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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Dec 29. 2023

겨울나무의 새벽

나의 새벽은 어디쯤일까

 동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새벽의 길이와 깊이가 다르다. 여름 새벽은 짧고 옅은데 겨울 새벽은 길고 어둡다. 나의 새벽은 언제나 겨울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발가벗겨진 겨울나무 같다.


 은사님은 나를 두고 땔감 하나 없이 살아온 인생이라 하셨다. 그래서 나의 새벽이 더 겨울처럼 춥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매번 힘겨워하는 이유는  급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쯤이면 나도 편해지겠지'라 마음 놓으면 인생은 어느새 그건 아니라며 호되게 가르친다.


 로스쿨에 합격했던 스물 셋 겨울, 합격증을 보며 변호사만 되면 인생이 편해질 거라 생각했다. 나뿐 아니라 내 가족들도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그럴듯하고 괜찮게 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딱 이십 대가 할 법한 착각이었다.


 물론 변호사 자격증은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 줬고 인정했다. 내 이름 석자보다 '이 변호사님'으로 불리는 나날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불행과 스트레스를 대신 겪는 변호사업을 하며 사람을 배우고 사회가 돌아가는 법을 익혔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인생이 편해지는 일'은 없었다.


 집안의 가난은 나 혼자만으로 막아내기 너무나 어려웠다. 가족들의 기대는 커졌고 돈은 모이지 않아 부담감에 혼자 많이 울었다. 믿었던 친척들은 질투했다. 애초 공부할 형편이 안 되는 집구석에서 돈도 안 들이고 공부한다는 걸 꼴사납게 생각했는데 변호사가 돼버렸으니 배가 아팠던 것이다. 분명 내가 변호사가 되면 나를 비롯한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태도 변화는 나를 깊이 괴롭혔다.


 그들과 거리를 두며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해야 내가 살 것 같았다. 모든 의무감, 책임감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완전한 내 공간을 만들었고 자유가 언제든 드나들 수 있게 세팅했다. 그 시기즈음 머무를 가치가 없던 회사에서도 탈출했다. 또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도 있었지만 회사에 소속되어 돈을 벌어다 주는 역할은 잠시 멈추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일하는 시간을 선택해 나를 위해 돈을 버는 형식으로 업무 형태를 바꿨다. 몸이 조금 더 힘들어지긴 했지만 마음만은 편해진 요즘이다. 그렇다고 인생이 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예전만큼 새벽이 아득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여전히 동트는 게 보이진 않지만 '언젠간 동이 트지 않을까?'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중요한 건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괴로웠던 건 인생이 쉬워지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잃고 있는 느낌이 나를 잡아먹어 두려웠던 것이다. 인생은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 늘 그랬듯 고단하고도 변덕스러울 것이다. 인생이 쉽지 않다는 당연하고도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괴로워했던 게 아니었다. 그 끝없는 터널을 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나이만 먹은 나를 데리고 가는 게 두려웠던 거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상담한다. 나는 도망가지도 우회하지도 않은 채 내게 주어진 고난을 그대로 끌어 안았다. 그렇게 스스로 재가 되어 어려움을 태워낸다. 그러니 그 영광 또한 모두 내 차지이다.


 나는 언제든 한 줌의 재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언젠가부터 죽음이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반드시 맞이할 일이란 걸 알게 되니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던 마음이 내려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죽음을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늦은 밤엔 가만히 누워 하루간 잠시 가졌던 행복을 비워낸다. 내 마음의 파동이 요동치지 않을 수 있게, 잔잔한 걸 넘어 고요해질 수 있도록.


 내 삶은 언제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한 삶이었고 투쟁이었다. 지금도 그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반대가 계속되니까. 나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비난을 극복하고 일어나야만 하던 일상의 연속. 누가 나를 도왔던가, 아무도 없었다. 홀로 넘어지고 일어서다 보면 근처에 잡을 것들이 있어도 습관적으로 잡지 않고 맨 무릎을 힘주어 일어난다. 고난도 셀프, 영광도 셀프란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며 나만의 투쟁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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