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인제 개인산에 가서 폭설을 만났다. 도착했을 때도 이미 눈은 꽤 많이 쌓여 있었고, 저녁부터 다시 폭설로 변한 눈이 놀라운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개인산 등산을 위함은 아니다. 정상 가까이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등재되어 있는 약수터까지 가는 원시의 겨울숲이 궁금했고, 상상만으로도 내 폐부를 찌르는 듯한 그 시퍼런 공기를 느끼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순식간에 길이 끊어지고, 눈 속에 갇혔다. 내가 눈인지 눈이 나인지 모를 고요 속에 잠식된 퍼런 겨울나무들이 나처럼 서 있었다.
멀리 눈을 들어 바라본 세상은 아득한 경계 너머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듯한 백색의 화염.
막연한 나의 시선이 꽂힌 주위의 숲은 내게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나를 휘감는 허연 눈바람. 매서워지는 바람 끝, 바람의 길을 비로소 알겠고, 눈에 갖힌 소리 내는 모든 것들, 그들의 외로움이 보인다.
나는 어떤 기다림보다 막막한 겨울숲을 눈보라와 가로 지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천마디 인고의 가뿐 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