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과의 인터뷰_ 술 맡은 관원장
지금의 총리님을 궁에 꽂아준 게 왕의 술 관원, 바로 나란 말일세.
자네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그럴 테지.
총리님과 나와의 인연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 말일세.
술 관원이 어떤 자리인지 자네 알고 있는가?
왕께서 드시는 음료들을 맡아보는 자리라네.
드시기에 적당한지, 혹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는 물질이 들어있는지를 조사하는 자리이기도 하지.
특히 왕께선 유독 뛰어난 미각을 갖고 계시네. 포도주를 가장 많이 즐기시기도 하고.
그렇기에 관원인 나보다도 더 감별에 뛰어나시지.
어느 날 밤, 왕께서 날 따로 부르셨네.
한창 근심이 많으실 때였기에 잠들기 어렵다 하시며 이웃 나라에서 조공으로 보내온 포도주를 내 오라셨지.
왕께 잔을 바치기 전 맛을 보았는데 조금 이상하더군.
하지만 각 포도주마다 맛과 풍미가 다르기에 난 그걸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
왕궁에는 내가 미처 맛보지 못한 술들이 가득했으니 말일세.
다음날 어의가 침전으로 불려 가고 왕께서는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셨었지.
결국 그 일로 난 독살의 누명을 쓰고 파면을 당했다네.
파면 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까지 나는 처벌을 유보당한 채 친위대장 집의 감옥에서 여러 날을 보냈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의 자리에 다시 올 수 있을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
감옥에서의 어느 날, 난 꿈을 꾸었네.
포도나무의 탐스러운 열매를 따서 내 손으로 바로 즙을 짜 왕의 잔에 담아 바치는 내용이었네.
무언가를 암시하는 내용이 분명했지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네.
난 그날 밤 잠을 설쳤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계속 꿈 생각만 하고 있었지.
복직인가? 아니면 독살 단독 범행의 주인공으로 결국 누명을 쓴단 뜻인가? 그럼 죽는 건가?
한창 머리가 어지러울 그때 총리님이 나타났다네.
당시 총리님은 자신도 수감자였지만 친위대장을 도와 수감자들을 관리하고 있었거든.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그가 무슨 일이 있냐 먼저 묻기에 난 내 꿈 이야기를 해주었지.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총리님은 복직을 의미하는 꿈이라 해석해 주었어.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그가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지.
'정말로 사흘 뒤에 복직되실 겁니다. 저의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는걸요.'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복직이 되고 이 감옥을 나가게 된다면, 꼭 자기 이야기를 왕께 해서 꼭 자길 풀어달라는 부탁을 했었지. 정확히 3일 뒤에 왕의 생일잔치가 열렸고 나는 원래 자리로 복직되었어.
그의 부탁을 기억하기엔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너무나 스펙터클하기만 했지.
가족들과의 상봉, 사회에서의 인정.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네.
왕의 꿈 때문에 온 궁이 시끄러워졌던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때 내가 총리님이 내 꿈을 해석해 주었던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면
나도, 이 세상도 영영 그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사람이 참 간사하지?
막상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니까 나 자신에게만 신경 쓰게 되더란 말이야.
총리님이 궁전으로 처음 불려 왔던 그날을 난 잊을 수가 없다네.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었어.
하지만 오히려 총리님이 나에게 다가와 먼저 고맙단 인사를 전했다네.
이렇게 나를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고.
처음엔 굉장히 호기롭게 시작했지?
총리님을 궁에 꽂아준 게 내가 아니라, 날 이 자리에 돌아오게 해 준 사람이 총리님이었다는 게 진실이라네.
그리고 오히려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자기 생각만 하고 영원히 신세 진 일을 잊어버릴 뻔했던 사람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했던 이가 총리님이시지,
정말 그는 다른 사람이야. 감옥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