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S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여대부 농구대회(이대배)를 개최하는 팀으로 활발한 대회 참여와 단단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신유경 선수 역시 슈터로서 팀의 스페이싱을 책임지며 성공적인 세대교체에 일조했다. 빠른 스피드를 기반으로 한 속공, 거리와 위치를 가리지 않는 정확한 3점 슛으로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스포츠과학과에 재학 중인 24살 신유경입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체육과 농구 동아리인 EFS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 : @starfish__jiai
♠ 등번호 결정 배경을 알려주세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유니폼을 맞추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아는 농구 선수는 마이클 조던 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23번을 선택했는데 대학교 와서도 그때부터 쓴 번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유경님의 농구 구력과 포지션을 알려주세요. 언제부터 농구를 시작하셨나요?
처음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예요. 그때 스포츠 클럽에서 농구라는 종목을 처음 알게 됐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학교 체육 선생님을 찾아가서 농구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농구부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를 지나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그때는 제가 농구부를 처음 만들었고 부원들 대부분이 농구를 처음 접해보는 친구들이라 제가 1번으로 리딩을 봤는데 대학에 와서는 2번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오니까 저보다 드리블이나 슛이 좋은 선배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빠진 것 같아요. 그래도 올해는 제가 농구 시야가 좋아지면서 가끔 1번 맡을 친구가 없으면 대신해서 보기도 해 요.
EFS의 훈련, 그리고 변화
♠ EFS의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EFS는 EWHA FREE STYLE의 약자로 말 그대로 자유분방한 그런 동아리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부원들끼리도 사이도 되게 좋고 플레이스타일도 각 잡힌 패스플레이보다는 그냥 그때의 느낌에 따라서 자유롭게 플레이들을 주로 하는 것 같아요.
♠ EFS는 어떤 식으로 훈련을 진행하나요?
저희는 주 2회 3시간씩 정기 훈련을 합니다.
제가 주장일 때는 슈팅과 5대 5 훈련을 많이 했어요. 저희 팀이 예전부터 들어왔던 말이 있거든요. EFS는 개개인의 능력치는 좋은데 한 팀으로 모아지지 않는다. 정말 안 맞는다. 제가 생각해도 능력치가 다들 좋은데 시너지가 안 난다는 느낌이 너무 들었어요. 그래서 정기 훈련 때는 1대 1 보다는 팀 훈련을 많이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대신 개인 연습으로 목요일 아침마다 스킬 트레이닝 형식으로 연습을 했고 정기 일정이 없는 평일이나 주말에는 맞춰보기 위해 교류전을 많이 잡았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EFS
♠ 코치님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희는 코치님이 세 분 계세요.
먼저 WKBL에서 은퇴선수를 지원해 줬는데 그때 김보미 (前 WKBL 삼성생명 선수) 코치님이 와주셨어요. 김보미 코치님은 보통 팀 훈련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3명이서 패스 플레이, 커팅 플레이를 연습하기도 하고 돌파 후에 킥아웃 패스를 하거나 자리 잡은 센터에게 공을 넣어주는 연습도 많이 했고요. 5명이서 패스를 하며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플레이들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다른 두 분은 이지환, 이은지 코치님입니다.
지금 주장을 맡고 있는 은제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스타피쉬라는 곳에서 농구를 배웠는데, 거기서 뵌 지환쌤과 은지쌤을 소개해주면서 함께 스킬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아까 말씀드린 목요일 아침 스킬 트레이닝을 도와주시는데 기량 향상에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 EFS는 체육관 대관을 어떻게 진행하나요?
저희가 체육과학부 과동아리라 체육관에 항상 우선적으로 배정을 받아요. 매 학기 초에 과동아리끼리 체육관 시간을 정하고 나면 그 시간은 보장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전 시간이나 이전에 이야기되지 않았던 시간들은 학교에 대관 신청을 해서 추가적으로 연습을 진행하기도 해요. 동아리 중에서도 축구부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야외로 나가기도 해서, 그럴 때면 저희가 빌려서 쓰기도 하고요. 학교 수업이나 다른 동아리 시간이 없다면 비교적 쉽게 대관을 할 수 있습니다.
