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그리웠던 송강,
그 소설,
위화의 <형제>
변소에서 여자들의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똥통에 빠져 죽은 사내가 있다. 십 오 년이 지난 후 열네 살인 한 소년이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변소에서 여자들의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발각되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이광두다.
일찍이 똥통에 빠져 죽은 사내를 둘러메고 이란에게 가서 그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준 기골이 장대한 송범평은 이광두의 계부가 된다. 송범평에게는 송강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렇게 이광두와 송강은 형제가 된다.
이 둘이 중심이 된 소설 형제는 비판투쟁을 기치로 내세워 지상과제들을 일소하고자 하는 문화대혁명기에서부터 거대한 중국대륙을 휩쓸면서 거침없이 내뿜어대는 자본주의의 황사가 뒤덮인 이천일 년, 현대적 중국까지를 각자가 어떻게 헤쳐 나가며 파란만장하게 사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이광두와 송강사이에는 임홍이라는 여자가 있다. 변소에서 다른 엉덩이들과 더불어 임홍의 엉덩이를 훔쳐본 이광두는 임홍에게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임홍은 자신이 흠모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송강이다. 송강은 남편을 잃고 삶의 희망마저 놓은 채 살아가고 있는 이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서 마침내 두 사람의 결합을 가져오기까지 한 순결한 영혼을 지녔던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 임홍의 마음을 잡은 것은 송강의 내부에 있는 영혼이다. 송강과 임홍은 결혼을 한다. 인간의 본능과 정신적 광기마저 제압해 버린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주 송범평이라는 비판을 받고 쓸쓸히 죽어간 아버지, 그 뒤를 따라 지상에서 손을 거두어 아득한 영혼의 길로 한 줄기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간 어머니 이란은 열여섯, 열다섯 살 착하게만 보이는 아들들인 송강과 이광두에게 형제라는 끈적끈적한 연결고리를 남기는데 이 결혼은 형제에게 사랑과 미움과 질투라는 연민의 균열을 보인다. 허지만 이광두는 임홍의 마음을 앗아간 송강의 순결한 영혼과는 다르게 낙관과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이기에 한편으로는 송강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송강과 임홍이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감을 쌓아가는 시간에 이광두는 자신을 거부에 들어서게 한 복지공장의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부(富)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확신을 확인한 그의 두뇌는 마침내 화약이 불을 만나 폭발하듯이 전율을 느낀다. 그의 낙관적인 천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이광두로 하여금 거부의 행로에 거침없이 몸을 던지게 만든다. 계부 송범평이 광기로 뒤범벅이 된 비판투쟁의 시절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때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송강과 함께 겪었던 온갖 시련과, 문화대혁명기의 절정에서 어머니 이란이 세상을 떠날 때 어김없이 찾아들었던 그 고난도, 정말 한 번쯤 뻔질나게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 임홍을 송강이 차지했을 때 무지막지하게 몰려오던 저 고독과 분노도 깡그리 밀어내버리고, 다시 한번 새로운 고난과 역경을 마다하지 않는 행로를 선택한 것이다.
복지공장을 박차고 나온 이광두는 주변 인물들을 동업자로 만들어서 위대한 사업의 청사진을 들고 상해로 떠나나 실패하고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동업자들의 온갖 뭇매였다. 이광두는 이것에 굴하지 않고 다시금 복지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연좌시위를 하고, 또 입에 풀칠하기 위해 고물장사를 시작한다. 이 고물장사가 그에게 폐품을 모아 판매하는 고물사업이 된다. 고물사업은 무심코 심은 버드나무가 숲을 이룰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만들면서 이광두는 거대한 고물사업의 큰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이광두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시 한번 그의 천성과 맞물리면서 고물사업은 승승장구의 일로를 치달리고, 개방개혁의 바람과 함께 열린 세계시장이 새로운 사업을 향한 방향전환을 선택하게 하면서 이광두가 손을 댄 의류사업은 거대한 부를 거머쥐게 한다.
이즈음 자본주의의 거센 강풍 앞에 송강이 다니던 금속공장이 문을 닫고 송강은 실업자가 된다. 임홍을 사랑하는 송강은 임홍을 위해서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시절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비판인물로 낙인찍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송범평과 자신들을 남겨두고 송범평 곁으로 떠난 어머니 이란의 시절인 문화대혁명기가 소리 없이 쇠락하는 소리와 실직으로 인한 가난과 자신의 지병이다.
대륙을 휩쓸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수혜자가 된 이광두는 거부(巨富)다. 이광두는 거부가 되자 스스로가 인정하듯 자신은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여자를 버는 생활이 이어진다. 아울러 돈과 여자를 밀착시켜서 획득할 수 있는 이윤들을 계산에 넣고, 거기에 걸맞은 또 다른 사업들을 생각해 내기에 바빠진다. 전국처녀미인대회를 개최하여 류진시 전체를 상업화의 풍랑 속에 잠기게 만든다. 밀물처럼 밀어닥친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맨얼굴인, 어떤 것이든 상품화해버리는 저 자본의 힘을 앞세워 이광두는 류진 시(市) 전체를, 나아가 거대한 대륙 전체를 그것으로 포장해 버린다.
