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야기_ 보디발의 아내
사람들은 날 팜므파탈이라 말해요.
이름도 없이 ‘보디발의 아내’라고 기억되는 그녀, 그게 바로 나예요.
남편과 나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어요. 난 그의 출세를 위한 전시품일 뿐이었지요. 그를 위해 시답잖은 연회나 모임들에 불려 다니며 그의 옆자리를 채우고 있는 인형이었어요. 그에겐 다른 여러 여자들이 있었어요. 결혼 전, 그걸 몰랐던 건 아니었죠. 사랑받지 못하며 살 거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어요.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이 자리를 선택한 건 그의 부 때문이었죠.
누구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나였지만 가족에게서, 남편에게서 인정받을 수 없던 나는 그저 이 집에 박제된 채로 안주인 자리에 들어앉아 있을 뿐이었어요.
그때,
그가 내 앞에 나타났어요.
노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와 함께 정원을 거닐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그는 진정 내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 줬던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늙은 남편과 관계는 소원해진 지 오래였고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그는 예전부터 내가 꿈꿔오던 바로 그 이상형이었고.. 난 어느새 그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런 그가 날 거절했어요.
지 까짓게 뭔데! 노예 주제에 감히 주인을 거절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의 오열 연기에 남편은 속아 넘어갔고 그는 궁전 감옥으로 끌려갔죠.
감옥으로 가던 그날 밤.
노발대발하는 남편 옆에서 난 그를 쏘아보았어요. 그렇게 모함을 당하는데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날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날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지 너무나 후회스러웠어요.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울었죠. 하지만 사실대로 남편에게 말할 순 없었어요.
그를 다시 만난다면 정말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아버렸으니..
그가 날 용서해 줄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