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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Oct 05. 2022

보호자가 된다는 것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1

나의 보호자 경력은 2010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엄마가 급성 췌장염으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다. 한 달 동안 엄마는 입원하시게 됐고 우리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간병을 맡았다. 회진이나 약, 식사를 받아야 하는 시간에 내가 필요한 순간이 되면 나는 '보호자님'으로 불렸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픔과 고통은 환자가 오롯이 혼자 겪어 내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덜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지만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서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아픔을 잠깐이라도 잊어보려는 요량으로 휠체어에 태워 병동을 돌아달라고 엄마가 부탁을 하셨다. 엄마를 앉혀 병동 복도를 도는데 휠체어를 잡은 손등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보호자이지만 엄마를 힘들게 하는 그 무엇으로도 나는 보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호자 경력은 단절되는가 싶었는데 결혼으로 나는 이름만 보호자가 아닌 진짜 "보호자"가 됐다. 경력 단절에서 영구 경력으로 전환되었다 해야 할까. 그걸 잘 몰랐는데 이번에 아주 제대로 깨닫게 됐다. 바로 남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것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남편의 몸 상태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주말에 늘 일이 몰려있다 보니 좀 피곤해서 그렇겠지 생각했다. 환절기라 감기 오기 직전 느낌인 듯도 했다. 본인에게 정작 물어보면 그냥저냥 괜찮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고는 확진 판정 전날 밤에 집에 있던 감기약 하나를 먹고 약간 미열이 올라오는 상태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 그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침에 보니 열이 꽤 있어서 출근 전에 병원에 들렀다 가라고 당부를 하고 난 먼저 학교로 출근을 했다.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왔는데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양성이라 오늘부터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으왓. 이게 다 뭔 일이란 말인가. 나도 서둘러 나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음성. 그러나 내일도 음성 이리란 보장은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다음 날에는 미리 신속항원을 받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학교에 상황을 알리고 시험 감독 일정을 조정했다. 평범한 시민에서 양성 예정자로 분류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퇴근 후부터 본격적인 '보호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호자로서의 첫 번째 할 일. 방역수칙 준수를 통해 서로 기본적 생활의 영위가 원활하도록 최대한 돕는 것. 격리가 시작된 날부터 남편은 안방을, 나는 옷방을 각자의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으며 수시로 손을 씻었고 무엇이 됐든 모든 사용이 끝나면 늘 소독 티슈로 마무리를 했다. 이른 아침과 밤을 빼고는 내내 양쪽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안방에 있는 공기청정기도 틀어뒀다. 우리 집에는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늘 환풍기를 켜 두었다.


보호자로서의 두 번째 할 일.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돌보는 것. 보통 하루 이틀 정도 고열에 시달리다 끝난다던데 남편은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38도 이상으로, 나중이 되니 37도 정도의 미열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물수건을 갈아주고 이불도 바꿔주고 했는데 남편의 경우 격리가 끝나는 날까지도 열과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파서 그런지 남편은 먹는 행위 자체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약을 제때 챙겨 먹으려면 밥을 꼭 먼저 먹어야 했다. 그리하여 식사를 준비해 때에 맞춰 먹이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일이 되었다. 여름 내내 주방 출입 금지와 요리 반대의 규제를 받던 나는 하루아침에 자유인의 신분으로 주방을 활보하게 됐다. 남편이 먹는 게 편치 않다고 하니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있을 만한 것들로 식단 구성을 해야 했다. 보통 때도 하루 세 끼를 다 안 먹는데 졸지에 매일, 매끼의 식단을 책임지게 되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하루 세 번 모두 다른 메뉴로 식단을 구성하여 차려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보호자로서의 세 번째 할 일. 내가 건강할 것.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당신도 아파서 그냥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만약에 나까지 같이 아프면 누가 이 환자들을 돌볼 것인가. 나는 반드시 코로나를 피해야했다. 확진 판정 후 이틀 동안 받은 신속항원검사의 결과는 모두 음성. 참 다행이었다. 동거가족 같은 밀접접촉자는 확진 판정 후 3일 이내에 PCR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그것도 받았다. 마찬가지로 음성. 나는 정말 슈퍼 면역자일까? 격리 마지막 날에도 자가 키트와 신속항원검사를 거쳤는데 끝까지 음성을 수성해내었다. 이만하면 코로나의 진정한 승리자라고 할 만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내가 아프지 않아서 그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더하여, 주일 저녁에 내가 진짜 보호자라는 사실을 난 더욱 체감하게 됐다. 병원에서 약을 조제해주어 남편은 지난 토요일까지 그 약을 먹었다. 타이레놀과 병행하여 복용했는데 주일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도 좀처럼 열이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도 공휴일이라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의 휴대폰을 뺏어 들고는 재택치료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증상을 설명했더니 지정 약국에서 약을 받아가란 답이 왔다. 지정 약국은 우리 집에서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휴일이라 집과 가까운 곳에는 지정 약국이 없다고. 처방전을 팩스로 보내주겠다는 답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약국으로 달려갔다. 그 결과, 처방전보다 내가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약사 선생님은 처방전보다 먼저 도착한 나를 보고 조금 놀랐다. 선생님은 보호자인 나에게 조제약과 먹는 치료제의 복용법과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 내가 진짜 보호자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몇 년 전 엄마의 수술 날이 생각났다. 엄마가 담낭절제 수술을 받으시게 되어 아빠와 내가 병원에 갔다. 수술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이라든가 기타 부작용들에 대한 설명은 모두 같이 들었다. 하지만 수술 중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보호자인 아빠를 관계자들이 불러갔었다. 그때의 아빠처럼, 이제는 내가 그런 보호자가 된 것이구나. 버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접 겪어보니 코로나는 생각보다 질기고 강했다. 코로나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이 있는 게 괜한 말이 아니겠다 싶다. 이 일을 겪으며 우리의 결혼 서약문이 생각났다. 결혼 전부터 꼭 쓰고 싶은 서약 문구가 있어서 실제로 내 결혼 서약서에도 그 문구를 썼다.


in sickness and in health
건강할 때나 아플 때, 어떠한 경우에든지


보호자인 우리는 사실 그런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애당초 병으로부터 완전히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돌보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건강할 때나, 아플때나 어떠한 경우에든 사랑하고 함께 하겠다는 그 약속.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보호자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하고 함께 해주시는 그분이 진정한 보호자이심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그분께 내가 보호하는 이들을 의탁하는 것이 보호자인 내가 해야 할 가장 우선의 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격리 해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남편은 미열이 있다. 아마도 염증이 다 가라앉지 않아서 그렇겠지. 우리의 참 보호자 되시는 그분께서 온전히 치료해주시기를 구하며 자가격리 시간을 마무리하려 한다.


… to the Shepherd and Guardian of your souls. – 1 peter 2:25


+ 오늘부로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어 남편은 다시 출근을 했다. 오늘부터는 이제 빨래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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