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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Aug 06. 2022

INTP도 크리스천이에요

<내향적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 사용 설명서>를 읽고

그야말로 MBTI 테스트 광풍이 불었던 2020년. 코로나 위기가 들이닥치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SNS의 조류에 휩쓸리는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MBTI 테스트로 우리는 대화 주제를 삼게 되었다. 비록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새로운 대화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모두 즐거워했다. 사실 나는 이전에 아는 지인들을 통해 이미 에니어그램이나 MBTI 테스트와 같은 성격유형 관련 검사들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유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해석에 크게 납득(?)된 상태였다. 새로 다시 해보면 다를까 했지만 이전과 똑같은 결과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 주위에서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20년에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을 난 딱 두 명 만났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지금의 남편.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성격 유형이라 그랬던 것인지 나의 성격적인 취약점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그래도 정도가 덜한 편이었으나 극에 달했던 것은 바로 교회에서였다. 모교회에서만 근 30년을 몸담고 있었기에 성도들 모두는 나에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어려웠던 점은 '관계를 통해 신앙이 성장할 수 있다'는 명제가 내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례로 이런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같은 청년회 분반에 속한 한 자매가 결혼으로 곧 청년회를 떠나게 되어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이번 분반을 통해서 여러 일들을 겪었고 그것이 물론 힘들고 어려웠지만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이곳에서 진정한 교회가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여기가 진정한 교회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곳이라고? 난 그렇지 않은데. 알긴 알지만 잘 아는 것도,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들과 타의에 의해 한 반으로 묶여 매주 뭔가를 나누고 교제해야 하는 이런 모임에서. 나에겐 깊은 것도 안 깊은 것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정도의 관계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 상황에. 교회의 모임 중 하나이지만 이곳이 정말 교회의 참된 의미를 반영하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그녀는 정말로 그 의미와 깊이를 깨달았단 말인가?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나에게 어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은 더없는 관계의 충만함 속에 서로를 깊이 이해하시고 함께 교제하시는데, 그리고 그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데, 그 초대에 제대로 응하려면 교회 안에서 그런 아름다운 함께함과 동역함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는데!! 나는 왜 그게 잘 안 되는 것인가. 통탄스러웠던 날들이었다. 


한동안 통탄의 날들을 보냈지만 여전히 나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금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찰나에 극적으로(?) <내향적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 사용 설명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출간 소식을 접한 나와 남편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언젠가는 이런 책이 나올 줄 알았다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직접 읽어보니 그 답을 찾아가는 길에 분명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일단 전반부에는 내향성이 큰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여기에서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참모습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안에 교회의 긍정적인 또는 바람직한 모습으로서 '외향적 모습'들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짚어내는 부분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교회의 모습들이 어쩌면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미지는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정의와 그들이 가진 그 모습으로 인해 외향성의 교회에서 어렵고 상처가 되었던 부분들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 수 있을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교회에서 그래도 괜찮다!'라고 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무엇보다 가장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타인들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주체할 수 없고 외부를 향하는 열정으로만 표현될 필요는 없다. 신앙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아마도 표면 아래서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타오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조용한 저녁 시간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으로부터 나온 행위다. 
                                                                                                 - p79, 2장 내향성의 차이 중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써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인과 함께하기를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둔감하다거나 혹은 냉담하다는 평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어렵지만 노력했던 부분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나의 고민과 분투를 알아주는 것 같아 정말 고마운 말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사용하셨으며 사용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p81)는 문장은 나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지 기대하게 해 주었다.


내향적 영성에 대한 4장에서는 내향성이 중심이 된 여러 영성 훈련 방식들을 소개하고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이에 덧붙여 '내향적', '외향적' 영성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우를 범치 않도록 도와주는 덧글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내향성을 가지고 어떻게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제안을 정리해 둔 5장의 부분은 솔직히 모든 부분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다만 생각하는 과정을 드러나게 하여 더욱 깊은 차원으로 함께 삶을 나누도록 다른 이들을 나의 내적 처리 과정에 초청하라(p161)는 말과 관계를 맺는 초기 단계에서는 많은 질문을 던지라(p162)는 조언은 새겨듣고 적용해볼 만하다 생각한다.


후반부인 6장부터의 내용은 나와 같은 성격 유형을 가진 남편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 싶다. 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은 얼마 전 실제로 자신의 기질과 선호가 사역에 있어 진정 도움이 되는 부분인지 깊이 생각했었다. 자신과 다르게 외향성이 높은 분들이 사역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계발했어야 하는 것은 저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고민했던 남편의 말이 후반부를 읽으면서 많이 생각났다. 물론 당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상황 가운데서 그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셨지만, 그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남편은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그분으로부터 교훈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교회 공동체에서 인도자로 앞서 일하시는 내향성을 가진 분들에게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사역의 성격과 방향을 설정 및 조정하는데 이 책은 분명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계속 남편에게 당신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봐야 할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향적인 사람의 복음 전도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다. 오랜 친구들,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들이 주위에 늘 있지만 그들 중 실제 교회에 연결되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복음 전도가 마음 한편에 늘 부담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도 그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여전히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은 일들도 복음 전도의 일환이라는 것에 감사했고 또한 참된 복음이신 그분이 직접 그들을 만나주실 그날을 절로 기대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농담 삼아 남편과 I유형인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킥킥대면서 그 모습이 어떨지를 그저 상상만 했었는데 이런 책을 만나게 되다니.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출간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내향인이 중심이 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통일되게 하심으로 어떻게 동역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이전의 나는 내 자리를 찾으려 없는 틈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려 하는 통에 '분투'하기에만도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께서 이런 나로 하여금 어떤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지 그 필요를 보게 하시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INTP도 크리스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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