♠ EFS에서 주장이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팀을 이끌어가려 했을까요?
항상 연습을 할 때는 모두가 똑같이 열심히 하지만, 실제 대회에서 뛰는 멤버는 거의 정해져 있잖아요. 우리 팀도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주전 선수들과 비주전 선수들 간의 플레잉 타임 격차가 컸던 것 같아요. 예선 경기에서는 30점 차이로 이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쿼터까지는 주전 6~7명이 계속 교대로 뛰었고, 4쿼터에 2~3분 정도 남았을 때에서야 비주전 선수들이 뛸 기회를 얻곤 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뛰지 못하는 부원들도 있었죠.
사실 저희가 대회에 나가는 이유는 응원을 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회를 많이 뛰지 못하는 부원들은 점점 연습에 소홀해졌고, 반면에 주전 선수들은 더 열심히 하게 되면서 그 차이가 더 커졌던 것 같아요. 악순환이 반복됐죠.
제가 주장이 되면, 연습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반드시 경기에 뛸 수 있게 해주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존재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모든 선수들에게 고르게 기회를 주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엔트리에 든 12명을 모두 주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실력을 끌어올려서 누구든 그날 컨디션이 좋으면 선발로 나갈 수 있게 팀을 운영하자는 생각이었죠.
사실 저도 처음 주장으로 나섰을 때는, 기존 2년 동안 3쿼터까지 주전이 뛰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어서 1쿼터나 2쿼터에 점수 차가 많이 나더라도 주전을 빼는 게 불안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팀 연습을 하고 교류전을 하다 보니, 비주전 선수들도 경기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면서 7월쯤에는 한 번도 선발로 뛰지 않았던 친구들을 선발로 내보내도 불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예선 경기에서는 주전들이 쉬고, 식스맨들이 자기들끼리 플레이를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줬죠.
특히 예선 경기에서는 엔트리에 들어간 모든 선수가 득점을 목표로 했어요.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뛰다 보니, 모두가 자신의 득점보다도 평소 득점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득점하는 걸 더 기뻐했어요. 벤치에서는 득점을 몰아주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팀 전체 분위기도 좋아지고, 한 팀으로 뭉쳐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 EFS는 빡농일까요 즐농일까요?
일단 저는 빡농과 즐농이 마인드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즐농을 정말 즐겁게 웃으면서 농구를 하는 거라면 빡농은 즐겁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죠. 저희가 예전에는 경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화낼 때가 많았거든요. 그냥 골 하나가 안 들어간 것뿐이니까 ‘잘 쐈어.’라고 이야기해주면 서로 기분도 상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제가 주장이 되고 난 다음에도 7월 정도까지는 빡농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이겨야 한다, 무조건 우승을 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주전이 더 많이 뛰는 경기 운영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7월에 우승을 한 번 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또 모두가 함께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다 보니 점점 즐농을 추구하게 된 것 같아요.
♠ 농구를 통해 얻은 소중한 관계나 인연이 있나요?
중학교 때 스포츠 클럽 담당 선생님이셨던 조영태 선생님이요. 제가 처음 중학교에서 농구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담당 선생님은 직접 구하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때 조영태 선생님이 선뜻 맡아주시고 2년 동안 계속 담당을 해주셨어요.
그 이후로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농구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학교의 도움이 더더욱 없었어요. 공부해야 하는데 왜 만드냐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를 맡아주실 선생님이 없었는데, 조영태 선생님이 저녁 시간에 따로 불러서 훈련도 시켜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들 중 하나예요. 지금은 제가 이사를 오기도 했고 바빠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2년 정도는 자주 뵀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코치님들이 가장 소중한 인연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주장이 되고 나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확고했는데 농구를 잘 아는 편이 아니다 보니까 조금 막연했거든요. 근데 그걸 코치님들께 말씀드렸을 때 제 바람을 듣고 이룰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쌤들이 대회 때 자주 오셔서 경기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엄청 멋지게 찍어주시거든요. 각자의 사정으로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주장 임기가 끝난 지금도 코치님들과 사적으로 만나면서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ㅎㅎ
그리고 올해 저희 팀에 오신 김선희 코치님과 노현지 코치님도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멀리서 보며 감탄했던 WKBL 프로 선수들이 저희를 봐주신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거든요.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 농구부를 만들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둘 다 남자 농구부는 있었어요. 처음에는 남자 농구부에 그냥 껴서 같이 했었는데, 저도 여자들끼리 하는 대회를 나가보고 싶었던 거예요. 남자 대회는 여자들이 같이 껴서 나가기 힘드니까요.
