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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Dec 23. 2023

두 번째 걸음

첫 합격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언 2년 하고도 3개월 정도가 돼 가는 시점이다. 사실 그 사이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낸 게 있느냐 하면 전무하다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정식으로 연재해 본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출간한 책도 없고 그저 작가가 되고 싶단 일념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말이다.


 당연히 여러 공모전을 지원해 보고 아카데미 같은 것도 지원해 보았지만 낙방 위주로만 맛보았던 지난 2년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패배의 쓴 맛은 여전히 썼고 그나마 신기하게도 마음이 완전 꺾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11월 다시금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스토리작 회사의 스토리텔링 글로벌캠퍼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회사였다. 모회사가 대원이라는 대기업이지만 일단은 자회사이고 신생인 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되고 보자란 마인드로 다시금 지원했다.


 왜 다시냐고? 이미 1회 차 23학번을 뽑는 것에도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해버리고 말았다. 이번은 2회 차 24학번이었고 나는 2회 차에 지원한 것이다.



 큰 부담은 없었다. 떨어져도 그만이란 마인드였다. 어차피 곧 카페를 오픈해야 했고 카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거기에 사실 떨어져도 바로 문피아에 연재를 시작하자란 마인드였기 때문에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서류야 뭐 자기소개서 같은 것 + 내가 직접 쓴 소설(장르소설) 20,000자 이상인가였고 자소서야 뭐 대충 내 생각을 적으니 문제없으나 문제는 작품이었다.


 처음 합격한걸 그대로 내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고 새로운 작품을 써서 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늘 웹소설을 쓴다면 세 가지 장르를 꼭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정통 판타지, 즉 중세 판타지류를 쓰고 싶었다. 약간 뭐랄까 예전에 게임 창세기전이나 전민희 작가님의 룬의 아이들 작품을 되게 좋아했는데 이런 부류의 작품을 써보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스포츠물. 난 일본 소년 만화 덕후이므로 특히 열혈물 그것도 스포츠 열혈물을 되게 좋아한다. 재능 있는 주인공이 날로 실력이 늘어가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팀 동료와 열정적으로 부딪히고 함께하며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카타르시스 그 자체이니까.


 마지막은 아포칼립스 장르. 뭐랄까 어두운 내용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럴까 아포칼립스 특유의 미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이어가고 여기서 인간 본성의 악랄함이 튀어나오는 현실적인 모습을 좋아한다. 그 와중에 끝까지 인간적인 면을 지키는 캐릭터들도 좋고 말이다.


 지난 1회 차에는 판타지로 써서 냈었다. 꽤 괜찮다고는 느꼈지만 웹소설 치고는 도입부가 많이 빈약한 내용이라서였을까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스포츠물을 적어보기로 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던 소년 만화틱한 소년 주인공이 성장해 가는 걸 그리기보다는 내 나이대의 남자가 감독이 되어서 자신이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못 이룬 것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투영하여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내용을 적어보고 싶었다.


 소재가 정해지고 시놉시스가 그려지니 글이 3화까지는(약 15,000자) 술술 써졌다. 심지어 내가 읽어봐도 이건 되게 흥미진진하게 재미있었다. 괜찮아 보여서 더 썼는데 어라? 뒤로 갈수록 뭔가 흐지부지한 느낌이 강해졌었다. 그나마 내 개인적 목표치인 3만 자를 채우고 그 마지막화는 괜찮은 수준으로 마무리 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서류를 제출하고 잠시 카페 준비에 몰두하느라 잊고 지냈던 지난 12일 문자가 떡하니 날아왔다.


 '서류 합격'


 바로 그 주 주말에 면접 일정이 잡혔다.



 지금도 면접 당일날이 기억난다. 참으로 지옥 같던 하루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면접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카페 공사 때문에 억지로 일찍 눈을 떴다. 그런 김에 그냥 일어났을 뿐인데 일찍 일어났다고 부모님이 밑에 내려가 일을 하라고 했고 나는 그 부분에서 이미 1차로 화를 삭였다. 


 면접 당일인데 오히려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할 게 있는데 시간이 남으니 내려가서 일을 하라니... 뭐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게 과한 처사 같았다. 


 일단은 군말 없이 내려가 작업을 조금 하고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딱히 복장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저 단정한 느낌만 주는 복장을 입었고 최근 새로 산 외투가 있어 입고 나갔다.


 문제는 상상이상의 칼바람과 추위였다.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다. 마치 남극 한가운데에서 걸어가는 기분이었는데 더럽게 춥긴 추웠다.


