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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04. 2024

환(還)

6학년 1반 국민일기




내가 태어나고 60년이 지나서, 막내딸이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 갑자가 돌아서 손주가 태어나니, 어떤 의미로 진정한 환갑이다.

겨울 가지에 꽃이 피는 것만큼 예쁜 것도 없지만, 유난히 부른 배로 뒤뚱거리며 걷는 막내딸을 보니 자꾸만 불안하다. 남들 다하는 출산을 하는 게 뭐가 그리 걱정되나 할진 몰라도, 겨울 가지처럼 속이 허한 막내인지라 자칫 지쳐 부러질 것 같았다. 겨울 가지와 달리 막내의 배는 다달이 불러왔고 덩달아 내 근심도 같이 부풀어 올랐다.


지아비와 먹은 저녁상을 물리고, 막내와 아기가 조만간 와서 누울 이부자리를 꺼낸다. 씻어놓은 홑청을 새로 기워놓고 근심과 함께 톡톡 털다 보니 봄밤이 깊어간다.

안방에 돌아와 보니 잠들어 있는 지아비를 티브이가 은은히 지켜주고 있고, 티브이랑 교대해서 내가 지아비 옆으로 가 잠을 청한다. 지아비도 티브이도 나도 잠에 들어, 시곗바늘 소리만이 우리를 지켜준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까치 떠드는 소리에 나무가 정신이 나도 없다. 떠드는 까치는 내 심장을 닮았고, 정신없는 나무는 내 심정과 비슷하다. 한참을 떠들다 허공으로 푸르르 날아가는 새들 뒤로 들리는 전화벨 소리.

맑은 하늘과는 달리 막내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엄마... 나 오늘 새벽에 아기 낳았어... 낳아 보니 엄마는 다섯 남매를 어째 다 낳았나 싶더라 흑흑..."



 철없는 공주가 내가 잠든 사이에 엄마가 되었다. 멀쩡한 천장이 노오래지는 산고를 내가 걱정해주지 못하는 동안 겪다가, 딸이자 엄마가 되어 전화해 주었다. 내가 낳은 딸이 딸을 낳아, 무사히 어른이 되어주었다.


 울고 있는 막내에게 '그래 수고했다...' 담담한 척 말하고 싶었는데, 울렁거리는 목소리가 꼬부랑한 전화선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서로 울먹거리며, 서로 못 알아들었고 서로 알아들었다. 막내의 아기가 아이처럼 우는 어른 둘을 두고 어른처럼 자고 있었기에...


소중한 겨울 가지가 마침내 꽃을 피워, 이틀 뒤면 소중한 싹을 강보에 안고 올 것이다. 봄날에 숨구는 그 어떠한 씨앗보다 봄에 어울린다.


내가 태어나고 60년이 지나 또 한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고, 막내는 아이를 낳았다. 겨울 같은 나에게 갑자가 돌아서 새싹이 찾아오니, 실로 진정한 환갑이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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