중학교 때는 농구를 처음 접하고 흥미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어서 오히려 좀 수월하게 만들 수 있던 것 같고 고등학교 때가 조금 힘들었어요. 이전에 만들어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냥 가서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단칼에 안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운영을 할 거냐, 학교에서 사람을 구해줄 수 없다, 너네가 알아서 할 수 있으면 해라. 그런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반을 다 돌아다니면서 반 칠판에 모집글을 불이고 다녔어요. 그 모집글을 보고 10명 정도가 모여서 그 명단을 가지고 가서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조영태 선생님이 훈련을 도와주셨고요.
(운영은 잘 되었나요?)
그래도 괜찮게 했던 것 같아요. 휴면 회원도 없었고 다들 농구는 안 해봤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서 수업이 끝나면 다 같이 체육관에 모여서 즐겁게 농구를 했어요.
♠ 농구가 자신의 인생에서 몇 퍼센트 정도 차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주장이 되면서 휴학을 했는데, 그때는 인생에서 90% 이상을 차지했던 것 같아요. 정말 농구에 미쳐서 살았거든요. 매일 오전에 체육관에서 슛 연습하고 주 3회는 EFS 훈련을 했고 주말에는 토, 일 둘 다 동호회 픽업 게임을 갔어요. 이동할 때나 밥 먹을 때, 자기 전에도 농구 영상을 계속 봤고요. 한 번은 일요일 하루에 픽업게임을 3번 가서 8시간 동안 농구를 한 적도 있었어요.
2023 더 프로세스 여자농구대회
올해는 농구에 대한 흥미나 애정이 떨어진 건 아닌데 부상 때문에 30% 정도인 것 같아요. 작년에 발목을 크게 다친 이후 회복을 제대로 못하고 농구를 했거든요. 농구가 너무 재밌어서 참고 그냥 하다가 너무 안 좋은 게 느껴져서 올해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발목 인대가 자꾸 늘어나서 뼈가 떨어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심각해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심각성을 느껴서 EFS 정기 연습 말고는 농구를 안 하고 있어요.
♠ 여자농구동아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상대방이 있을까요?
저는 저희 팀에서 뽑고 싶어요. EFS 가 2024년 국민대배에서 BEST5 안에 4명이 들 정도로 개인 기량이 모두 뛰어나거든요.
가드에서는 박하은 선수를 뽑고 싶어요. 하은이는 워낙 드리블도 잘 치고 슛 밸런스가 진짜 좋아서 제 기준에서 수비를 하기 제일 어려운 선수인 것 같아요. 제가 수비를 열심히 해도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가서 미드레인지를 쏘는데 그게 다 들어가거든요. 또 최근에는 3점 슛 확률도 엄청 올라고 패스를 주는 시야도 넓어져서 대체할 수 없는 가드가 된 것 같아요.
포워드는 김가윤 선수를 뽑고 싶어요. 플레이를 하는 걸 보면 똑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몸도 잘 사용하고 상황을 잘 보는데 다른 팀원을 잘 살려주려고 항상 노력을 하거든요. 그렇다고 무작정 슛을 미루는 건 아니고 본인이 꼭 득점해야 할 때는 멋있게 해 줘요. 저희가 1번을 은제가 보는데, 은제가 로우에 있는 가윤 언니한테 패스를 주면 언니가 해결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우리 팀이지만 정말 너무 잘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끔은 제가 패스를 너무 높게 주는데 가윤 언니가 리치가 길어서 그걸 잡아서 해결해 주거든요. 패스를 잘못 줘도 찰떡같이 잡아주니까 팀원의 기가 죽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ㅎㅎ
♠ 농구를 하면서 가장 후회됐던 순간이 있나요?
