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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분투 Jul 06. 2024

[시장] 라이프 사이언스의 개념과 사업기회

'라이프사이언스'는 부동산 섹터 중 하나이다. 보통 제약/바이오 기업이 사용하는 사무실, 실험실, 약품 생산 및 유통/물류 시설 등을 건립해 임대하는 비즈니스, 또는 그런 시설이 집적된 지역을 지칭한다. 데이터센터, 물류 등과 함께 산업용(Industrial)에 포함되는데,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데이터센터와 마찬가지로 아직 틈새(niche) 시장이다. 


라이프사이언스는 일반 사무실과는 평면 구성이나 시설 요건에서 차이가 있다. 통상 건물의 50% 내외가 실험실, 나머지가 사무실로 구성되는데, 실험실은 통상 층고가 5m 가량 되어야 한다. 또한 무거운 실험 장비를 지지해야 하므로 바닥도 견고해야 하고, 정밀한 실험이 가능하도록 진동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약품의 변질을 막고, 유해 물질을 효과적으로 배출하기 위한 채광/통풍/환기 시스템이나,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보조 전력원도 필요하다. 까다로운 설계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제약/바이오 업체는 보통 연구소를 자체적으로 보유해 왔다. 라이프사이언스는 원래 기업 내부에서 보유하던 전문 시설을 제3자인 전문 기업이 공급/운영하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와 유사하다. 데이터센터와 마찬가지로 임차기업 맞춤형 시설이므로 임차 기업이 장기 게약을 선호하고, 임대료 단가가 높은 반면, 임차인 pool이 작다. 

  


라이프사이언스가 새로운 시설은 아니다. 충북 오송, 강원 원주 등에서 추진되었던 바이오클러스터와 유사한 개념이다. 다만, 바이오클러스터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했던 반면, 라이프사이언스는 민간 부동산 업체에서 수익 비즈니스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클러스터는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추진 가능한 '생산시설의 집적'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라이프사이언스는 서울과 인근 지역에 'R&D시설 + 본사 오피스' 집적지(또는 건물)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바이오클러스터에서 강조되었던 대학, 병원이 국내 라이프사이언스 논의에서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바이오클러스터는 원래 산업 기반이 없던 곳에 제약/바이오 거점을 새로 조성하려다 보니, 기초 인프라인 대학, 병원, 공공기관 등이 앵커시설이 되었다. 반면, 라이프사이언스는 기업의 임차수요가 풍부하고 대학, 병원 등 협력 기관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는 대도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니, 바이오클러스터만큼 지원 기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한편, 국내에 아직 라이프사이언스라고 지칭할만큼 관련 기관이 집적된 곳이 없고 제약/바이오 업체와 대학/병원간의 협력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라이프사이언스가 부동산 섹터의 하나로 자리잡았는데, 최대 라이프사이언스 집적지인 보스턴에서는 대학/병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R&D 비용을 분담하는 한편, 장래성 있는 기술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이 집적해 있다. 즉, 미국에서는 연구/실험->창업->성장으로 이어지는 산업생태계로써의 라이프사이언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생태계 지원의 한 영역으로 전문화된 부동산 서비스로써의 라이프사이언스가 자리잡은 셈이다.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는 어떻게 혁신의 꽃을 피웠나(HIT News, 2022.9.5)

      


한국에서 라이프사이언스 집적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마곡, 판교, 과천 등이다. 특히 마곡은 20개에 가까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주요 거점 지역으로 최근 언론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서울 서부권의 핵심지역에 위치해 우수인력 확보가 쉽고, 감독관청인 서울식약품의약품안전처(목동 소재)와 가깝고, 서울 주요 오피스 권역이 아닌 곳에 정부에서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오피스를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마곡으로 이전한 기업들은 대부분 R&D 시설을 자체 보유하는 형태로 입주하여, 외부 기관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임대하는 전문 라이프사이언스 시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판교, 과천, 송도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본사/연구소를 자체 보유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제약사 연구소 용인에 집합 유한양행 가세, 데일리메디, 2004.12.16

제약업계, 마곡/과천으로 대이동...R&D 메카로 급부상, 세계비즈, 2022.1.27

제약바이오 마곡시대 활짝...본사 이전/R&D센터 속속 건립, 이투데이, 2022.5.25

서울 마곡권역 제약 및 바이오 관련 사업 거점으로 부상 전망, CBRE, 2021.7.8

인천지역 바이오산업의 특징 및 시사점, 한국은행 인천본부, 2021.3.9

주요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메디포뉴스, 2021.8.12

주요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2), 메디포뉴스, 2021.8.13


다만, 국내에서도 전문 라이프사이언스 시설이 부동산 섹터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제약/바이오 업체는 R&D를 위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반면, 필요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자체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우수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보유중인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미 일부 기업에서 활용도가 낮은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부동산 전략으로만 접근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초기 투자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고, 라이프 사이언스 시장을 형성하려면 다른 자산과 달리 산업 생태계의 구성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집적의 잇점을 누릴 수 있도록, 연구기관, 각종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등이 모여 들어 value chain을 구성해야 한다. BlackRock을 비롯한 해외 대형 투자기관들이 라이프사이언스 섹터에서 부동산과 기업 투자를 패키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은 라이프사이언스를 부동산 섹터가 아닌 기업 생태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라이프사이언스에서 투자 기회를 얻으려면, 일본의 미쓰이부동산처럼 제약/바이오 업계의 소통채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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