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리 Sep 03. 2022

육체의 연단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0


6월 어느 날. 처음 시작은 다리였다. 종아리가 이상하게 저릿저릿해서 양손으로 열심히 주물렀다. 특별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의아했다. 그러더니 왼쪽 어깨 뒤쪽이 결리는 느낌이 들었다. 담 걸린 것처럼 불편해서 며칠을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큰 차도가 없었고 며칠 후부터는 왼쪽 팔도 살짝 저리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내 몸 상태가 요즘 이렇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가 디스크 증상 같다는 말을 했다. 자기는 자다가 팔이 너무 저려서 깼다고, 한참 팔이 움직일 생각을 않고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보여서 놀라고 무서워서 열심히 주물렀더니 그나마 좀 나아졌었다고. 다음날 찾은 병원에서 목디스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의 증상과 너무 비슷하다고 자기가 다녔던 병원에 가보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친구가 소개해 준 한방 병원에 가서 받은 첫 번째 처방은 도수치료였다. 그동안 물리치료만 받아봤지 도수치료는 처음이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내 어깨 뒤쪽을 누르면서 처음으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 건가요. 


온몸을 쥐어 누르는 엄청난 세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폭풍처럼 지나간 두 시간 후. 나는 너덜너덜(?)해져서 병원을 나왔다. 몇 가지 운동법과 생활습관 교정을 전달받았다. 다음날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교무실 모니터를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 학교에서는 각자 랩탑을 줘서 업무에 사용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썼다. 안 쓰던 모니터를 연결해서 거북목을 방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선과 고개는 정면, 뒤통수는 항상 의자 머리 받침대에 고정하는 걸로. 


그리고 요가를 시작하기로 했다. 리틀시스가 대략 1년 전부터 집 근처에 있는 요가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만족도가 엄청 높다고 했다. 일단 자기에게 잘 맞는 운동이고 뭔가 시퀀스나 동작을 완성했을 때 쾌감(?)이 있다고. 같이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었다. 그리고 요가를 할 거면 헬스장에 있는 요가 시간 같은 거 말고 요가원에서 하는 게 낫다고 조언해주었다. 혹시 몰라서 나도 집 근처에 요가원이 있나 찾아봤는데 정말 집 근처에 있었다! 생각보다 정말 가까운 곳에. 이 요가원에는 주 중 3일 동안은 아침과 저녁 시간으로 두 번, 주말의 경우는 아침과 오후 2시까지 두 번의 수업이 잡혀있었고 주 중 나머지 이틀은 아예 수업이 없었다. 현관문에 붙어 있던 전단지에 안내된 요가 수업들은 보통 타이트하게 거의 매 시간마다 수업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던데 신기했다. 그리고 나의 눈길을 끈 문구는 바로 이것이었다. 


초급 수련자부터 고급 수련자까지 개인에 맞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신청할 수 있는 루트가 따로 없어서 선생님 휴대폰 번호가 나와 있길래 문자로 물어봤다. 1개월, 3개월 그리고 10회권이 있다기에 일단 10회권으로 등록해서 해보고 싶은데 가능한지, 초심자도 정말 수강이 가능한지를 물었더니 처음 해도 괜찮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따라오면 된다는 답이 왔다. 등록 전에 먼저 방문해야 하느냐 물었더니 그냥 수업 당일에 와서 바로 참여하고 등록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7월 첫째 주 토요일. 요가원에 갔다. 토요일 아침 열 시 반에 수업이 있는데 첫날임에도 나는 지각을 하고 말았다. 갔더니 문이 닫혀있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철문이 덜컥 열렸고 나는 매우 민망하게 요가원에 입장을 하게 됐다. 맨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동작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요가 자세 구령에 맞춰 사람들은 일제히 자세를 취했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나는 옆 사람들을 열심히 곁눈질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선생님이 “오늘 처음 오신 분!”을 몇 번 외치면서 다시 자세를 취하도록 교정해주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고 토요일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아무튼 요가>의 상아님이 겪은 일이 바로 내 일이 된 것이다! 