농구를 하면서 후회를 한 순간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농구가 잘 안 돼도 아직 슛감이 안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다쳐도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마는 편이거든요.
꼭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면 작년에 발목을 다쳤을 때인 것 같아요. 발목이 돌아가서 인대 3개가 파열되었어요. 그때가 주장이 되고 첫 대회를 3주 앞둔 시점이었기도 하고, 처음으로 발목을 다친 건데 그 후로 발목이 좀 안 좋아져서 후회가 되긴 합니다.
스스로 빚어낸 슈터의 자리
♠ 처음 유경님이 EFS에 들어왔을 때의 자신을 돌아본다면?
사실 저는 중고등학교 때는 우당탕탕 농구를 하다 대학교에 와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어요. 존디펜스라는 개념도 처음 들어보는데 우리 팀이 강팀이기도 하니까 배우는 게 마냥 재미있고 언니들이랑 뛰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대회를 나가서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빨리 뛰고 싶다 그런 마음이 컸고 뛰면 마냥 좋고 슛 하나 넣으면 나 오늘 잘했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아무래도 팀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다 보니 부담감이 생기기도 하고 책임감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출처 : @starfish__jiai
예전에는 한 골 넣으면 잘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한 경기에 3점을 3번 넣어도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도 생각하는 거예요. 오늘 3점을 너무 많이 던졌나, 리바운드 참여를 안 했나 그런 피드백을 스스로 하면서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려고 해요.
(기준이 높아진 거네요.) 네, 그리고 잘했다는 기준을 득점에서만 찾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기준도 높아져서 농구 대회를 나갈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유경님은 이대에서도 3점과 속공으로 많은 점수를 얻어오셨습니다.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그런 포지션을 고수하셨나요?
제가 예전에는 돌파해서 레이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대학에 오면서 슈터 포지션을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슛을 즐겨 쏘던 편이 아니라서 슛이 진짜 없었어요. 그래서 1학년 때는 대회를 나가서 3점 밖에서 공을 잡으면 새깅을 당하는 거예요. 없어없어, 하고. 근데 제가 찬스 때 슛을 안 쏘면 다른 팀원들이 더 힘들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쏘는데, 쏘면서도 안 들어갈 걸 아니까 자신감이 떨어진 채로 쏘게 되고, 그러니까 더 안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슛이 좀 생긴 것 같아요. 속공은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나갔습니다.
♠ 슈터가 되기 위해 어떻게 연습하셨나요?
일단 제가 연습을 하기 전에 기준을 세웠어요. 양쪽 사이드랑 45도, 그리고 탑까지 해서 5군데에서 10개씩 쏴서 50개를 한 세트로 설정을 해요. 미들에서 한 세트, 3점에서 한 세트 이런 식으로 하는데 10개씩 끊어서 얼마나 넣었는지 패드에 다 기록을 했어요.
일주일 간의 슈팅 기록지
제가 찾아보니까 첫날은 150개를 쐈더라고요. 그때 그렇게 슛을 많이 쏴본 적이 없으니까 팔이 너무 아픈 거예요. 다음 날 팔에 근육통도 생겼는데 그냥 참고 쐈어요. 다음 날 에어볼이 나도 그냥 참고 쏘다보니까 지금은 많게는 600개까지도 쏠 수 있게 됐어요.
한창 슛감을 잡을 때는 그냥 정말 많이 쐈어요. 이제는 슛감이 어느 정도 잡혀서 매일 그 정도로 쏘지는 않는데 그래도 400개씩은 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개수가 늘어나니까 패드에 기록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너무 오래 걸려서 이제는 그냥 슈팅 영상을 찍고, 집에 가면서 영상을 보면서 자세를 분석하는 것 같아요. 들어갈 때와 안 들어갈 때의 자세 차이 같은 거요.
