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리 Jul 11. 2023

행진하는 거야

이서수의 「젊은 근희의 행진」 (문학동네, 2023)을 읽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명상록」에서 ‘삶이란 낯선 땅에서 잠시 머무는 전쟁이다’라고 했다. 이서수는「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낯선 땅에서 전쟁을 치르듯 사는 이 시대의 젊은이를 거울같이 보여준다. 두 자매, 문희와 근희가 바로 나이고 내가 그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픽션 인지 논픽션 인지 경계선이 모호할 정도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작가는 자신이 끈적하게 밟고 있는 지금 이 사회를 근희의 입을 통해, 작가 자신 경험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가 보여준 젊은이들은 팍팍한 삶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취약한 현 상황을 견뎌내며 당당하게 앞으로 내디딘다.     


딸에게 의지하며 사는 엄마. 장녀며 가장으로 동생 근희한테 꼰대 소리를 듣는 언니 문희, 가족보다 자신이 우선이며 직장을 그만두고 북튜버 하는 근희, 문희의 동거인 강하,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문희가 북튜버 하다 사라진 동생 근희를 찾아 나서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다른 길이지만 응원한다.   

  

엄마는 툭하면 아프다며 병원에 간다. 마치 아이가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프다고 하는 것과 같다. 엄마는 ‘아픔’으로 관심받고 자 하는 ‘관종’이다. 이 관종이 문희는 못마땅하지만, 강하는 ‘분갈이한 화초에 물을 주’(156)듯 엄마에게 살뜰하다. 강하는 피가 섞이지 않은 동거인이다. 그래서인지 강하는 이 가족과 한 걸음 뒤에서 무대를 감독하는 연출자같이 다른 인물을 조율하며 균형을 잡아준다. 인스타 사기 사건으로 사라진 근희를 찾는 문희에게 편지 쓰기를 권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도와준다. 문희 대신 엄마가 근희에게, 근희는 문희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세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매개체가 되고 강하는 이 편지 같은 역할을 한다. sns가 아닌 손 편지의 힘을 아는 강하. 하지만 항상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충실한 구독자고, 구독자가 권력이 된다는 것을 아는’(174) 태권도 원생 시우한테는 구겨 버리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예전에는 편지는 손 편지. 신문은 종이 신문. 책은 종이책이었는데 현재는 구분되는 것이 꼰대 문희와 관종 근희 같다. 

    

성소수자인 문희는 ‘유교걸’(169)을 싫어하지만 유교걸 역할을 한다. 유튜브에 노출되는 근희의 상반신도 불편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먹방 술방 하는 근희 삶의 태도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근희에게 유독 꼰대인 문희가 난 밉지 않다. 가장 역할을 해야하는 문희의 입장일 수 있다. 친구 중에 꼰대가 있는데 난 그녀의 용기가 돋보인다. 꼰대 소리 들을까 봐 입 닫는 요즘 그녀의 꼰대가 꼰대스럽지 않다. 귀엽다. 근희는 안 그런 척하면서 부동산, 연금 얘기만 하는 꼰대 언니를 모순적이라고(185)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언니가 사람들한테 미움받는 게 싫고 내 언니니까 나만 미워할 수’(186)가 있다고 하듯, 문희도 근희에게 꼰대며 결국 사랑이다.     


“책도 아름답지만 내 몸도 아름다워. 문장도 아름답지만 내 가슴도 아름다워. 적절하게 찍힌 마침표도 아름답지만 함몰 유두인 내 젖꼭지도 아름다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은 아니잖아 오히려 감추라는 언니가 이상한 거야,”(185)     


정신만 중요한 게 아니라 육체도 중요한 거라는 근희는 ‘몸을 왜 핍박하냐?’고 묻는다. 육체와 정신은 어느 것이 더하고 덜함이 없는데 편견으로 육체를 경시했듯, 문희와 근희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문희는 근희의 편지를 읽고 편견을 버리며, 자기와는 다른 길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근희를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라는 댓글로 응원한다. 

낯선 땅은 친숙해지고,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휴머니즘이 있듯 이 소설은 아프며 따뜻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아니라 ‘많관부’라며 희망을 키우고 불안정한 생활을 딛고 일어선다.  


이 소설에서는 부동산, 주거, 성폭력, 유투버, 먹방, 술방, 벗방,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인스타 사기, 저격 영상, 분노 조절, 퀴어, 매력 자본, 꼰대, 버추얼 인플루언서, 스노비즘 등 요즈음 사회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말들이 쏟아진다. 그만큼 이 글은 현 사회와 밀착되었다. 그런데 왜 난 이 툭툭 던진 말들이 어지러울까? 


삶은 자의든 타의든 관계로 이뤄진다. 그 관계가 ‘가족’으로 묶일 때, 가족이라 해서 항상 같은 크기로 사랑하지 않는다. 같은 크기로 일관되게 사랑하다가 체하여 토할 수도 있다. 가족 간의 사랑에도 썰물과 밀물이 있다. 문희 가족은 썰물과 밀물을 인정하며 괄호 밖 삶 같지만, 가족이라는 괄호 안에서 끈끈하게 행진한다.      



작가의 이전글 함께, 그리고 혼자 노니는 놀이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