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Mar 28. 2024

골목을 떠나는 봄

5학년 8반 국민일기



올해는 경사 투성이다. 올봄에 지아비가 새로 지어준 이층 집이 완성되었고, 심지어 가을에는 막내딸이 시집을 간다. 초겨울인데도 마음에 복사꽃이 막 핀다.

이전에 넷을 보냈고, 이번에도 비슷하고도 새롭게 기쁜 마음으로 아이의 결혼을 맞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와 사위도 반갑게 맞았고, 하룻밤 즐겁게 보냈다. 겨울 앞자리에 서서도 마음이 훈훈하다. 그리고 다시 아침. 막내가 이제 시댁으로 가야 한다고 일어선다.


헤어지기 전 딸아이가 우리 엄마 한번 안아보자 하며 달려든다. 평소 같으면 오냐 하며 안았을 텐데, 왜인지 가라앉는 심장. 

심장과 달리 눈시울은 뜨거워온다. 딸을 꼬옥 안은 후에는 제 언니들이 그랬듯 떠나갈 것을 알기에... 만개한 복사꽃들이 떠나가면 우리 내외는 다시 겨울을 체감해야 한다.

딸에게 우는 내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냥 가라고 손짓으로 밀어냈더니, 같이 울먹이며 퉁퉁 불은 내 손을 꼬옥 잡아준다. 나는 네가 떠나면 그때부터 겨울이라 우는 것이라 쳐도, 온전히 봄 같은 시기를 맞은 너는 어찌하여 우는 거냐...


'우짜든동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 그  한 마디만 해주고 애써 애들 발걸음을 돌렸다. 점점 작아지는 애들은 계속 나를 돌아보며 골목 속으로 사라져 간다. 봄을 맞은 한 쌍이 손을 잡고 작아지는 것이, 이전에 짝을 만나 사라진 아들들과 딸들의 뒷모습과 겹쳐 보인다. 두 사람이 점점 작아져가기에, 눈물이 시야를 흐리기에...


막내야. 너도 어미 아비 곁을 떠나 제 서방 곁으로 가는구나. 남들은 매운 시집살이라고 말하지만, 지아비를 만나고, 너희랑 살 수 있었기에 나는 시집와서 행복했다. 행복했다고는 해도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 장독 뒤에서 숨어 운 날도 더러 있었다. 너도 내가 보고 싶은 날이 있겠지. 그럴 때는 언제든 연락해라. 연락하고 싶을 때 해야지, 나처럼 남몰래 울고 버티니까 이젠 보고 싶어도 못 보더라. 그때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슬퍼하고, 혼자 보고 싶어 하다가, 영영 헤어져서는 혼자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도 딸아, 남몰래 울고 돌아온 뒤 네 손을 잡을 수 있어 행복이라는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집살이 속에서 너를 키우는 기쁨을 알게 해 주어 정말 고마웠다. 나를 떠난 만큼 너도 나처럼 너의 작은 생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존재 자체로 네 역할은 이미 다했다...



막내를 태운 차가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작은 기도를 올렸다. 교회도 절도 안 가지만, 하나님이건 부처님이건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해는 경사 투성이다. 올봄에 지아비가 새로 지어준 이층 집이 완성되었고, 초겨울부터는 일곱이었던 우리 가족이 다시 두 명으로 줄었다. 마지막으로 날아간 어린 새의 둥지가 여린 온기만 남긴 채 내 품에서 사라지고, 지나치게 조용해져 버린 집에서 처음 이 동네에 왔던 날처럼 자식 없이 우리 둘만 살게 되었다. 신혼이라기엔 너무 많은 고됨을 겪었고, 너무 늙어버린 모습으로 지아비가 나를, 내가 지아비를 바라본다.


인생의 봄을 맞은 아이가 떠난 집에는 빈 공간이 너무 많아 춥다. 영영 내 곁을 떠난 친정엄마가 내가 집을 떠난 날 느꼈을 그 공허함만큼...

다시 봄이 오는 날엔 헤어진 날처럼 눈물 흘리지 말고 활짝 웃어야지, 친정엄마 곁을 떠나 처음 발을 디딘 터 앞에서 다짐한다.


겨울 초입에 애써 매달린 집 앞 감나무 이파리들이 부치지 못한 편지지가 되어 한참을 나부끼고 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이전 05화 무너져서야 볕이 다가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