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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Nov 13. 2023

어느 변호사의 전세사기 상담 일지(4)

 처음 전세 사기 관련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렇게 긴 글이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상담할 때 공통적으로 나오던 절차 안내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는 식의 기록을 남기려 했을 뿐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상담할 때 느꼈던 답답함과 피해자들의 막막함이 다시 전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4편에 이르게 된 까닭은 그만큼 피해자들이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4. 이사를 가야만 하는 경우


 전세 기간에 맞춰 입주할 집을 미리 구한 경우가 있습니다. 보증금은 받지도 못했는데 새로운 집에 이사 가야 하는 경우, 즉 '전입신고'를 빼야 하는 경우에 처했다면 아래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사하면 전입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확정일자'도 받습니다. 전입신고는 정부 24 홈페이지에서 공인인증서로 간단히 할 수 있으나 확정일자는 계약서를 들고 주민센터에 가서 받아야 합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두 개를 모두 받아야 제삼자(임대인, 임차인 외 권리 주장 자)에게 '내가 임차인이다'라고 할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법률용어로 '대항력'이라 합니다.


 간혹 전입신고만 하고 확정일자는 받아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럼 대항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한 세트라 둘 중 하나만 없어도 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항력이 생기는 날도 중요합니다.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대항력이 생긴 날짜를 기준으로 순위가 정해져 돈을 받기 때문이죠. 앞서 설명했던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한 세트이니 둘 중 늦게 취득한 것의 날짜를 기준으로 대항력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전입신고를 2023. 1. 1. 했고 확정일자는 2023. 1. 5. 에 했다면 대항력은 늦은 날짜인 2023. 1. 5. 를 기준으로 2023. 1. 6. 0시부터 생긴다. 같은 날 취득했다면 그다음 날 0시부터 발생합니다.


 이 대항력 얘기를 왜 하냐면 그만큼 임차인에게 중요한 것이 대항력이기 때문입니다. 대항력은 중간에 전입신고를 다른 곳에 했다가 다시 처음 집으로 전입신고를 한다고 해서 처음 날짜로 인정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2023. 1. 1.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하고 살다가 2023. 6. 1. 다른 집에 전입신고 했고 곧 2023. 6. 5. 다시 전입신고를 처음 집으로 옮겨왔더라도 대항력은 2023. 6. 6. 0시부터 생깁니다. 즉 한 번 다른 곳으로 전입신고를 빼면 대항력이 리셋된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리셋하면, 순위가 초기화됩니다.


 전세 사기 피해가 예정돼 있고 보증금을 받지 못했는데 다른 집에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부동산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것을 확인한 후 전입신고를 빼면 됩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내가 이 집 임차인이었고 못 받은 돈이 얼마 있다'라는 걸 집에 남기는 것입니다. 이걸 남기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 유지해 놓았던 대항력을 공시해 두는 것이니 전입신고를 옮겨도 대항력은 유지됩니다.


 5. 경매개시결정을 알게 됐을 때(집이 경매로 넘어간 경우)


 집이 경매로 넘어갈 예정인지는 해당 건물의 부동산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통 많은 돈을 빌려준 은행이 법원에 경매신청을 하고 이것을 법원이 승인하면 경매개시가 됩니다. 부동산등기부등본은 '인터넷등기소'에 들어가면 누구든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등기부등본에 거주지 관할 법원에서 이 부동산에 경매개시결정을 했다는 내용이 보인다면 곧 집으로 경매개시결정 안내문이 옵니다. 안내문을 보면 '배당 신청'을 언제까지 하라는 내용이 있을 텐데 꼭 정해진 날짜 전에 법원에 배당신청을 해야 합니다.


 배당이란 경매로 건물이 넘어가 이것을 사는 사람이 생기고 새로운 매수인이 돈을 냈을 때 그 돈을 건물과 관련한 사람들이 나눠갖는 일종의 빚잔치입니다. 임차인은 등기부등본에 공시되지 않은 채권자이니 배당신청을 직접 해야만 채권자임을 법원에서 인지하고 배당금을 줍니다. 만약 임차권등기명령을 했다면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5. 9. 15. 선고 2005다33039 판결). 


 6. 주택의 형태를 확인하여 대비하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건 임대인으로부터 내 돈을 받을 수 없단 현실이 점차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즉 임대인을 아무리 털어봤자 돈이 안 나온다는 사실에서 오는 절망감이죠. 그 이유는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집이 소위 깡통전세라 그렇습니다. 빌라에 묶여 있는 은행이나 대부업체의 돈이 시세보다 커서 건물을 팔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올 돈이 없습니다. 


 대부분 피해자들이 건물의 형태는 '다가구주택'입니다. 다가구는 다세대와 다릅니다. 다세대는 각 호수마다 소유자권자(등기권자)가 다릅니다. 그러니 만약 내가 사는 호수가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내 호수에 근저당권, 가압류 등이 있는지만 보면 됩니다. 

  

  하지만 다가구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다가구는 빌라 전체를 통틀어 소유권자가 한 명입니다. 이렇게 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갈 때 문제가 생깁니다. 건물에 잡힌 근저당권, 가압류를 포함해 선순위임차인들의 보증금도 봐야 합니다. 즉 나보다 먼저 입주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들이 있다면 경매로 건물이 팔려도 순위에 따라 그 사람들이 돈을 다 받고 내 순서가 오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만약 내 순서까지 남는 돈이 없다면 어떡할까요? 그럼 돈을 받지 못하고 나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간혹 새로운 매수인(경매에서 낙찰받은 사람)에게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냐고,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건 안됩니다.. 경매에서 권리를 취득한 사람에겐 대항력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인 경우 꼭 배당신청을 해야 합니다. 배당 신청 후 경매가 종료되고 배당금을 모두 받으면 좋겠지만 일부나 전부를 받지 못했을 경우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 앞서 설명했던 민사소송을 했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던 건물을 팔아서는 돈을 받지 못했다면 임대인 소유 다른 재산(건물, 땅, 자동차, 예금 등)에 내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 즉 강제로 빼앗아 올 수 있는 권리가 앞서 설명한 권원입니다. 판결문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받아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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