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3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징, 뚜렷한 사계절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 미친 환경 변화로 인해 사계절은 점점 그 뚜렷함이 옅어져 버렸다. 이제는 짧은 봄, 가을과 길고 긴 여름, 겨울을 보내는 게 보통이 됐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겨울은 대략 11월 말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4월까지 이어진다. 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겨울이면 난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걸 보통 겨울 우울증이라 부른다. 겨울이 길어진 만큼 나의 우울한 겨울날들도 늘었다. 단, 최근 2년 간은 겨울 우울증 없이 지나갔는데 먼저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답사 때문이었고 나중은 대전으로의 이사 및 정리 시즌과 겹쳤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드디어 2022년 말. 오랜만에 겨울 우울증이 제대로 찾아왔다.
'겨울 우울증'이라는 말을 나는 웹진 <ize>를 통해 2017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원래 명칭은 계절성 우울증이며 우울 증상의 시작과 회복이 특정 계절과 맞물리는 현상이 2년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중 계절성 우울증의 가장 흔한 패턴은 ‘winter blues’, 즉 겨울 시기의 우울증. 그래서 일반적으로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하면, 이 겨울 우울증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부족한 고위도 지방에 사는 사람의 1~10%에서 발생하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북유럽 사람들이 많이 겪는다고 들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 내가 이래서 지금까지 그랬던 거구나. 나만 이렇게 이상한 건 아니라는 안도감이 제일 먼저 들었다.
겨울만 되면 기운도 의욕도 없고, 늘 방학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는' 날들을 보냈다. 왜 그런지 모르게 날카로웠으며 별다른 이유 없이 울다 잠들기도 했었다. 다른 때는 안 그런데 유독 겨울에만! 그래서 겨울 방학이 되면 꼭 한 번은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대부분의 행선지는 추위를 피한 남쪽 부근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따뜻하다 못해 후끈한 공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면 남은 겨울을 연명할 힘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처음 홀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말레이시아는 기억에 참 많이 남아있다. 검색대를 지나 출국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롱패딩을 벗어던졌다. 이 두꺼운 걸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탑승구 근처에서 주운 큰 면세 쇼핑봉투에 패딩을 접고 또 접어 욱여넣고는 그걸 캐리어 위에 얹어 끌고 다녔는데도 힘든 줄 몰랐다. 말레이시아는 밖이 더우니 실내 공간에서는 대부분 에어컨을 잘 가동해 두어 시원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어딘가에 들어가 잠시 앉아 더위를 식히면 그곳이 천국이었다. 시내를 관통하는 스카이워크는 그래도 선선한 편이어서 납작한 샌들 때문에 발이 아파도 몇 번씩이나 왕복하며 신나게 걸어 다녔다. 그런 식으로 겨울에는 여기보다 따뜻한 어딘가를 다녀와야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해외여행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금이야 상황이 나아진 편이라 아예 갈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비용적인 면에서 여전히 부담이 컸기에 올 겨울에 해외여행을 생각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여행 계획도 없이 겨울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학기 기말고사가 마무리된 12월 중순부터는 우울감의 정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해야 할 일들이 마무리된 것 같아서 그랬는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고 버스 타러 걸어가는 것도 귀찮아져서 더 돌아가는 노선인데도 그냥 집 앞에서 출근 버스를 탔다.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냥 누워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혼자 있다가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뻗어 있는 나에게 괜찮냐고 물으면 자동적으로 눈물이 철철 흘렀다. 그저 줄줄 울기만 하는 나를 남편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달랬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면 똑같은 하루가 다시 반복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하면서 집을 나섰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든 상쇄해 볼 요량으로 나름 연말이라며 분위기를 내보려고 청년들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시간을 보냈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즐거웠지만 12월 둘째 주에 모든 일정들이 끝나고 나자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진짜 연말연시 시즌이 시작됐는데 일 년 중 이때가 남편이 제일 바쁜 시기여서 도리어 나는 그 시간들을 오롯이 혼자 보내야 했다. 