 그 이상의 문제는 내려서부터였다.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렸는데 면접장까지 가는 길이 꽤 멀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건물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꽤 남아 혼자 인터뷰 리허설을 살짝 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번 과정에 크게 미련이 없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인 마인드여서 그랬을까 솔직한 이야기로 면접 준비를 크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자기소개와 마지막 할 말 정도만 준비했고 나머진 내 머릿속에 든 모든 것에 걸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잠시간의 리허설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그날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젊은 여자도 나와 같이 면접을 보는 지원자였다. 그녀는 긴장을 많이 했는지 내내 말을 쉬지 않고 걸어왔고 내가 봐도 되게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도착한 곳에는 이미 남자 한 명이 먼저 와있었다. 직원이 안내해 준 대로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지원자 둘은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었다. 사실 누가보아도 내가 제일 긴장하지 않아 보였는데 그냥 나는 아무 생각이 없던 것이었다... 아마 그때 그 여자는 내가 되게 여유로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고 있으니 마지막 면접자 한 명까지와 나 포함 총 4명이 모이게 되었다. 마지막에 오신 분은 나이가 조금 있으신 여성분이셨는데 이미 로맨스 작가이신 기성분이셨다.


 그렇게 면접장에 들어갔고 나는 지난 1회 차와 달라진 면접관들과 아무 생각 없었지만 순식간에 긴장한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질문이 오고 대답이 가고 사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지난번 면접에서 지나치게 내 에고를 강하게 어필한 것 같아서 껄끄름 했었는데 이번엔 그걸 좀 조절한다고 오히려 대답을 절었던 것 같다. 


 끝내고 나오니 조금 찝찝한 아쉬움이 드는 기분이었고 그냥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부터 다시 최악의 하루가 이어졌다.


 원래 중고거래를 하기로 했던 사람이 와서는 물건을 보고 안 사겠다고 했는데 물건에 하자가 많다고 뭐라 구시렁거리는 게 상당히 듣기 거북했다. 여기에 카페와 관련해 엄마와 크게 싸웠고 또 소리 지르고 방을 나섰다.


 사실 저녁엔 수원 쪽에서 대학교 동기들과 송년회가 있었는데 감기에 걸렸다가 이제 막 컨디션이 괜찮아진 시점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약속이라 출발했다. 


 가는 과정도 순탄치 못했다. 버스를 눈앞에서 한 번 놓치고 엄마와 싸운 것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서 다음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내려야 할 곳을 놓쳐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사실 뭐 친했던 동기들을 만나는 자리이지만 이미 정신이 사나웠다. 녀석들은 만나면 물고 뜯고 정신이 사납기 그지없고 심지어 서울에 사는 나에겐 만남의 장소가 수원이니 멀기도 많이 멀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의 내게는 절대로 좋은 만남이 되지 않으리라 확신이 들었고 최악의 경우엔 내가 성질내서 대판 싸울 각오까지 했었으니...


 어쨌든 그래도 2차에서 모두를 만나 가볍게 술 한잔 하려 했는데 그 순간부터 컨디션이 확 나빠지기 시작했다. 몸도 춥고 머리도 띵하니 골이 아픈 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이미 속에서 거부하기 시작한 느낌도 들었고 이러나저러나 컨디션이 바닥인 게 확실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한두 시간? 같이 있었지만 나는 제대로 놀지도 못했고 그렇게 가장 먼 거리를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사실 그러고 면접을 조졌단 느낌이 들어서 포기하고 있었다. 마음을 비웠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어쨌든 오늘 결과가 나오는 날인만큼 기대를 안 했다고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는 개뿔 수시로 이메일함을 들락날락 거리며 카페 일을 하던 도중 12시 정도였을까? 이메일함에 새로운 이메일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어쩌고저쩌고 최종합격...'


 내용은 이러했고 결국 아카데미에 최종 합격했단 소식을 볼 수 있었다.


 기쁜 마음도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픈 준비 중인 카페가 있었고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던 터라 조금 당황했기 때문이다. 


 당장 시간 스케줄에 부담감이 있었고 확실히 해낼 수 있단 자신감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


 '일단 저질러보자. 내가 원하던 거잖아?'


 그렇게 등록을 마무리 지었다. 즉, 나는 이제 작가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작품을 출간한 정식 작가는 아니지만 지망생을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해서 100% 데뷔한다거나 하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내 작품이 최소한 먹힐 거라는 자신감이 있는 만큼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있다.


 그 시간이 얼마가 걸리는지가 관건이 된 지금 나는 이제 작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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