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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Jan 22. 2024

어느 변호사의 전세사기 상담 일지(마치며)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7. 소회

 

 마지막 전세사기 상담일지를 발행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해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일지를 (4)까지 쓰고 어떻게 끝마침 지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어려웠습니다. 종종 정신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괴로움과 막막함을 공유했던 그때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 시기 저는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대화하며 저의 무력감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피해자들에게 뚜렷한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없는 현실이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딱 떨어질만한 시원한 답이 없었습니다. 민사소송, 특히 돈을 받아야 하는 게 목적인 소송은 상대인 채무자가 갚을 돈이 있을 때 의미 있습니다. 채무자가 돈이 없다면 받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그의 재산이 하나도 없다거나 이미 그가 재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면? 소송에 이겨도 막막합니다.


 한 피해자는 하루아침에 내 집이 편안했던 보금자리에서 저주받은 애물단지가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정부든 어디든 피해자들을 위한 뚜렷한 구제책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지정되면 낮은 이율로 대환 대출을 해준다거나 소송 비용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마저도 지원받으려면  '전세기간 만료'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한 대부분 피해자들은 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습니다. 피해가 예정됐음에도 기간이 끝날 때 혹은 집이 경매로 넘어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인 겁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숨이 막힐지, 집에 들어가는 게 고통일 것입니다.


 잠들기 전까지 많이 봤던 건 기사였습니다. 피해자들을 탓하고 모욕하는 천박한 이들의 배설을 보면 화가 났습니다. 실제 피해자 중에는 저보다도 부동산 권리설정, 보증보험을 빠삭히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속지 않으려 노력한 사람들이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계약했음에도 피할 수 없었던 게 전세 사기입니다. 특히 20, 30대 사회 초년생 직장인들은 계약에 익숙하지 않아 나이 많은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가 설득하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따지면 "이렇게 까다롭게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가스라이팅 해서 윽박지르며 계약을 유도하는 수법은 흔했습니다.


 사회적 문제가 돼버린 전세 사기 피해는 은행의 금리, 국가의 부동산 정책 여러 가지 문제점과 연결돼 있기에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원하는 실질적인 구제책을 내지 않기로 한지도 모릅니다. 이 사건의 원인을 따라가 보면 국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국가의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책임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황. 너무나 익숙한 억울함.


 전세사기 상담 일지 시리즈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문제에 대해 더는 신경 쓰지 않거나 아무것도 안 할 거란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일지를 찾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변호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언젠가 현장에서 다시 저를 마주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 상담 일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담이 끝날 때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란다"라는 인사말을 드리곤 합니다. 변호사를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지 알기 때문입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밤이 편안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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