아무 연고 없는 이곳에서의 연말은 나에게 없는 것들만 더 크게 부각되었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나만의 아지트와 소울푸드 맛집들, 깊이 있고 풍성하게 나누는 삶과 신앙의 이야기 같은 것들. 인스타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은 즐겁고 따뜻하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심지어 남편마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괴감과 우울함으로 사무치도록 몸서리쳤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맞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은 모두 주일이었다. 교회에서 준비한 다양한 행사들이 특별한 날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자 대부분 교회 일을 서둘러 정리하셨다. 다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러 가려고 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해가 시작된 1월 1일이 나에게는 새롭고 즐거운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을 자각하자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서글프고 억울한 마음이 갑자기 확 들었다. 먼저 집에 가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통보하듯 던지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집에 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퍼질러 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엉엉 운건 그동안 겨울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다다음 날, 나는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남편이 걸렸을 때도 안 걸리고 지나갔는데 갑자기 코로나라니. 심지어 생리주기까지 겹치면서 새해 첫 주는 졸지에 내 기억에서 깡그리 사라진 시간이 돼 버렸다. 소원(?)대로 출근 대신 격리 생활을 하면서 극한에 치달았던 겨울 우울증은 코로나 증상의 고통에 그 자리를 내어 주게 됐다. 도리어 그러면서 나는 다시 회복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편이 바쁜 중에도 간병하느라 애써 주었고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상, 겨울 우울증을 코로나로 타개한(?) 이상한 생존기였다. ㅋㅋㅋ
여기까지 써두고 마지막 문단을 정리하지 못한 채 겨울을 다 보내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매년 겨울마다 겪는 일인데 올 겨울은 왜 그리도 유난스러웠던 건지. 그 이유를 곱씹어 보느라 마지막 마치는 말을 써내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겨울 우울증은 겨울 자체보단 아직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이 겨울이란 계절을 만나 큰 파장의 나비효과를 가져온 것이 이유였다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러니 이전에 비해 더 격한 반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는 지금 현재의 내 모습과 자리에 대해 여전히 문화충격 및 아노미 상태란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이기도 했다. 오랜 정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이 겨울의 특성이 불안정한 모습으로 멈춰버린 지난 1년 동안의 내 모습과 겹쳐졌던 것이다.
언젠가 추운 1월의 어느 날, 거센 바람을 가르며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동네 그림책방에 갔었다. 사장님께 겨울에 어울릴만한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엘함 아사디의 <첫눈>이라는 책을 보여주셨다. 이란에서 전해 내려오는 눈에 관련된 설화이야기였다. 아름다운 판화 삽화가 실린 책이었다. 책에서는 봄을 가져오는 전령 노루즈를 기다리며 하늘 위에 살고 있는 나네 사르마라는 여인이 그가 올 때를 준비하면서 집 안 청소를 할 때 떨어내는 먼지가 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나네 사르마는 노루즈를 기다리다 잠깐 잠이 들어 버렸고 그녀에 집에 들른 노루즈는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우지 않고 떠났다. 나네 사르마가 잠에서 깼을 땐 이미 낙엽이 지고 있었다. 자, 이 이야기의 진짜 정수는 지금부터다. 나네 사르마는 슬퍼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기쁘게 노루즈를 기다리는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그가 손에 쥐어준 꽃을 보고 그가 다시 올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겨울을 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나에게 주어진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시간들을 잘 기다려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됐다. 내가 보기에 좋지 않아도, 힘들고 우울해도 그 안에 첫눈 같은 아름다운 순간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걷잡을 수 없게 요동치는 나의 마음은 언젠간 또다시 겨울 우울증의 격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행복을 느끼고 충분히 알게 된다면 정지와 이별의 시간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잘 견디게 해 줄 거라 생각한다. 이제 나는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 아래 새 봄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 누군가는 나처럼 겨울 우울증을 겪을 것이다. 그런 누군가에게 이 글이 응원의 말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 아이즈(ize, https://www.iz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