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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Jun 23. 2023

만보(漫步)가 아닌 만보(萬步)를 걷는 글쓰기 여정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漫步)」(2006, 모멘토)를 읽고


소설은 즐겨 읽지만, 써본 경험 없이 작법서를 읽었다. 읽을수록 작가들이 더 위대해 보이고 소설 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한 줄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앞으로 한 줄도 소중하게 읽어야겠다. 작법서 요약은 나중에 참고하기 좋게 개조식 형태로 했다.


많은 작법서 중 선택의 문제에 고민했다. 첫 번째, 목차를 봤다. 두 번째는 쪽수를 보고 다음으로 작가를 생각했다. 목차를 봤을 때 가장 기초적인 글쓰기부터 시작하여 작가로서의 마음가짐까지 세분화하여 쓴 책이 「글쓰기 만보」였다. 그런데 쪽수가 오백 쪽이 넘는 가장 두터운 책이라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글쓰기 초보자에게 적합했다. 유명한 스티브 킹의「글쓰기의 유혹」은 1/3 정도 읽었는데 작법에 관한 내용이 안 나와 포기했다. 「강원국의 글쓰기」도 기초부터 요약 형식으로 기획하여 읽기 좋게 편집됐다. 강원국과 안정효 작가 중 안정효를 선택했다. 안정효 작가는 90년대 많이 좋아했던 작가다. 그때 「은마는 오지 않는다」,「미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하얀 전쟁」을 읽으며 다음 편 나오길 기다리는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그만큼 책이 재미있었다. 나의 안정효 소설 읽기는 거기서 끝났고, 30여 년 만에 소설이 아닌 작법서로 다시 만났다.      


글쓰기 시작부터 마지막 작가의 마음가짐까지 체계적으로 편집되었다. 무엇보다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그러니 생각보다 읽기 속도도 났다. 글이 아니라, 말로 들려주는 거 같다. 뒤쪽에서 기억할 수 없을 즈음이나, 앞서 배운 내용과 연결될 때 다시 반복하니, 기억하기 좋고 배울 내용도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수많은 작가와 예시된 작품이다. 적재적소에 예시문을 바탕으로 설명하니 이해가 빨랐다. 한 주제를 설명할 때 두 작품을 비교하며 설명하기도 한다. 그의 방대한 독서력과 자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개된 작가와 책은 독자의 지평을 넓혀준다. 45년 동안 모은 자료로 「글쓰기 만보」를 썼다고 한다. 책 뒤의 찾아보기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작품과 작가들이 이 작법서에 등장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자료정리의 중요성과 어떻게 분류하고, 작품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도 알려준다. 글은 손으로도 쓰지만, 발로도 써야 한다고 한다. 간간이 보이는 그가 그린 삽화는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그의 적절한 비유 또한 읽는 재미까지 준다.


많은 상세한 예문은 이해에 도움을 주나, 줄거리 정리가 쉽지 않고, 나중에는 무엇을 설명하는지 헛갈리기도 했다. 한국 작품과 작가도 많이 인용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영문학자로서 대화체 간접화법 쓸 때 영어와 우리말과의 비교 설명은 신선했다. 실제 주제를 주어 글을 쓰라 하고, 나중에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는 것도 강점이다. 시간이 있다면 실제 써보며 작법서를 읽으면 좋겠다.


6월 동아리에서 단편 소설 서평 쓰는 활동이 있었다. 작법서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을 인물묘사, 단락 구성, 문장 등을 조금이라도 분석적으로 읽었다. 읽는 속도가 느렸지만, 분석적으로 읽는 자신의 변화에 흐뭇했다. 전 같으면 줄거리만 읽었을 것이다. 서평 쓴 「방」은 대화체 소설인데 따옴표가 없어 궁금했다. 이 작법서에 의하면 따옴표 없는 대화체가 더 밀착감을 준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방」에 ‘e.e.cummings’란 작가 이름이 나오는데 사람 이름이 소문자라 이상했다, 이 작법서에 ‘e.e.cummings는 시인, 소설가, 화가며 이름도 소문자로 쓰고 체제(體裁)와 구두법의 기묘한 조합으로 효과를 낸 작가’라는 설명이 있어 반가웠다. 이 작법서였기에 이런 재미있는 지식도 알 수 있었다. 비록 소설 쓰기가 아닌, 읽기에 배운 것을 적용했지만, 이것도 성장이라 생각했다.      


너무 평범해서 울림을 주지 않는 ‘성실과 노력’이 적확하게 글쓰기에도 해당하는 진리다. 안정효 작가는 「글쓰기 만보(漫步)」에서 작가로서의 모범을 보여준다.



<은마는...> 책은 찾지 못했다.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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