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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Feb 29. 2024

여름 아이

3학년 1반 국민일기



초복을 막 지나, 더위와 함께 초록 이파리들이 집 뒷산에 쑥쑥 자라난다. 내 뱃속에 아이도 푸르러가는 작물과 함께 통통하게 가까워온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파리를 기르는 더위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작년 가을부터 뱃속에서 자라난 내 아기. 추위를 견디며 자라다가 가장 강한 햇살에 태어나는 것이 여태까지의 시집살이 같다. 지아비와 초가집에서부터 출발을 해서, 남의 논밭을 일구어왔다. 어느 계절에도 겨울 같았던 세간도 부지런히 호미로 쟁이로 일구어 나가니, 초가집에서 비 안 새는 슬레이트 집으로 몇 달 전에 이사도 하고, 비록 손바닥만 한 땅이지만 지아비 이름으로 된 논밭도 생겼다. 그 손바닥만 한 햇살이 우리의 여름이었음을...


뱃속에서 자라 가던 아이가 이틀 전부터 조금씩 문을 두드린다. 이제는 우리 여름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자식을 넷이나 출산하고도 여전히 산통은 두렵기만 하다. 내가 어릴 때 친정엄마한테 산통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면, 우리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멀쩡한 천장이 있잖아. 갑자기 노오래지면 애기가 나온다.'  

 이렇게 숨 넘어가도록 아픈데도 천장 색이 그대로 하얗다. 만나기까지 한참 멀었다니 파란 하늘이 노오래질 일이다. 나를 이렇게 아프게 낳았을 엄마 생각이 난다. 밖에서 소란스럽게 동생을 기다리는 내 아이들은 지금 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까.

아이들아, 나도 너희들처럼 엄마가 있단다. 나보다 더 착한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



떨어져 있는 포근한 친정 엄마 얼굴이 몇 시간을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기 초성이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여태까지 내 아이들을 다 받아주신 시어무이의 부산하고도 노련한 손길이 초성과 함께 들려온다.


여름을 만나러 먼 길을 아파서 왔다. 우리 여름이 아픈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서야 나는 다시 드러누웠다. 여름은 뱃속과 다른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실눈을 뜨고 문풍지로 쪼르르 새어 들어오는 여름 햇살을 바라본다.


나에게는 형편이 조금은 풀리고 찾아온 여름으로, 아이들에겐 처음 만나는 막내로 살아갈 내 아기...

언니, 오빠들이 막내를 보러 얼굴을 들이민다. 너희 다섯 손가락이 있으니, 나는 몇 십리에 떨어져 있는 엄마 품이 아니라, 너희 다섯 명의 손을 잡겠다. 너희에게 이제부터라도 여름같이 풍부한 나날을 주고 싶구나. 너희는 겨울보다 음식도 많고 풀잎도 많은 여름에 더 많이 속해 있거라.


나는 다섯 손가락을 대신하여, 엄마품 대신 겨울을 온몸으로 맞을 테니, 너희는 여름처럼 뜨거우리만치 따뜻하거라. 내 아가들아.









# 8학년 국민일기 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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