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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Nov 09. 2023

어느 변호사의 전세사기 상담 일지(2)

피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편에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던 사기꾼의 수법과 근황을 말씀드렸습니다. A일당이 아닌 다른 임대인들도 사용하는 사기 수법이었습니다. 그러니 유사한 행위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담하며 만났던 내담자들의 말은 여전히 마음에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피해 사실을 최근에 알았어요, 무작정 왔는데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이 없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어요."


 피해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자꾸 저 말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상담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하다가도 '정말 방법이 없을까'하며 고민했습니다.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선 넘치는 인터넷 정보 중 무엇을 믿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같은 피해자들이라도 본 것이 달라 대책도 다르게 판단합니다. 피해자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불안감도 깊어집니다. 더군다나 아는 변호사도 없어 낯선 변호사에게 선뜻 비용을 지불하고 상담받기도 두렵습니다. 법은 무섭기 때문이겠죠. 오랜만에 법서를 다시 펼쳤던 이유는 현장에서 봤던 피해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적어도 답이 없다고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야 어떻든 변호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오랜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전세 사기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가 예정돼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상담 매뉴얼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닙니다. 짧은 기간 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상담해야 하다 보니 급히 공부를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나름 정돈된 매뉴얼이 생겼습니다. 피해 내담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들을 글에 녹여 써봤습니다.


3. 지금 할 수 있는 것


 가. 내용증명 발송


  내용증명의 내용에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전세기간 연장을 하지 않겠으니 지정된 날까지 보증금을 반환해 달라"입니다. 원칙적으로 통지 후 3개월부터 해지 효력이 생기니 미리 보내놓는 것도 좋습니다. 기간이 만료되지 않았다면 만기 3개월 전부터 기간을 넉넉히 두고 보내야 합니다. 만료 됐다면 지금 보내면 됩니다. 참고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집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살아도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월세든 전세든 돈 받는 날 나가는 게 원칙입니다.


  내용증명은 법적 효력이 있다기보다 추후 민사소송에서 계약이 만료됐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두는 것입니다. '공식 절차를 거친 편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내용증명이 아니더라도 임대인과 나눈 문자, 카톡, 음성녹음 등이 있으면 내용증명을 반드시 임대인이 수령하지 않아도 위 자료들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내용증명은 우체국 빠른 등기로 발송하여 등기번호조회를 통해 수령이 됐는지, 누가 수령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소지로 발송해 동거인이 수령했어도 괜찮습니다(민사소송법 제186조 제1항). 이때 곤란한 경우는 임대인이나 동거인, 회사 등에서 수령하지 않고 반송되어 오는 경우입니다. 반송되면 반송된 내용증명을 가지고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임대인의 초본을 발급해 주는데 그 초본상 최근 주소로 발송 후 또다시 반송되면 내용증명 공시송달제도를 이용해야 합니다. 공시송달은 수령인이 어떤 사유에서 수령이 불가능할 때 법원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제도입니다. 이 공시송달 신청은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공시송달 신청서'를 작성하여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나. 관련 소송(민사, 형사)


  내담자들이 가장 헷갈려하는 부분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였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소장과 고소장을 헷갈려했고 무엇을 위해 하는 소송인지, 어디서 어떤 절차가 진행되는지 등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모를 수 있습니다. 선량한 시민이라면 법원이나 경찰서를 가는 일이 살아생전 거의 없으니 알고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소송은 민사적 방법과 형사적 방법이 있습니다. 민사소송은 내 돈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됩니다. 법원에 소장과 증거를 제출하고 상대가 주지 않은 내 돈을 강제로 가져오기 위한 첫 절차입니다. 판단과 결정은 판사가 합니다.


  형사소송은 임대인(사기 가해자)의 처벌을 목적으로 합니다. 고소장을 써서 임대인 주소지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고 1차 판단은 수사기관(경찰, 검찰)이, 최종 판단은 판사가 합니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 소송이며 하나를 했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자동으로 사건화 되는 것이 아닌 걸 기억하시면 더 좋습니다.