이렇게 이광두로 인해 류진 시, 아니 대륙전체가 자본주의로 도배가 되고 있을 때, 자본의 힘에 떠밀려 가난으로 몰려나간 송강은 희대의 사기꾼과 더불어 이처럼 물질적인 풍요로 헐떡거리는 사회에서는 노상 기생적으로 번식하는 인간의 성적욕구를 자극해 대는 물건이며 약품 따위를 취급하고, 유방크림을 팔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인공 유방 모형의 섬유막을 집어넣은 채 강호를 떠도는 유랑생활을 한다. 젊은 날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해 이광두가 읽고는 찬양해 마지않던 소설을 쓴 적도 있었던, 그래서 그것이 임홍의 마음을 곧잘 흔들어서 임홍의 사랑을 차지하기까지 했던 송강의 순결한 영혼은, 예전에도 사랑하고, 지금도 사랑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임홍을 위해서, 이광두처럼 될 수는 없을지라도 지금의 가난을 몰아내버릴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자괴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송강은 심해지는 폐병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트렁크 하나를 이끈 채 돌아온다.
송강이 임홍을 위한 일념으로 돈을 벌고자 밑바닥과 같은 유랑생활을 하고 있을 즈음, 이광두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임홍에 대한 연정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고, 마침내 임홍을 하얀 BMW에 태워 자신의 호화저택으로 오게 한다. 이광두와 임홍의 추문은 류진시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십 년 동안 임홍의 마음속에 변함없이 자리했던 송강에 대한 사랑은 성욕과 사랑의 경계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이광두의 육체적인 욕망 앞에 무릎을 접고, 임홍 자신의 육체적 본능도 점차 집요해져서 마침내 스스로조차 억제할 수 없는 붉고 붉은 색깔이 되어 간다.
집에 돌아와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송강은 말도 없이 몇 날을 보낸다. 그리고 비로소 생각한다. 임홍은 자기와 결혼하지 말고 이광두와 결혼했어야 했다고. 임홍과 이광두에게 보낼 편지 두 통을 우체통에 집어넣은 송강은 저녁노을에 물들고 있는 논들이 바라다 보이는 철로에서, 벗은 웃옷 위에 안경을 올려놓은 채 철로 위에 자신의 배를 올려놓는다.
작가 위화는 송강의 죽음과 이광두의 욕망과 임홍의 욕정이 몰고 온 황막한 벌판에서 이 소설 <형제>가 관통해 내고자 하는 아픔을 몇 줄의 문장으로 기록해서 기억했다. 그가 기억하고자 기록한 이 쓸쓸함은 가슴을 후벼내는 절망이 되어 소설 형제를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제압하는 것이다.
<...사람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비추는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른 두 사람은 향락을 추구하지만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떠났고, 그 떠남이 어떤 낙인을 찍었는지 모른 채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임홍은 옛날 집을 개조해서 미장원을 차리고 사장이 된다. 미장원에 은밀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류진 사람들은 거기를 불러 홍등구라고 부른다. 송강이 죽은 이후로 이광두는 임홍을 찾지 않았고, 총재직을 넘겨준 뒤 러시아 우주선 유니언 호가 사업가를 상대로 이천만 달러짜리 우주여행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비로소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안다. 그것은 송강의 유골함을 우주 궤도상에 올려놓는 것이다. 송강이 달과 별들 사이를 유영할 수 있도록. 영원히.
소설 형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광두와 송강, 이 형제가 중국인들의 정신과 본능과 광기마저 억압해 버린 저 문화대혁명기를 지나 개방화와 더불어 이천일 년에 이른 거대한 중국 대륙에 자리 잡은 자본주의의 격변기를, 어떻게 걸었고 또 걸어가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윤리가 습격을 받고 경박한 욕정과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만물군상의 시대를 함께 하면서, 형제는 서로가 극단과 극단을 살아간다. 한쪽은 욕망의 강을 건너지 않는 지점에 서서 세상에 대한 모든 연민을 품에 안으면서 사라져 가고, 한쪽은 욕망의 강을 건너서 자신에게 안겨진 모든 본능에 충실하며 존재하고자 한다. 이것은 필경 이 형제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송범평이 살아간 모습이고, 이란이 살아간 모습이고, 류진 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이며, 격변하는 이천일 년 중국대륙에서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모습이며, 임홍이 살아간 모습인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은 거대한 대륙을 뒤덮고 있는 황사와 같아서, 거기서는 단 몇 발자국 앞의 시야마저도 흐려 있어 명확한 것이란 무엇 하나 없다. 이렇듯 황사가 점령해 버린 이천일 년의 중국대륙에서 이광두와 연기처럼 사라져 간 송강은, 물질적 풍요를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역습을 받아, 윤리가 전복되고 욕망과 욕정이 우선시되어 모든 것이 뒤집어져가는 중국대륙이라는 지상으로부터 우주 궤도상으로 튕겨 올라가, 서로의 우정과 사랑과 원한과 연민과 은혜를 내팽개쳐 버린 채 만나고자 한다.
그것이 거대한 중국대륙을 뒤덮은 채 대륙에 존재하는 온갖 유무형의 형체들을 희뿌옇게 만들고 있는 이 황사를 어떻게 밀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작가가 끝까지 열정을 놓치지 않은 오십만 자에 이른 이 <형제>라는 소설이, 우리의 가슴으로 달려오는 그 속력에 비례해 있음이 분명하다.
- 레인메이커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