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서로에게 짧게만 느껴졌다면, 이 동화의 맺음은 과연 진실일까요?
복닥거리던 처음의 풍경과 달리 어느새 가가호호 거미집이 늘어가는 고요한 시골. 그곳에 한 노부부가 살았어요. 노부부는 마을에 적막이 흐를 때까지 오래도록 서로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물론 마을이 북적이던 시절도 있었지요. 의리에 정이 많고 정의감에 앞장서던 할아버지는 동네 주민들의 인기와 신뢰를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정의로 끓어오르는 할아버지를 조용히 도와주곤 했답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가고, 마을의 어르신들은 세상을 떠나가면서, 할아버지가 마을에서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계산도 정확하고 기억력을 자랑했었지만, 마을에는 추억을 나눌 친구조차 없어 기억력을 사용할 필요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둘이 잘 살면 된다며, 할아버지에게 더 많은 기억을 심고자 노력했지요.
할머니의 진실된 마음으로도 세상에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나봅니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얼굴과 이름, 동네 주민들,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얼굴까지 순서대로 희미하게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마치 새로운 곳을 향해 모험을 떠나려는 사람 같았습니다. 의도치 않게 인물이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할머니는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꿈이 아니란 걸 느낄 때마다 그 꿈은 더 나쁘게 느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희미하게 그물거리는 기억 너머를 유영하기 시작했지요. 새벽이면 할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외출해야 한다며 나가려 했습니다.
'저 할아버지가 자꾸 기억 너머 어디로 가려고 하지...’ 할머니는 그 외출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하였지요. 기억 너머를 걸어 다니는 순간은 할머니에게 애정표현을 하던 평소와는 다른 눈을 하고 있었거든요. 후에 자식들이 방문 보조 잠금을 달아주어 안심을 했지만 할아버지는 밤마다 외출하기 위해 할머니를 깨우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의 외출을 말리느라 잠도 푹 잘 수 없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나쁜 꿈은 잠처럼 어둡고 서서히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정신에 갇혀 모험을 떠나던 할아버지는 결국 약간의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요양원에 가야 했어요. 할머니는 잠깐 떨어져 있더라도 잘 챙겨 먹으면 금방 건강해지리라 믿고 보냈습니다. 빈집에 홀로 남게 된 할머니는 평생을 함께 해온 할아버지가 몹시 그리웠고, 정신이 또렷한 시간이면 할아버지 역시 할머니를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주말마다 찾아간 할아버지 모습은 매주 앙상해져 갔어요. 말할 기운도 없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정신을 꼭 잡고 눈으로 말을 했습니다.
“애들 어마이, 나 집에 가고 싶다... ”
눈의 언어를 읽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집으로 다시 모셔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식들은 말렸습니다. 힘들어서 안된다는 자식들의 걱정에도, 며칠만이라도 따순 밥 실컷 드시게 해주고 싶다는 할머니 마음은 꺾이지 않았지요.
그렇게 모험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축 늘어진 시선으로 온 방을 훑습니다. 천장부터 자개장에 티브이까지... 평생 살아온 이 집에 다시 돌아온 안도감에, 오랫동안 함께해온 할머니 옆에 다시 돌아와서 아주 행복했답니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과 죽을 힘껏 받아 드시며 기운을 내려는 할아버지. 밥을 넣어주는 할머니의 손을 갑자기 꼬옥 잡아줍니다. 할머니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지요. 할아버지는 무사히 모험을 마쳤고, 배는 정박되어있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로 간호가 될 수 없기에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꼭 다 나아서 몇 달 안에 건강해져서 집으로 모시고 올 테니 치료 잘 받고 금방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할머니의 마음을 잘 아는 할아버지는 눈을 깜빡입니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생각합니다. 이제 진짜 모험을 떠날 시간이라고...
"애들 어마이, 그동안 진짜 고마웠고 고생했어."
할아버지는 이승에 정박되어있던 자신의 닻을 잘라버렸습니다. 할머니의 따스한 밥상을 기억하며 먼 항해를 떠나는 할아버지는 앙상해도 차갑지 않습니다.
어이... 어이...
꽃상여의 구령에 맞춰 흘러가는 기억의 모험...
지상에서 할머니를 사랑했던 기억들로 홀로인 할아버지는 먼길에도 외롭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