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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May 04. 2024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15년 전 둘째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땐 오빠 집에서 지낼 때였는데,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장례식에 입었던 옷을 세탁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니랑 아주 어렸을 때 잠깐 살았기 때문에 함께 지낸 적이 없었는데, 삼일동안의 장례식엔 같이 있을 수 있었고, 그때 입었던 옷이 언니와 함께 있었던 유일한 증거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이제 영영 같이 있을 수 없겠구나..


당시 오빠네 집엔 올케언니와, 다른 층엔 나와 5살 차이가 지는 조카가 살았다.  그들은 언니의 부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슬픔의 온도와는 너무나 다른 반응에 몹시도 서운했던 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생각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지 않으면 아무런 연결감을 갖지 않는구나.. 그 저 말로는 슬퍼할 수 있어도 눈물은 보이지 않는구나.. 눈물이 말 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프고 나니 이 눈물의 위력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그저 말 뿐인 위로는 차라리 안 듣는 것이 나았다.  특히 '힘내'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상처가 되었다. 힘내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힘을 내지?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두번째로 듣기 힘든 말은, 의외로 "요즘 암은 별거 아니더라"라는 말이다.  물론 희망을 주기 위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가볍게 치부해 버리면 환자는 할 말을 잃는다.


두 가지는 모두 환자의 말 문을 막는다.  

내가 경험한 진단 초기의 상태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의사들의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엄청난 공포가 엄습하다가도 실낱같은 희망이 차올라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무감해지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매 순간 감정의 온도차가 교차하니 누구와도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려워 혼자만의 시간을 오래 가졌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내가 가장 위로가 되었던 순간은 이런 순간순간의 마음 상태를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순간이다. "나는 의사들 말 안 믿어,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얘기 좀 그만해줄래.", "내 앞에서 잘 될 거라는 둥, 괜찮을 거라 얘기도 그만해줘"라고 말하고 나니, 부글부글 끓었던 화가 좀 가라앉았다.  그때 알았다.  제발 당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 그만하고 내 얘기 좀 들어주길 바랐다는 것을.


환자는 마음속이 엉켜있는 상태라,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마음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내뱉고 나면 실체가 보이고, 감정에 접촉할 수 있다. 이때, 들어주는 이가 마음으로 함께 있어 준다면 경청해 주는 그(녀)와 환자 자신의 내면과 더 깊이 연결된다.




항암 1차 후 2주 차에 아이 하교와 학원 픽업을 다닐 수 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해 소식을 궁금해하던 동네 지인들을 마주치곤 했는데, 놀랍게도 슬픔에 공명하며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내가 더 솔직해졌다. 그저 아무런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아 주었을 뿐인데, 그 어떤 말보다 내 가슴을 적셨다.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됐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 향기가 난다.
-상처에 대하여, 복효근


이들은 살면서 깊은 슬픔을 경험해 본 사람들일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과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명할 수 있으리라.  놀랍게도 이 공명이 사람을 살린다.  나에게는 눈물이 강력한 치료제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그저 곁에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  "요즘 암은 별거 아니래", "우리 힘을 내보자"라는 말은 환자 자신에게서 나올 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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