에서도 강북 맨 위쪽에 위치한 한 중학교였다. 학교 앞으로 하천이 하나 지나는데 그걸 가운데 두고 아래는 아파트촌, 위는 빌라와 단독주택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 두 동네에서 학생들이 왔는데 사는 곳에 따라서 수준 차이가 컸다. 내가 수업 들어가던 반의 학생들은 대부분 위쪽 동네에 살고 있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건 둘째고 학교 생활이 성실하지 못한 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애들과 씨름하면서 내가 이러면서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기를 보냈었다. 이제 10년도 더 지난 지금, 또다시 그런 중학생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 학교도 학군은 좋지 않은 편이고 축구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맡은 반에는 축구부 학생들과 기초학습부진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역시 공부에는 관심이 많지 않고 축구부 학생들 대부분은 성실치 않다. 이 얼마나 놀라운 데칼코마니란 말인가!


이 와중에 대망의 J군이 있다. J군은 올해 2학년으로 북한도 무서워 떤다는 바로 그 중2 남학생이기도 하다. 근데 올해만 유독 별종인 게 아니고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불량의 길을 걸어 작년 신입생일 때부터 이미 입소문이 자자했던 녀석이었다. 요즘 촉법소년 어쩌고 등으로 이미 잘 알려진(?) 소년원 경력도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우는 건 기본이라 100번을 싸우면 1년이 간다는 선생님들 사이의 말이 있을 정도다. 이건 가벼운 정도. 여러 다른 관할 경찰서에서 이 녀석을 찾는 전화가 오기도 한단다. 다른 동네에까지 원정 나가 말썽을 부리는 유명인사였던 것이다. 그런 J군이 내가 수업하는 반의 학생 중 한 명이다. 나를 처음 만난 날, 이 녀석이 바로 내 눈앞에서 다른 반 학생과 싸웠다. 한 차례 머리채 잡음과 가벼운(?) 주먹질이 순식간에 오갔다. 싸운 두 놈을 붙잡고 나는 논리로 맞섰다. 처음 보는 선생님과 졸지에 논리적인 대화법을 맞닥뜨린 둘은 논리에 막혀 어버버 하면서 다툼의 열기를 식혔다. 어느 정도 진정을 시켜 본 교실로 J군을 돌려보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긴장감이었다. 그러고는 몇 주 동안 J군을 볼 수 없었다. 결석이 부지기수고 학교에 왔어도 이내 조퇴하고 가버리기가 일쑤였다. 조퇴라도 하고 가면 다행, 그냥 사라져 버리는 적도 많았다. 담임, 학생부, 학년 부장 선생님들이 J군을 찾으러 온 학교를 뒤지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러던 J군이 드디어 컴백을 했다. 이번 주에 나는 그 녀석을 두 번이나 만날 수 있었다. 저번 시간에는 그냥 내리 딥슬립을 하셨다. 마지막에 영어 문장 하나를 쓰고 가야 한다고 학습지를 들이밀었더니 상형문자 한 줄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사달이 났다. 6교시 수업이었는데 녀석이 처음에는 없었다. 결석인 줄 알았는데 수업 시간 10분 정도가 지나고서 담임선생님이 영어 교실까지 데려다주셔서 들어왔다. 엄마가 멱살 캐리를 해서 오후 1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학교에 온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수업을 시작해서 내가 한창 빌드업 중이었는데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너무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 놓고 온 티셔츠가 있다며 화장실을 가겠다고 계속 종용을 했다. 학교 화장실에서 J군께서 끽연을 즐기신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수업 시간 중 이동은 불가하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수업을 뒤로한 채 저번처럼 다시 논리의 기관총을 열심히 난사했건만 실랑이 끝에 J군은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한 놈을 잡자고 내가 쫓아가면 나머지 학생들을 방치하는 꼴이 된다. 나는 수업을 선택했다.


수업이 끝난 후 본 교실에 가봤지만 J군은 없었다. 화장실 칸칸마다, 학교 곳곳을 다 뒤져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선생인 나, 공부하는 수업 시간, 그리고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깡그리 무시한 행동에 너무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을 끝까지 건사하지 못했다는 무력함과 모멸감에 더 열이 받았다. 담임선생님과 학생부 선생님께 이 얘기를 전했더니 그럼 집에 갔을 거라고, 전에도 그랬다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들과 어느 정도 상황 정리를 하고 교무실로 돌아와 자리를 정리하고 바로 퇴근했다.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쭉 잤다. 집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누워있었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 선생으로서 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교회 가서 어제도 J군을 위해 기도했는데 나는 왜 이런 일을 겪는가. 여러 생각들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더 생각하기 싫어서 급하게 B마트 쇼핑을 했다. 얼마 전부터 먹고 싶었던 티코 딸기를 샀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뭐라도 써야 될 것 같아서 랩탑을 열고 이렇게 쓰는 중이다.


오늘 J군과의 사건을 겪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난 주님을 불렀다. 주님, 어찌할까요.. 그러고는 그냥 더 생각하기 싫어서 잠들어버렸다. 근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예수님 생각이 났다. 이번 주가 고난주간이라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수순이긴 하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기꺼이 죽음을 당해 주셨다. 이번 주 월요일 가정예배 시간에 우리 부부가 나누었던 말씀도 생각이 났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절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예수님을 믿었을까. 우리는 둘 다 안 그랬을 거라고 예상했다. 배척하기까지는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믿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J군이 오늘 한 행동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혼자 분해서 붉으락푸르락하는 이런 내가 과연 그러지 않았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선생이라면 응당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해야 하건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금의 내가 그 어떤 것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죄인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았는가. 그때 그 사람들뿐인가. 아니, 예수를 못 박은 것은 바로 내가 아니던가. 마침 퇴근한 남편이 오늘 작업한 것이라면서 봐달라고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어노인팅의 <내가 예수를 못 박았습니다>가 배경음악이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예수 흠도 죄도 없는 당신이

깊이 감춰둔 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어린양 속죄의 제물 되어

저주받은 나무에 달리셨네


예수를 부인하고  박은 죄인은 J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완벽한 확인 사살이었다.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을 보이셨는지  안다면서 어느샌가 그건  사라져 버리고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내가 그것을 받을 만한 존재인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J군은 예수님 앞에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머리와 생각이 아닌 정말 마음으로 깊이 묵상하기를 원한다.  사랑을 깊이 깨달아 나의 거울인 J군에게 다시 비춰 보여줄  있기를 주님 앞에 엎드려 구한다. 나는  엎드러져야 하고 그분의 도우심으로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J군을 처음 만나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주님이 이유가 있으셔서 나에게 J군을 만나게 하셨을 텐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이것이 나에게 주시는 epiphany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의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