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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Mar 14. 2024

산화된 것의 불가역성

4학년 4반 국민일기




우리 가족은 늘 불같이 없다. 쌀도 다섯 남매를 먹이면 불같이 사라지고, 시간도 밭갈고 밥 짓다보면 불같이 사라진다. 하루하루가 불에 데일듯 다급한데, 아궁이의 장작은 꺼질 듯이 항상 모자라다.

그러다 픽.

남동생이 꺼져버렸다.



 매캐한 연기로 자욱하게 현기증이 난다. 어지러움을 참으며 동생이 살았던 도시로 배웅을 갔다와도 남동생의 생기가 꺼졌음을 믿을 수가 없다.

 살아왔던 집에  다시금 내려앉아 바짝 마른 나무장작들이 불이 되어 타오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언제나 불같이 태워내며 살아가도, 어떤 장작에도 남동생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불로써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접어왔어도, 나는 불씨 하나 다시 살릴 수가 없다.

불같이 없는 나는 불조차 지켜낼 수 없는가...

오늘 내 속의 불덩이가 목구멍을 거슬러 자꾸만 기어 올라온다. 사나운 마음에도 저녁밥을 짓고있는 사사로움의 부재. 원래 불같이 없으면 매일 불을 피워야한다.



해가 좀 졌을까. 어느새 막내가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오늘 내가 불을 피우는 이유.

"엄마... 외삼촌은 잘 보내드렸나... 많이 슬퍼?"

너도 성탄절에도 오지 않는 산타할아버지 대신 매년 선물을 잔뜩 들고 내려오던 멋있는 외삼촌이 보고싶구나. 나는 빈손의 멋없는 모습이라도, 내 남동생을 만나고 싶다.



"그렇긴 하지..."

막내에게 따스한 숨을 내뱉고 다시금 불씨에 집중했다. 얼굴이 붉어진 건 서산으로 기우는 붉은 해와 군불의 열기 때문이다.

막내가 읽던 동화 중에, 성냥을 피우면 먹을 게 나오는 그림책이 있었다. 우리는 군불을 보며 동생이 가져온 초콜릿과, 작은 장난감과, 시골까지 오기 위해 타고 온 썰매였던 검은 자동차와, 둘이서만 기억하는 어린 시절과, 마지막까지의 좋은 기억들을 모두 태웠다. 다 태우고서 하얀 게 남았는데, 그게 동생과 너무 비슷하여 나는 동생을 먼저 보내고서 오래도록 아궁이를 바라보았다.



불이 꺼진 아궁이를 은은하게 비추는 장지문. 그 장지문 속에, 불이 꺼지고도 불같이 살아야할 내 아이들이 들어있다.

불이 꺼졌다고, 완전한 어둠은 아니구나. 내 아이들아...

나는 야식을 들고, 다시 장지문을 향해 걸어간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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