요즘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힌 상태라 많이 쏘는 것보다도 한 번 쏠 때의 감을 더 생각하는 것 같아요. 들어갔을 때 어떤 자세를 쐈는지, 안 들어갔을 때는 자세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생각하면서요. 지금은 제가 슛이 좋아진 걸 아니까 상대방들도 슛체크를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슛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가는 연습이나 무빙슛, 터프슛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 커리어 하이를 찍은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3점 7개를 넣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올해(2024년) 4월에 실업연맹에서 EFS를 초청해 주셔서 김천으로 대회를 뛰러 갔는데 그때 3,4위전에서 7개를 넣었어요.
비하인드를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경기를 보다가 알게 된 게 오른쪽 골대에서 모든 팀들이 골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저걸 뱉어낸다고? 싶을 정도로 모든 골이 안 들어갔는데 또 후반전에서 오른쪽으로 공격을 한 팀이 전부 졌어요. 전반전에는 양쪽 다 감이 안 잡히다 보니 양쪽 다 못 넣는데 후반전에는 감이 다 잡히니까 왼쪽 골대로 공격을 한 팀이 항상 이기더라고요. 저희도 엄청 잘하는 팀이랑 했을 때 후반전에 왼쪽으로 공격을 해서 이겼거든요.
그래서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후반전에 저기에서 공격하면 진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3~4위 전을 시작했는데 제가 1쿼터 초반 두 개를 끝으로 계속 3점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반대로 상대팀은 많이 넣어서 2쿼터가 끝날 때 17점 차로 뒤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3쿼터 3분 정도 남았을 때 슛을 쐈는데 딱 들어간 거예요. 근데 그때 영점이 잡혔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10분 동안 슛을 6개 쐈는데 그중 5개가 들어갔어요. 다른 팀원들도 3점을 거의 다 성공해서 후반전 때 30점 이상을 넣어서 11점 차 정도로 이기고 마무리를 했던 것 같아요.
(희열감이 대박이었겠는데요.) 맞아요. 쏘면서도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슛감이 너무 좋으니까 은제가 계속 저한테 몰아주는 거예요. 첫 패스 주면 쏘고, 첫 패스 주면 쏘고, 이런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경기 끝나고 협회장님께서 저한테 슛이 왜 이렇게 좋냐고 칭찬을 해주셔서 김천대회는 저에게 여러모로 좋은 추억이 되었던 대회예요.
*2024 전국 실업농구연맹전 겸 지역별 농구대회
♠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일단 대회 전날에 다음 날 입고 갈 착장을 전부 준비해요. 양말부터 속옷까지. 아침에 샤워를 하고 딱 갈아입고 가야 하거든요. 시합 전에는 땀을 좀 내고 숨이 트일 수 있게 빡세게 러닝을 하는 것 같고 3점을 좀 많이 쏴봐요. 제가 가장 지키려고 하는 게 있는데, 연습 마지막 3점은 꼭 들어가야 해요. 그래서 들어가라고 부저가 울렸는데 3점이 안 들어가면 최대한 끝까지 쏴야 해요. 애들이 그걸 아니까 제 마지막 공이 안 들어가면 빨리 주워서 주는 편이에요.
♠ 3점 슛이 잘 안 들어가는 날에는 어떤 식으로 멘탈을 유지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기복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3점이 잘 안 들어가면 멘탈이 좀 무너지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그 정도가 컸는데 요즘은 그래도 멘탈을 다잡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수비를 좀 더 열심히 한다거나 리바운드 참여를 열심히 하는 식으로요. 제가 사실 리바운드를 해야 할 때 그냥 쳐다보고 박스를 안 하는 단점이 있는데, 공격이 잘 안 풀릴 때면 그 부분을 훨씬 더 신경 써서 해요. 그리고 속공도 엄청 뛰어나가고요.
