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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태양 Nov 15. 2023

마지막 순간의 내 말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자

#3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사는 동안  다양한 죽음을 접하면서,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답을 내기 어렵다.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른다.

그 마지막 순간의 내 말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자.'

책인지 방송에서인지 이 문장을 보고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의 내 말이 아름다우려면 삶 자체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몇 년 전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삶과 죽음에 맞닿아있었던 여러 가지의 일들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던 것 같다.

가까운 가족, 지인의 힘든 투병생활을 지켜보고 함께하다 결국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을 때는 죽음이라는 두 단어에 꽂혀서, 죽음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쓰인 책들만 골라서 읽기도 했었다.


갑자기 투병 생활을 하게 된 친구를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직장 동료가 읽고 있는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누구보다 삶과 죽음의 가운데에서 살고 있었던 젊은 의사가 의사의 삶에서 느낀 점과 고민들,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폐암에 걸린 후 환자로 산 시간들을 겪으며 쓴 책이다.

의사의 꿈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으로 시작해서 레지던트 시절,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순간, 치료와 투병 과정, 그리고 죽음, 남편을 떠나보낸 후에 쓴 아내의 글로 마무리된다.


마음에 남은, 남기고 싶은 글들이 너무 많았다. 삶의 어느 순간에 다시 펼쳐서 읽어보고 싶을 것 같은 글들이었다.

고르고 골라 (많이) 남겨본다.




의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학부생일 때 글을 써서 논했던 인간의 관계성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의학도인 우리는 죽음과 고통,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데 수반되는 여러 업무에 직면했다. 배우는 과정이라 실제로 책임을 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 무게를 희미하게나마 느낄 순 있었다.
- 74쪽

"그건 의사의 판단에 달렸죠."
이 얼마나 중대한 판단인가. 내가 여태껏 살면서 프렌치 딥 샌드위치와 루벤 샌드위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판단을 해본 적이 있었나? 어떻게 하면 의사다운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앞으로 실제적인 의학을 더 많이 배워야겠지만,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지식만으로 충분할까? 물론 지능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도덕적 명확성 또한 필요했다. 앞으로 내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함께 얻게 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어제 병원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삶과 죽음은 그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둘 모두를 바로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베게트의 포조가 한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삶은 너무나 짧은 '잠깐'이기에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맡겨진 역할, 즉 겸자를 든 무덤 파는 사람으로서 죽음의 시간과 방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
-90쪽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살고, 숨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제프와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고보처럼 죽음과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142쪽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을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149쪽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161쪽

불치병을 진단받고 나서 나는 두 가지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로서 나는 "암이라는 전쟁에서 꼭 이길 거야!"라고 선언하거나 "왜 하필 나야?(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고 암에 걸리지 말란 법이 있는가?"이다."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의료 행위, 그와 관련된 복잡한 일, 치료 공식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168쪽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사라지는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180쪽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지난번에 병세가 악화되어 심하게 축난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이런 자각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명백한 반응은 정신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일 것이다. 즉, 여행도 하고, 근사한 식사도 하고, 여태껏 접어둔 많은 소망을 성취하면서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 줄었다. 마치 경주하다가 지친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설사 기력이 있더라도 나는 거북이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깊이 명상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그냥 어떻게든 버티는 날들도 있다.
-231쪽

사람들은 5년 후에 뭘 하고 있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5년 후에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건강할 수도 있다.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점심 식사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다.
-232쪽

우리 딸 케이디. 나는 케이디가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는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234쪽

에필로그는 폴 칼라니티의 죽음 이후 그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가 책을 출판하면서 쓴 글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삶의 마지막 몇 해 동안 폴은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또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자극받으며 쉼 없이 글을 썼다.
-251쪽

이 책에는 모자란 시간과 싸우는 절박함, 중요한 얘기를 꼭 전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폴은 의사이자 환자로서 죽음과 대면했고, 또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과 씨름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삼십 대에 죽는 건 이제 드문 일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오랜 시간 씨름했고 이 책은 그 본질적인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에머슨은 이런 글을 남겼다. "보는 자가 언제나 말하는 자이다. 그의 꿈은 어떻게든 말로 표현되며, 그는 장엄한 환희 속에 그 꿈을 널리 알린다." 용감한 보는 자 폴은 이 책을 쓰면서 말하는 자가 되었고, 우리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죽음을 대면하라고 가르쳐주었다.
-253쪽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은 내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축하해 주고 함께 나누기 쉽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은 안 좋은 일의 경우에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과연 내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어줍지 않은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되진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 대한 위로는 항상 고민이 된다.



이 글을 예전에 저장해 놓고, 발행을 놓친 사이.


철없던 며느리를 예뻐해 주시고, 항상 믿고 지지해 주신 아버님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느끼며 순간순간 슬픔이 오겠지만, 함께 했던 좋은 모습, 좋았던 시간을 더 많이 기억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귀한 시간 내어 슬픔을 함께해 준 지인들의 진심 어린 위로는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아버님의 장례식을 치르며 나는 또 인생을 배웠고, 한 뼘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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