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모르면 용감하다 (1)

불화의 시작

by 정선

“불암산 가보자. 단풍 구경도 할 겸!”

그가 설레는 목소리로 제안했다.

“나는 등산 싫은데...”

지난겨울, 봄, 여름... 나는 갖가지 이유를 대가며 등산 하자는 말을 거절해 왔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등산하기 딱 좋은 최고 기온 18도였다. 불암산, 불암산 노래를 부르며 몇 주 전부터 약속한 날이 오기 전까지 그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불암산을 가기로 한 당일,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이 노곤한 것이 대충 근처에서 산책이나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그냥 이 앞에 아차산 가면 안돼?”

“불암산 가기로 했잖아. 그럼 가위바위보 해서 내가 이기면 수락산으로 바꾸고, 마이걸이 이기면 아차산 갈게.”

내가 지면 수락산이라니.

“수락산이 더 높아? 불암산이 더 높아?”

“크크킄, 수락산! 가위, 바위, 보!!!”


역시 내 예상은 다르지 않았다. 늘 나는 가위바위보를 진다.

“아싸~~ 머리 쓰다가 수락산 가게 생겼쥬~? 약오르쥬~?”

36살 먹은 그가 열심히 나를 놀려댔다.

“아 나 진짜 등산 싫은데.... 오늘은 뭔가 가기 싫어.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 “

그는 약속하고 말 바꾸는 거 싫어하는 거 아는데 괜히 나는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그래도 이왕 가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그는 최대한 나를 달래 가며 말을 했다.

“나는 등산 싫어. 등산 좋아하면 혼자 좋아하는 거 해! 싫어하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가지 말고. 지금이라도 오빠 혼자 가는 게 어때?”

그래도 계속 웃으며 나를 달래던 그는 내 손을 놓고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기로 약속했잖아. 나는 몇 주 전부터 오늘만 기다리고 기대했는데 왜 상대방 생각은 안 하고 마이걸 마음만 생각해? 이건 약속이야. 사소하든 중요하든 상관없이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pms(생리 전증후군)를 핑계로 마구 삐뚤어지고 싶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걸으며 입을 닫았다. 속으로는 ‘오빠 말이 맞아.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만 목에서 걸려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약속도 마이걸이 안 지키는데 내가 어떻게 앞으로 함께 하면서 믿고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겠어?”

‘또 시작이다... 과도한 확대해석... 하...’

뜨거운 콧숨을 내쉬었다. 그냥 오늘 등산 갈 컨디션이 아닌 것뿐인데. 오빠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나는 어쨌든 수락산 갈 거야. 마이걸은 집에 가서 쉬든 같이 따라오든 알아서 해. 나는 안 붙잡을게.”

그러고는 지하철역 입구로 쏙 들어갔다. 20대의 나였다면 자존심 부리느라 바로 뒤돌아서 내 갈길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7살 딸내미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입꼬리를 내리고 터덜터덜 따라갔다.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자마자 열차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꼿꼿하게 고개를 세우고 빠른 걸음으로 열차를 향해 뛰어갔다.

‘쳇, 뒤도 안 돌아보냐.’

‘저걸 놓친 척, 놀란 척 타지 말까?’

순간 생각했지만 그럼 화해의 난이도가 더 높아지겠지.

꾸역꾸역 다리를 움직여 그 몰래 열차에 올라탔다. 내 모습이, 이 상황이 어이없고 웃겨서 그의 등 뒤로 다가가 껴안으며 귀에 대고 웃었다.

“히히히히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순간 웃음이 나오려다 필사적으로 참는 표정을 했다.

“같이 가요...”

나는 장난을 쳤다. 그제야 그는 못 이기는 척 나를 안았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걸.’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수락산 입구에 도착해 노랗고 붉은 단풍을 보며 그가 말했다.

“와 벌써 예뻐! 너무 신나! 마이걸 혹시라도 신나는데 억지로 참지는 마요~내가 모른 척해줄게.”

“참나. 어이없어.”


일단 화해는 했지만 여전히 등산은 싫고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가 서울이었는지 강원도였는지 잊을 만큼의 계곡 물소리와 높이 뻗은 나무들이 절로 꼬인 나의 마음을 풀어지게 했다. 중간에 사진도 찍고 대화도 하며 나름 무난하게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한 시간쯤 온 것 같은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지?”

나는 지도 어플을 켜 검색을 했다.

“아이, 그런 거 계산하지 말고 그냥 올라가야 해.”

그가 말렸다.

“한 시간 반? 한 시간 반?! 오빠! 한 시간 반 걸린다는데 이거 맞아?”

그렇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등산 전에 해발 몇 미터인지, 몇 시간이 걸리는지 모른 채로 등산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