♠ 속공 상황에서 상대 수비를 피하는 기술이나 전략이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사실 제가 겁이 좀 많아서 막 부딪히거나 몸싸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상대가 뒤에서 쿵쿵거리면서 뛰어오면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레이업을 했을 때 컨택이 아예 없게 빨리 뛰는 편이에요. (아, 그냥 빨리 뛴다?) 네. 상대 수비를 피하는 기술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빨리 뜁니다. (본인이 EFS에서 달리기로 몇 등이라고 생각하세요?) 달리기로는 1등이죠.
(?? : 본인만 할 수 있는 꿀팁이었다.)
출처 :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 유경님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3점 슛 찬스는 어떤 상황인가요?
일단 제일 쏘기 좋은 찬스는 센터가 로우나 하이에서 공을 잡았을 때 저한테 빼주는 킥아웃 패스예요. 그리고 이제 저랑 반대쪽 윙에 있는 친구들이 보통 돌파가 좋은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돌파를 하면 수비가 몰리니까 그때 저한테 딱 패스를 해주면 그것도 되게 좋은 찬스인 것 같아요.
♠ 작년 KUSF 클럽챔피언십 파이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023년 파이널은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파이널에서 처음으로 딥쓰리를 넣었거든요. 딥쓰리를 노리고 쏜 건 아니었고, 제가 두 번째로 파이널에 가보는 거였는데, 그때 영점이 잘 안 잡혔거든요. 3점 라인 바로 뒤에서 쏘니까 너무 터무니없이 길었어요. 그렇다고 약하게 쏘면 에어가 나오고요. 그래서 그냥 한 걸음씩 뒤로 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영점이 맞아서 들어갔는데, 그게 딥쓰리였던 거예요. 상대도 거기서 들어갈 줄은 몰랐던 거죠. 그래서 쿠스프 영상에도 딥쓰리 영상이 올라갔더라고요. 한동안 애들이 ‘쿠스프 딥쓰리녀’라고 불렀었어요.
또 하나는 결승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미쓰비(연세대학교 Miss-B)를 상대로 1쿼터 때 17대 3으로 지고 있었어요. 2쿼터가 끝났을 때도 22대 10이었고요. 그 정도 차이가 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처음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위기도 좋았고요.
근데 3쿼터에 딱 들어갔을 때 상대한테는 2점만 주고 저희는 15점을 딴 거예요. 그렇게 3쿼터를 저희가 이기고 마무리했어요.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마지막에 수비를 하는 과정에서 미쓰비 에이스인 선영 언니의 노련함에 당해서 파울 아웃을 당했고, 팀 파울로 자유투도 주면서 점수가 벌어지게 되고 그렇게 졌어요.
KUSF 클럽챔피언십 2023 The Finals
근데 그 3쿼터가 엄청 기억에 남아요. 그 과정들이 저희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가져다줬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들끼리 ‘약속의 3쿼터’라는 단어가 생겼어요. 아무리 지고 있어도, 우리는 하프타임에 이야기하면서 17점 차도 따라잡을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요. 그때 이후로는 지고 있어도 흥분하지 않고 저희 다운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팀이 된 것 같아요.
♠ 파울 아웃을 당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냥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손질이 좀 많은 편인데 상대가 그걸 노련하게 잘 이용했다고 생각했어요.
유일무이 여자부 단일 대회, 이대배
이대 EFS는 유일무이하게 단일 대회를 개최하는 팀입니다. 저 역시 이대배에서 많은 추억을 얻어갔는데요. 유경님은 2023년 이대배 개최날 주장으로서 많은 일들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대배의 개최 계기를 알고 계신다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대배를 처음 만든 언니한테 연락을 했어요. 언니 말로는 당시에는 여자 농구팀 자체가 많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자농구대회가 너무 없었대요. 국민대회나 쿠스프 정도? 그렇다고 동호회 대회를 나가기에는 선출이나 동호회 언니들에게 너무 밀리고, 그나마 나가는 대회도 남자부 대회에 끼어서 나가는 거다 보니 아쉬웠다고 해요.
그래서 아마추어 대학 여자농구팀만의 대회를 직접 열어보기로 했대요. 그 과정에서 WKBL을 포함한 많은 팀들이 도와줘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고 해요.
