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베린 변호사 Jan 06. 2024

MZ 변호사의 MZ 변호하기

문제는 MZ가 아니다.


 며칠 전 지인을 통해 법률 상담 요청이 왔습니다. 상담을 요청한 A는 지방의 한 중소기업에서 2년 넘게 근무한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회사 측은 두 달간 말미를 주며 A에게 퇴사를 요구했고 A는 12월에 퇴사하기로 날짜만 협의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다시 마음이 바뀌어 11월까지 일하라고 했고 A는 퇴직금과 실업급여 처리를 요구했습니다. 협의된 날짜보다 미리 나가달라 했으니 정당한 요구였죠.


 그러나 회사는 "퇴직금을 요구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우리가 널 교육시킬 때 들였던 비용을 내놔"라며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퇴직금을 받던지 실업급여 처리만 받든 지 선택하라고까지 했습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법 위에서 노는 막장 회사인 것입니다.


 저런 회사는 긴말할 것도 없이 노동청에 임금 미지급으로 진정서를 접수하고 형사처벌 의사까지 밝히면 됩니다. 법은 이럴 때 필요합니다. 임금 미지급, 계약서 미작성, 형사처벌은 각각 처벌할 수 있습니다. 즉 취하도 신고자의 의사에 따라 각각 할 수 있는 거지 한 세트가 아닙니다. 예전에 노동청 감독관이 임금을 받으려면 형사고소 취하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종용해 이를 믿은 청년들이 취하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다면 가볍게 무시해도 좋습니다.


 위 사례와 비슷한 결의 블랙 회사는 어디든 있습니다. 낮은 임금으로 높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회사, 직원을 모욕하거나 폭행하는 대표, 업무 처리 방식이 주먹구구식인 회사, 매출 저조를 이유로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회사, 월급이나 각종 비용처리가 밀리는 회사, 썩어버린 고인 물들이 다른 직원을 괴롭히는 회사 등. 처참한 사례들은 차고 넘칩니다. 변호사 업계는 이런 사례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저 역시 블랙 회사에 근무한 적 있는 산증인입니다.


 이런 블랙 회사들의 악행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는게 MZ의 문제일까요? 참는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참다가 몸과 마음,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면 "왜 그때 나오지 않았냐"며 의미없는 질책을 하는건 비겁합니다. 못참는다고 의지박약도 아니고 잘 참는다고 사회생활 잘하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내 기준에 아니다 싶으면 아닌겁니다. 쎄한 느낌이 든다면 대부분 그 느낌이 맞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용기만 있다면 어떤 선택이든 잘못된 건 없습니다.


 이런 선택의 중요성을 잘 아는 청년들은 삶을 지키기 위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퇴사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속내는, "굶어 죽더라도 여기서는 일 안해"입니다. 청년들의 잦은 퇴사, 이직은 삶을 좀 더 내밀한 개인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참아도 될 만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단기 근무 퇴사율에 당황한 볼멘소리가 높은가 봅니다. 부당함을 참아내는게 삶의 가치를 떨어뜨려 그것을 차단하려한 행동들이 사회를 들썩일 정도입니다.


 직원이 잘 안 뽑히거나 자주 퇴사하는 회사는 반드시 회사 내부에 이유가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악행이 넘치는데 단순히 '요새 애들은 의지가 부족해'라는 남 탓 시전으로 허접한 회사를 떠난 청년들을 순식간에 의지박약으로 깍아내립니다. 그렇게 해야만 볼품없는 자신들의 인생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이제는 알 때도 되지 않았나 합니다. 소수 신입 직원들의 불성실한 사례가 전체 청년들의 삶이나 노력을 대표하진 않는다는 걸요. 적어도 청년들은 알바나 회사에서 만난 능구렁이 같이 일 안 하고 책임 회파 방법만 배운 경력들을 대놓고 그 세대 전체 문제로 치부해 세대 간 갈등으로 끌고 가진 않습니다. 청년세대는 이 세대 간 싸움에서조차 약자입니다. 그러기에 애초 싸움을 키우지 않기도 하고요. 그러니 이 문제를 단순한 세대 갈등으로 정의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남 탓을 하면 해결책은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요새 애들은 문제가 많다"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발견되는 시대와 국적을 불문한 클래식한 윗세대의 볼멘소리잖아요.

 

 팔은 안으로 굽으니 청년 입장에서 근로를 해본 사람으로 어쩔 수 없이 청년들의 마음이 더 이해가 갑니다. 소위 아무 데나 가고 싶지 않은 그 마음도 압니다. 지금 당장 어디든 들어가 돈을 벌어 경력을 쌓고 후일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겠다는 야심가들도 있습니다. 그 마음 또한 압니다.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의 부족한 삶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한 선택은 쉽지 않으니까요. 저 역시도 그런 선택들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제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릴까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급해서 아무 데나 가면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상처 입고 아무것도 아닌 대우를 받으며 아무 날에나 퇴사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무뎌져서 그러려니 하는 강한 분들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쓰린 기억이 쌓인다고 삶이 더 나아지지도 않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모든 상처받아본 사람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으며 노력합니다. 그러니 내가 왜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기차 여행이라 하고 회사를 정거장이라고 한다면요, 우린 어떤 정거장에 멈춰 머물고 싶나요. 사람마다 다를 텐데요, 내가 처음 기차에 오르며 상상하고 기대했던 정거장은 어디일까요. 잠시 기차에 내려 내 시간을 내어줄 그 정거장이 나에게 가치 있는 곳이길 바랍니다. 희망했던 풍경과 완전히 같진 않더라도 비슷하기라도 하길 소망합니다.


 저도 그런 정거장을 찾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나무의 새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