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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 Jay Jul 09. 2024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휘고...

한참을 걸었고, 문득 뒤돌아본 그 자리에 여전히 그대로 서 있었다. 다시 한참을 걸었고 다시 뒤돌아본 그 자리에 은은한 미소와 함께 살짝 고개 끄덕이며 또 여전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랬다. 여전히 서 있었다… 그래서, 든든했다. 부모조차 기댈 등이 되어 주지 않았던 내게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쉼이 되어 주었다. 

가끔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내 시선에 더 큰 고갯짓으로 응원을 건넸고, 비겁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 끝엔 그저 엄히 버티고 서 있기만 하는 그가 머문다.

고등학교 때, 버스를 내려 집으로 걸어오던 4월 어느 햇살 찬란했던 그 길에, 손바닥을 벌리면 가득 모여 있던 햇살 덩어리가 금모래처럼 바스러져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리고, 횡단보도 너머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었던 반짝이는 가로수 사이로 봄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부터 였다. 내가 걷는 모든 걸음 속 그들이 있었고, 나를 찾기 위한 여행에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렇게 그랬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무구나. 그렇게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갔구나.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도 움이 돋고, 지친 자들에게 그늘을 내어주며 엉겅퀴 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타고 오르는 걸 허락하고 심지어 물도 나눠주고, 오고가는 새들에게 이미 지난 것의 무상함을 알려주는, 그래서 속으로 많이 울며 점점 넓고 깊어져야 함을 내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당신도 그랬으면 했다. 그래서, 산으로 산으로 다니며 안해도 되는 산행을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헛된 것임을 진즉 알고 있었다. 당신의 마음을 모른 척 했던 나의 쓸쓸함을 당신은 끝까지 모르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먼 데 사는 친구로만 남아 있기를...그렇게 살다살다 이름도 잊혀질 즈음 한번쯤 나를 떠올리며 씨익 미소 짓게 되는 기억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당신도 누군가의 뿌리 깊어진 나무로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나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다. 이렇게 가는 내 길이 맞는지, 잘 걷고 있는지, 새로 난 길에 들어 서서는 그 길에 적응도 해 가며 그렇게 걷고 있다. 그리고, 가끔 돌아보는 내 시선 끝 그곳엔 그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기도 큰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기도 하며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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