이대배가 개최된 지 벌써 9회인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대배를 창시한 언니들이 와서 운영을 도와줬어요. 이렇게 농구와 EFS를 좋아하는 언니들이 있어서 대회의 퀄리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대배 운영은 보통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보통 주장이 부원들과 이야기를 해서 참가팀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들도 모두 정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대회에 필요한 물품 구입, 체육관 정리, 대기실 마련, 심판 섭외 등 할 일이 되게 많은데, WKBL 임태규 팀장님께서 대부분 지원을 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좀 수월하게 대회 준비를 하는 것 같아요. 대회 당일에는 EFS가 경기가 있는 날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졸업생 언니들이 오셔서 운영을 많이 도와주세요. 예산의 경우에는 사실 학교에서 예산이 나와요. 그거랑 참가비 합쳐서 그 돈을 가지고 운영을 합니다.
♠ 2023년 이대배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공되는 상품도 많았고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품을 후원받으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주장이 되고 대회를 기획하면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건 대회를 뛰지 않는 사람들도 대회에 와서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보통 결승 경기는 시상을 하는 팀만 남아서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항상 휑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번에 결승 경기를 어떻게 하면 다 같이 모여서 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WKBL 팀장님과 미팅을 했는데 그분도 저랑 비슷한 생각이시더라고요. 많은 이벤트를 열어보라고 조언을 해주셔서 고민을 하다 크룩스맨도 부르고 농구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포카리 쓰러트리기 이벤트도 열었어요. 올스타전이랑 럭키드로우도 진행했고요.
그때 유튜브 촬영 문의나 협찬 문의가 종종 있었는데, 그것들을 전부 그냥 받았어요. 그게 우리 팀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언젠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크룩스맨과 안면이 트여서 수월하게 부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벤트 물품들 같은 경우에는 스티즈 김수빈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인한테 소개를 받았는데 너무 흔쾌히 협찬을 해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것 말고도 제가 협찬을 받고 싶은 업체가 있으면 하나하나 직접 전화드리고 찾아가고 협찬 제안서를 보냈어요.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었냐고 한다면, 그냥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감사한 분들 많습니다.
♠ 대회를 운영하면서 생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나 돌발 상황이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저희가 대회를 4개월 정도 전부터 준비를 하긴 하는데 7~8월에 다른 대회도 많다 보니까 중간중간 빠진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상 폼보드예요. 저희가 폼보드 제작 의뢰를 했는데 하나가 누락이 된 거예요. 근데 그걸 대회 하루 전날에 알아서 진짜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MVP 폼포드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심지어 그게 경기 mom 사진이라서 바로 필요한 거였거든요.
그때 저희 바로 집 옆에 폼포드에 붙이는 스티커를 파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았어요. 당연히 당일에는 제작이 안될 걸 아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업체한테 전화를 해서 사정사정을 했어요. 정말 죄송한데 오늘 꼭 필요하다고 하면서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밤 11시에 그걸 만들어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죠. 그 스티커를 받아서 폼포드를 사서 직접 제작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또 기억나는 이대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이건 좀 개인적인 비하인드예요. 이대배 3일 전에 쿠스프 대회가 끝이 났어요. 그래서 3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느라 하루에 2~3시간씩 밖에 못 잤어요. 준비할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대회 당일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마이크를 잡고 얘기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첫날이 끝나갈 즈음에는 목이 다 쉰 거예요. 그래서 대회가 끝날 때까지 거의 쉰 목소리로 말을 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8th 이대배
♠ EFS에게 ‘이대배’라는 대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현존하는 유일한 여자 대학 농구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부 대회가 정말 많아지긴 했지만 여자 대학부만을 위해 대회를 여는 곳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는 유일하게 여자 대학부만을 위한 대회를 열고 있는 거니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 작년 이대배 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작년 이대배는 진짜 저한테 잊지 못할 되게 대회 중에 하나예요. 좋은 대회를 열고 싶다는 마음도 컸지만 우리 홈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컸거든요. EFS가 17년도까지는 매회마다 우승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우승을 하지 못해서 결국 지금 뛰는 멤버들 중 우승을 경험해 본 멤버가 한 명도 안 남았었어요.
