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 묻은 바람이 불어온다. 이런 날에는 바람 따라 마음이 급해진다. 커다란 양은 양동이 하나 들고 내 발걸음은 못으로 동동거린다.
옛날에는 동네 애들이 멱감으며 논다고 붐비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중년의 나 말고는 여기를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 그렇기에 이곳은 초여름처럼 게으르게 졸고 있다. 이따금 연못처럼 나른한 물고기가 하얀 비늘을 살짝살짝 수면에 반사시켜 줄 뿐.
바지런함이 삶의 비결인 나는 잠에 든 연못을 깨우고자, 슬리퍼 신은 발등에 닿는 몸빼바지를 동동 걷어올린다. 찰박찰박한 연못의 낮잠을 건드리다 보면 오늘 비구름처럼 시커먼 골부리를 만날 수 있다. 뭍으로 나와서 물비린내를 뿜고 있는 작은 것들을 보니, 동네 손님이 없어도 연못은 잠에 든 적이 없었나 보다.
부지런히 줍다 보면 금새 양동이 위로 가득 차오른다. 마치 주말에 내려온 자식들이 식사를 마치고 두드리는 배처럼, 그 모습을 보고 뿌듯할 내 마음처럼...
채집을 마치고 양동이를 보물상자처럼 귀하게 들고 내려온다. 실지 내 보물상자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집에 돌아와서, 새까만 보석을 깨끗이 씻기고 삶아낸다. 그리고는 단단한 껍질 안에 들어있는 탱글 하게 삶긴 골부리를 바늘로 꺼내다 보면, 옆에 얌전히 쉬던 바늘 하나가 지아비 손에 딸려 올라간다. 골부리를 꺼내는 바늘이 두 개가 되니 어느새 골부리가 큰 양푼이 위로 수북하다.
애들 내려오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마당 한 켠에 시커먼 가마솥에 불을 붙인다. 골부리 삶은 물을 붓고 끓이다보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삐져나오는데, 그러면 밀가루 된장 마늘 고춧가루로 버무린 시래기와 골부리를 넣는다. 한참을 뭉근하게 끓이다,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으로 부추를 넣어 한소끔 끓이면 완성이다. 별것 없어도 시간만 있으면 만들 수 있고, 하나도 힘이 안드는 것인데도 우리 가족 모두가 그리 좋아했다. 깊고 얼큰한 게 국물 조차 별미라며 한 그릇씩 더 먹을 기세의 흡족한 표정들이 펄펄 끓어오르는 가마솥 위로 수증기처럼 아른아른 다시 맑아진 하늘에닿아간다.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먹이고 싶어 하는 뭉근한 마음이 동네 어귀까지 미리 마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