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4
이번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작년 11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다. 10월 말 어느 날 리틀시스가 얼마 전에 길몽을 꿨다며, 주변의 가임 상태인 기혼자들에게 연락을 해봤다는 것이었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모두 아니라고 했단다. 그럼 이건 언니랑 형부 얘기가 아닌가 싶다고. 마침 자궁은 생리 예정일을 사나흘 넘기고도 무반응 상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다음날. 월경의 정기 방문을 맞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 3 대장은 바로 이거라고. 결혼, 임신 그리고 출산.
나는 40줄을 앞둔 초고령 임신 예정자였다. 이는 40대 중반인 남편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어차피 확률이 희박하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너무 마음을 졸이지 말자고 했다. 또한 결혼 후 당장 6개월 뒤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놓여있었다. 여러 변화들 앞에 임신은 여러 상황들이 정리되고 안정이 된 후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대할수록 내가 정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졌다. 남편의 경우, 어렸을 때 경험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들이 자신으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를 의심하게 했다. 남편은 자신은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고 자주 말했었다. 이런저런 상황과 그러한 우리의 상태로, 피임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임신을 위해 열심히 ‘노력’ 하진 않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결혼 후 막 1년이 되어갈 무렵, 부모님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주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답을 드렸다. 엄마는 당사자들이 간절함이 없으면 주변의 기도와 염려가 무슨 소용이겠냐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에게 아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정확한 검진을 위해 난임센터에도 한번 가보기로 의견도 나누었다. 하지만 난임 상담을 위해서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난 2월에 믿음의 선배이신 한 자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자매님 부부는 아이 없이 두 분이 함께 선교사역을 담당하고 계신다. 검진 결과 두 분 모두 건강상의 문제도 없었도 시술도 시도해 보셨지만 아이는 갖지 못하셨다고. 자매님은 자신이 크게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것 같다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잘 살펴보고 남편과도 이야기를 나눠보며 생각해 보라 조언해 주셨다. 이 교제를 나눌 때만 해도 나도 자매님과 사실 비슷했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엄마들의 마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바라는 한나와 같은 그런 마음이 나에겐 없었다. 하지만 계속 기도는 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고, 우리에게 아이에 대해 바라는 마음을 달라고. 그 무렵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잠깐 교회를 방문했던 어느 집 손자인 한 남자 아기를 내가 청년 자매들과 함께 봐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신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 와전이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집에 아들이 있더라, 는 이상한(?) 소문이 교회에 잠깐 났다가 싱거운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우리가 아이를 갖기를 바라시며 기도해 주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4월. 생리 예정일 나흘 전에 갑자기 피가 비치길래 며칠 일찍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이내 피가 멈춰버렸다. 몸이 안 좋나 생각을 하면서 결혼식 참석으로 주말에 서울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나들이라 그랬는지 다녀와서 엄청 피곤했다.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마구 쏟아졌다. 그래서 요가도 못 가고 그냥 집에서 쉬었다. 게다가 그 무렵에 갑자기 코감기가 된통 들어서 정말 엄청 힘들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리가 중단된 적이 없어서 남편한테 얘기를 했더니 임신 테스트기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아주 연한 두 줄. 집 근처 산부인과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봤더니 마찬가지여서 결국 피검사를 받았다. 그러고 이틀 뒤, 임신이라는 결과를 들었다. 다음 주에 초음파로 확인하러 오라는 안내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면서도 좋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우웁하면서 입덧을 하거나 서프라이즈로 임테기를 보여주며 임신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단계적으로 임신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양가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임신 소식을 전했고 모두 기뻐하셨다. 모두들 좋아하시니 우리도 덩달아 더 기분이 좋아졌다. 금요일에 미리 다음 주 월요일 병조퇴를 상신했더니 교무부장님이 바로 올라오셔서 혹시 좋은 소식 있는 거냐 살짝 물어보셨다. 검사 결과를 말씀드리고 초음파 보러 가게 됐다고 했더니 잘됐다고 손을 맞잡으며 축하해 주셨다.