홈 우승이 간절했는데 정말 우승까지 해버리니까 그 순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벅차고 기뻐서 펑펑 울었어요.
♠ 올해 이대배는 어땠나요?
우선 올해 이대배는 주장인 은제가 도맡았어요. 그런데 하루는 은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 오게 되어서 제가 대신 맡아서 일을 진행했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저희끼리 더 소통하고 도와주면서 잘 마무리했던 것 같아요.
결승전을 또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저희가 그 경기를 초반에 크게 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따라잡다가 마지막에 하은이가 9초 남기고 3점을 성공해서 1점 차이로 역전을 했었어요. 그다음 제가 파울로 흐름을 끊었거든요. 파울로 한 번 끊고 다시 정비를 하고 하나만 막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영 언니가 돌파를 하는데 애들이 파울로 끊었다고 끊은 건데 마음이 약해서 세게 나가지 못한 거예요. 결국 그게 파울로 안 불리고 선영언니가 돌파를 해서 그대로 다시 1점 차이로 역전을 당해 지게 됐어요. 많이 아쉬웠죠.
♠ 이대배는 매년 어떻게 발전해오고 있나요? 앞으로의 이대배를 어떻게 더 발전시키고 싶으신가요?
모든 대회에서 점점 웃으면서 뛰는 팀들이 많아진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서로 화를 내면서 뛰는 팀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점점 웃고 즐기고 실수를 해도 다독여주는 팀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저희 이대배도 대회를 뛰는 사람들은 웃으면서, 다치치 않고 즐겁게 뛸 수 있는 대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매년 이대배에 참여했는데 정말 축제 같은 분위기의 대회라 끝까지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 맞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축제 같은 대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결승뿐만 아니라 모든 경기들을 2층 관중석을 꽉 채워서 둘러볼 수 있는 그런 대회요.
이렇게 신유경 선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슈터가 되기 위한 그의 숨은 노력을 만나볼 수 있었다. 안정적인 슛 매커니즘과 높은 성공률은 지난 몇 년간 낮은 성공률도 하나씩 기록하며 노력했기에 가질 수 있던 것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연습량과 팀의 승리를 믿는 위닝 멘탈리티를 가진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EFS 인스타그램 : @efs_ewha
소소한 질문타임!
♠ 3점 2개 넣기 vs 원맨 속공으로 3개 넣기
후자. 속공을 성공했을 때 더 팀 분위기가 사는 것 같아요.
♠ 우리 팀에서 내가 제일 3점을 잘 넣는다(O/X)
O. 저 다음으로는 하은이가 잘 넣는 것 같아요.
♠ EFS에서 가장 ‘단단한’ 선수는?
김가윤 선수
♠ EFS에서 가장 ‘든든한’ 선수는?
이것도 가윤 언니요. 기복이 가장 적은 선수거든요. 팀이 안 풀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가윤 언니가 있고 없을 때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나요.
♠ 농구할 때 꼭 들어야 하는 ‘필수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저는 발라드를 주로 듣습니다. 농구할 때 그렇게 음악을 듣는 편은 아니에요.
♠ 농구 외에 나만의 비밀 스포츠가 있다면?
배드민턴이랑 풋살이요. 농구까지 해서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왔어요. 1학년 때는 배드민턴 정말 많이 쳤고요.
(왜 농구가 살아남았을까요?) 일단 축구보다는 농구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고, 배드민턴이랑 비교해 보자면, 팀 스포츠가 저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 “얘는 내가 꼭 앵클 브레이크한다.” 선수를 지목해 주세요!
가윤 언니. 가로 수비도 세로 수비도 뛰어나서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슈터 입장에서 가윤언니가 멀리서 뛰쳐나오면 무섭거든요.
♠ 경기 중 가장 자신 있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3점 슛을 시도할 때인가요, 아니면 속공 상황에서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