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야 May 02. 2024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하나의 암세포가 암으로 진단되기까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암세포 하나가 이제 막 몸에 생겼다면, 이 세포는 30번을 분열하여 암세포가 10억 개가 됐을 때 암의 크기는 직경 약 1cm, 무게 약 1g이 된다. 무게 1g이 되려면 평균 약 3,000일 즉 8년 2개월이 걸린다. 현재로서는 이 정도 크기가 되어야 진단이 가능하다.

 

결국, 하나의 암세포가 생긴 후 편균 8년 2개월 정도가 지나야 암으로 판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이 내용을 읽었을 때 사실 굉장히 놀랐다. 8년 2개월이라니, 최근 2년 사이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부인과 질환을 달고 살았던 것만 염두에 두었는데 돌연변이 암세포가 퇴출되지 않고 몸 안에서 자라나던 시간이 평균 8년이나 걸리다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무용지물이었다.


언제부터 생긴 걸까?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기 위해서라도 지난 삶을 검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소용없지만.


지난 8년은 내가 결혼생활을 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상했다.   어느 날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하는 불안이 엄습할 만큼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지난 8년여의 시간이 암세포를 키웠던 시간이라니 말도 안됐다.  그렇다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를 잃은 일 말고는 다른 건 떠오르지 않는다. 2년 전 지방선거가 있던 날 엄마가 곁을 떠나셨다. 엄마를 잃고 갑작스러운 하혈을 하고 응급실에 실려간 일, 그 후로 극심한 피로와 급성 염증으로 입원했던 일들이 최근 2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퇴출되지 못한 작은 암세포가 이 시기에 더 커진 걸까?


병상에 오랫동안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기에 애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으나, 마음과 몸은 달랐나 보다.  마음은 평온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몸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에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간단한 검진을 받고 의사들이 말한 대로의 처방만 받아 약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가렸다. 오히려 그 처방들이 암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암세포들이 여기저기 온몸에 흩어져 몸을 장악하고서야 비로소 몸의 소리를 들으려 했다.  마음은 온갖 거짓말로 진실을 감출 수 있지만, 몸은 정직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나를 돌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내가 놓친 것은 마음만 돌볼 뿐,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몸을 돌보지 않은 건 어제오늘일이 아니었다. 오랜 투병생활을 했던 아버지를 쏙 닮은 나는 유년기 때 자주 아팠다.  다행히 아동기부터는 조금씩 강단이 생겨 잔병치레는 줄었지만, 한 번 아프면 크게 아팠다.  


최근 2년 동안 자주 아플 때 속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여러 번 느꼈다. 아프고 싶지 않은데, 마음처럼 안 될 때 스스로에게 화를 냈다. 대체 왜 아프냐고 꾸짖었다.  아빠처럼 아프면 가족의 짐이 될 거라는 걸 아는 무의식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극심한 피로감을 주기적으로 느꼈으나, 혼자서 씩씩대고 해결했다. 만약 그 때라도 더 자세히 알아보고 더 끈질기게 원인을 알려했다면 다른 장기에 전이되기 전에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4기가 확정되고 나니 그런 마음이 든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새의 선물, 은희경


나의 지나온 삶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었다.  11년 전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마음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일상을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매진했다. 덕분에 삶은 만족스러워졌고, 7살에 머물러있던 아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사랑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나에겐 그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몸을 돌볼 차례다.  하루 종일 몸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숨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내 쉴 때 편안해하는 것을 바라본다. 아주 작은 몸짓도 잘했다고 칭찬한다.  거울을 자주 보고 자주 웃어 준다.  아픈 내 몸을 사랑한다.  암세포를 미워하지 않는다.  나를 더 깊이 알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암을 받아들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