하지만 임신 소식을 알게 되고 나에게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임신 확정과 함께 찾아온 감기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호된 코감기는 일상생활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원래 같으면 바로 약을 처방받아서 먹으면 됐을 텐데 임신 중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주말에 집 근처 내과에 찾아갔는데 딱히 방법이 없다면서 일단 나잘 스프레이를 처방해 줄 테니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이걸 써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처음에 처방 차트를 막 쓰다가 임신 중이라 했더니 쫙쫙 두 줄 취소선을 그었다. 먼저 처방받은 나잘 스프레이도 사용할 수 없고 여기서는 해줄 게 없다고 했다. 결국 코 청소 정도만 받고 나와야 했다. 가슴이 전보다 땅땅해져서 살짝만 스치거나 눌려도 아팠다. 상당한 피로감으로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바로 드러누웠다. 원래 이런 건지, 내가 감기가 된통 걸려서 이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이렇게 통증과 힘듦을 견뎌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앞서 느낀 기쁨을 잠식해 버렸다. 앞으로 이렇게 10개월을 견뎌내야 한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크게 다가왔다.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상상해 온 아기를 품는 일이 이런 건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아파도 약을 먹을 수 없고, 업무 시간에 졸음이 쏟아져도 커피를 마실 수 없다. 하고 싶었던 일들, 가고 싶었던 여행 같은 것은 이제 당분간 미뤄둬야 할 일들이 됐다. 아직 뚜렷하게 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없지만 나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변화들이 있다. 그 변화들로 이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불편감들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후각이나 미각이 더 민감해져서 예전엔 못 느꼈던 냄새나 맛이 느껴진다던지 이따금씩 화장실 가고 싶을 때처럼 배가 살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은 것들. 이렇게 생명을 품고 키워낸다는 것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원래 하던 대로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 이제. 억울함? 과 비슷한 감정이 좀 들었던 것 같다.
다음주가 되어 월요일에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난황은커녕 아기집도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임신 극초기로 약 4주 정도가 된 것 같다고, 2주 뒤에 와서 다시 확인해 보자고 설명을 들었다. 처음으로 초음파 사진을 받아봤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지만 기분이 정말 희한했다. 마침내 우리도, 나도 이런 과정을 겪어내는 것이구나 실감이 됐다. 앞서 들었던 억울함 같은 것이 희미해졌다. 내가 품기에 생명은 너무나도 경이롭고 아름다우며 신기한 것이었다. 생명의 존재 앞에 나의 옹졸함은 사라져 갔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감기가 나아져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그전보단 기운이 났다. 부지런히 중간고사 시험문제 출제도 했고 수요집회도 참석했고 학교도서관 행사 준비로 책 정리도 했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잘 지내고 있었는데 목요일에 퇴근하고 와서 보니 살짝 피가 비쳤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원래 초반에 피가 비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당황하거나 놀라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바로 드러누워서 피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기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출혈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당황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차분하게 남편에게 설명을 했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보자고, 선생님도 중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오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얘기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배가 계속 찌릿찌릿 아팠다. 새벽에 불편함과 통증 때문에 몇 번을 깼다. 다음날 아침에 깨서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피가 와르르 쏟아졌다. 학교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먼저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병가로 처리해 줄 테니 다녀와서 그냥 집에서 쉬라고 말씀해 주셨다. 병원에 갔더니 예상대로 착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화학적 유산을 하게 된 거라고, 생리로 계산하는 게 맞겠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5주의 임신 기간이 끝이 났다.
목요일 저녁에 흐르는 피를 보고 나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생명의 첫 시작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내가 무언가를 더 하거나 덜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생명은 전적으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속한 일.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계산하던 나의 억울함이 아기보다 먼저였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다. 이런 내가 감히 잠시마나 엄마가 될 생각을 했다니. 아기를 잃은 것이 이런 나 때문인 것만 같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남편은 그렇지 않다고, 이제 막 부모라는 것을 실감하며 알아가는 단계에서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나는 죄책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경수가 끊어진 90세의 사라에게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다. 약속의 아들, 바로 이삭이었다. 출산의 기대확률이 희박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아기에게 우리는 이삭이란 태명을 붙여주었다. 너무나 부족한 엄마를 먼저 만난 이삭이는 안타깝게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경험하게 하신 이유는 내가 이삭이를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때는 그 무엇보다 생명을 귀중히 여기며 아기는 물론이고 나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의탁하여 기쁘게 그 모든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하도록 하신 그분의 계획의 일부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먼저 계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모두 그분께 맡겨드리는 그런 믿음의 삶. 그런 삶을 살고 보여주며 가르칠 수 있는 진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아기를 위해 몸이 알아서 준비했던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 몸에서 마침내 모두 빠져나갔다. 이제 새 마음과 몸으로 준비를 시작할 때다. 다시 찾아올 이삭이, 우리 부부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 Job 1:21b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 John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