  아래부터는 좀 더 자세한 절차입니다.


  1) 민사소송


   가.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해야 하는 소송은 '전세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입니다.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했으니 임대인한테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보통 당사자들끼리 좋게 말로 해서 해결이 나면 법원에 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하면 합법적으로 뺏어올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때 내가 뺏는 게 합법적이라는 근거가 필요한데 이를 권원(권리의 근거)이라고 합니다. 그 권원을 증명해 주는 게 판결문이구요. 내 돈을 돌려받기 위한 기나긴 여정 중 첫 번째 퀘스트는 '판결문 받기'입니다.


  전세보증금반환 청구 소송은 지급명령이나 일반 민사소송으로 진행됩니다.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 내 입장은 동일하지만 판결문을 받는 방법은 두 가지란 의미입니다. 물론 지급명령신청을 해서 받는 건 판사가 주는 판결문은 아니지만 결정문이란 이름의 판결문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권원을 줍니다. 같은 효력인데 왜 둘로 나눠어 있냐면 지급명령은 일 많은 판사님들의 일손을 덜어주고자 그렇습니다. 법리 다툼이 적거나 권리가 명확한 사건들만 지급명령신청 대상이 되는데 판사님이 아닌 사법보좌관이 관련 증거와 내용을 살피고 결정문을줍니다.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도 전세 기간이 만료되면 보증금을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법률상 권리가 명확한 소송이라 지급명령으로 간단히 결정됩니다. 법원에 출석할 필요 없이 기초 증거들만 제출하고 임대인이 이의신청만 하지 않으면 그대로 결정이 확정돼 권원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급명령으로 결정문을 받는 건 어떻게 보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윤리의식이 떨어지는 사기꾼답게 임차인의 지급명령신청을 송달받고 '이의신청'을 하는 사기꾼 임대인들이 있습니다. 이의신청 이유는 '나는 임대인이 아니다', '그 돈을 줄 의무가 없다', '이미 줬다' 등등이 있습니다. 건물 주소, 임차인, 임대인이 계약서상 일치하고 임대인 앞으로 돈을 보낸 게 맞다면 저런 허무맹랑한 변명에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다만 임대인의 저런 양심 없는 이의신청 때문에 지급명령결정문을 받을 수는 없고 판사님이 판단하시는 본안 소송(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으로 진행됩니다.


  임대인의 이의신청으로 지급명령신청 사건이 소송으로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진짜 소송 시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차인이 질 이유는 없습니다. 임대인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애쓰는 겁니다. 불편한 점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재판에 출석해야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실관계와 증거가 명백한 경우 한두 번 출석하고나면 재판장님이 판결을 내릴테니까요.


  판결문은 재판이 종결(재판장이 더 이상 양측 얘기를 듣는 것을 멈추고 판단을 하겠다는 결심)되면 재판장이 지정해 준 선고기일(판결이 나오는 날)이후 받게 됩니다. 선고기일에 당사자는 나가지 않아도 되고 집으로 판결문이 옵니다.


 나. 손해배상청구소송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피해를 돈으로 환산해서 그 금액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사기 행위의 주범인 임대인, 공범인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소송이 가능합니다. 임대인에게는 보증금 외 실질적으로 피해 입은 금액(예를 들어 사기 피해로 인해 생긴 질병을 치료하러 다닌 병원비, 입원비 등)을 모두 합산해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큰 금액을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공인중개사가 공범이라면 공인중개사와 공인중개사협회를 공동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임차인에게 계약 시 '공제증서'라는 걸 주는데 이 증서는 협회와 공인중개사가 계약을 체결하여 공인중개사가 사고 친 것에 대해 협회가 임차인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근거가 됩니다. 즉 공인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발생시킨 손해를 같이 부담할 책임을 지는 것이죠.


 이처럼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할 수 있는 민사소송은 임대인 또는 공인중개사와 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가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임대인을 고소하는 방법, 고소장 작성법 등을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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