선생님과 첫인사를 나누고 다시 물었다. 이런 저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누구나 할 수는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할 수는(?) 있다고 하니 일단 10회를 질렀다. 그렇게 나는 초보 요기의 길에 들어섰다. 첫날은 뭣도 모르니 그냥 지나갔는데 한두 번 수업을 하면서 점점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일단 요가원에는 나 같은 초보자보다는 숙련자분들이 훨씬 많았다. 보통 수업 후반부에는 하체를 뒤집어 접는다거나 거꾸로 서서 다리를 접는 것 같은 어려운 자세들을 많이 하는데 모두 거꾸로 서서 주상절리처럼 서 있는 사이에 나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때가 많았다. 작은 소리로 우와를 늘 연발하며 정말 내가 여기 와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나는 다리 뻗고 앉아서 몸을 숙일 때 발에 손이 닿지도 않는걸. 할 수는 있다고 했지만 실은 안 되는 걸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10회 중 절반이 지나갈 무렵,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등, 허리, 골반 모든 근육들의 움직임을 구별할 수 있었고 동작에 맞게 그걸 조정해보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자세를 취하기 급급했는데 선생님의 설명대로 내 몸이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완벽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후반부의 어려운 동작을 해야 할 때 선생님은 나를 그냥 누워있게 놔두기보단 한 번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이 말을 했다. 본인의 생각보다 몸은 훨씬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미리 겁먹지 말라고. 5초만 세고 내려오라면서 가볍게 내 다리를 들어주었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체를 위로 세워봤다. 선생님이 요구하는 건 이런 것들이었다. 불편한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받아들여라. 습관의 반대로 엎드리고, 돌고 누워라. 아픈 건 참지 말고 대신 힘든 것은 참아내라. 요가에는 그동안의 내가 했던 것들과 반대로 해야 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요가만 그런가. 실은 나의 일상과 생활에서도 사실 그게 필요하지 않던가. 불편하다고 싫어할 것만이 아니라 집중하고 받아들이는 것, 습관과는 반대로 마음을 먹고 행동해보는 것, 몸과 마음이 아픈 건 참지 아니하되 힘든 것들은 견뎌내는 것. 이래서 요가를 수련이라고 하는 걸까.   


요가원이 주로 하타 요가를 다루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요가 클래스에서 난 여전히 극 초보자이다. 그래도 좋은 것들이 몇 가지 생겼다. 일단 저릿저릿한 자극이 오는 부위와 그에 대한 내 몸의 반응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되니까 그게 참 좋았다. 처음에는 나만 엄청 비루하겠구나 싶었지만 헉헉거리는 한계의 순간을 마주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들고 그저 온전히 그 시간에만 집중을 하게 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일상 중 온전히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화요일 저녁에는 선선해진 저녁 공기를 누리는, 토요일 오전에는 뭔가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음료를 한 잔 하고 나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요가를 하고 나면 몸이 덜 아팠다. 확실히 지금도 몸의 왼쪽이 안 좋은 편인데 요가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걷기가 훨씬 편해지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나 같은 인간 각목이야말로 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8월의 마지막 날이 대망의 10회 차였다. 그날 중간에 두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서 무슨 동작을 하는 게 있었는데 선생님이 자세를 봐주러 왔다. 그러곤 어? 왜 이렇게 골반이 다 풀려서 왔지?, 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훗. 이제 나도 좀 뭐가 되긴 되나 보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더욱 크게 변화를 받아들였고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나는 다시 10회를 등록할 생각이다. 다음 10회가 지나면 나는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할 수 있겠지.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1 Tim 4:8)고 말씀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육체를 연단하는 과정을 통해 범사의 유익한 경건의 연단으로 나아갈 수 있길, 그리고 디스크로부터 목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럼 이제 동절기에 입을 운동복을 사볼까. :)     

작가의 이전글 그대의 이름은 장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