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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유택

녀석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그렇게 도피해버렸다

by 김영수



현관문이 열렸다. 고교 기숙사에서 외박을 나온 고1 막내의 손에 플라스틱 사육통이 들려있었다. 아내는 밤톨 같은 아들을 얼싸안아주려다가 흠칫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질렀다. 통 안에는 빨간 눈을 한 흰쥐 세 마리가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쳐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만 둘인 집에, 그래도 막내는 딸같이 곰살궂어서 엄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녀석이 몰래 온라인 게임한다고 내가 일러바쳐도 아내는 오히려 녀석을 두둔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짐승이 꼬리에 털이 없는 쥐였으니까. 비위가 강한 나였지만, 쥐의 오줌 지린내에 속이 메슥거렸다. 아무리 실험용 무균 흰쥐라 해도 오줌 냄새는 시궁창 쥐와 별다르지 않았다. 질색하는 우리 내외의 반응을 살핀 녀석은 위축되지 않고, 제법 비장하기까지 했다.


“얘들은 이제 실험용이 아니라 애완용이에요.”


생물학자나 수의사가 꿈이라며 학교 기숙사에서 과학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실험용 쥐를 키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별안간 집으로 데려와 애완용이라니! 강아지처럼 키우겠다는 말인가? 사연은 이랬다.

동아리 내 2, 3학년 선배들과 대망의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실험용 흰쥐에게 유산균을 먹여 장내 유산균 증가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장내 유산균 함량을 측정하려면 결국엔 흰쥐의 배를 갈라 해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막내가 뒤늦게 안 것이다. 녀석은 선배들과 언쟁을 벌였다. 자기 손으로 키운 쥐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다며, 생물을 살리려는 생물학자가 생물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이다.

야심차게 진행된 프로젝트가 졸지에 허사로 돌아가기에 선배들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을 터이지만, 녀석은 꿋꿋하게 맞섰고 집에 와서도 그토록 당당했던 것이다.

대학 기숙사에서 온 첫째 녀석이 흰쥐를 발견하고는 막내를 놀려댔다.


“애완용 하고 실험용 하고 뭐가 다른데? 네가 그런다고 실험 쥐가 애완 쥐가 되냐?”


필자가 어릴 적, 서울 변두리에 터가 넓은 집에서 개, 닭, 오리를 키웠다. 70년대만 해도 반려동물이란 단어가 없었다. 애완동물이란 단어는 부잣집에나 어울리는 사치 품목이었고, 사람이 키우는 가축은 결국 사람에 의해 처분당해야 하는 식용 가축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가축 중에서도 애완용이 있었다. 새끼를 낳는 암컷(종모견) 한 마리는 그 공로를 인정해 사실상 애완견 대접을 받았다. 다른 놈들과 같이 흙마당에서 키우는 건 다르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도중에 팔거나 식용으로 처분하지 않고 자연사할 때까지 키우다가 죽으면 땅에 묻어준다는 것이다.

몇 세대 이어진 강아지들을 상대하면서 나는 개가 짖는 소리만 들어도 어떤 기분인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개들 중에서 애완견 한 마리에게만 정을 주고, 나머지는 지나가는 똥개 취급을 해버렸다. 애완이냐 식용이냐는 순전히 인간의 선택이었다.


막내는 기숙사에서 외박 나올 때마다 흰쥐 통을 책가방처럼 챙겨 와서, 오줌 싼 신문지를 갈아주고 먹이를 주는 등 애완견 키우듯 지극정성이었다. 쥐들도 스스럼없이 내 팔다리 위를 기어 다니며 놀았다.


“엄마, 얘들 잠자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요?”


막내가 곤하게 잠든 쥐들을 보며 애정 어린 감탄사를 쏟아내자, 아내는 생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며 막내 등을 토닥이고는, 자꾸 보니 쥐도 볼만하다고 애써 헛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상전벽해다. 처음부터 막내가 동물 애호가는 아니었다. 유치원 때인가, 내가 강아지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하자, 동물이 어떻게 말을 하냐며 코웃음 쳤던 녀석이다. 소통하는 방법이 사람과 달라서 그렇지 분명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고 진지하게 설명했지만, 깨끗하게 ‘개무시’당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첫째도 인간이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위치한 영장류라고 배웠나 보다. 컴퓨터 게임이 훨씬 재미있다며 동식물을 하등생물 취급했다. 그맘때 ‘로또’ 사건이 벌어졌다.


저녁 식사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두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뒤늦게 돌아온 두 녀석은 ‘마을 강아지’가 생겼다고 흥분했다. 마을 아이들이 길 강아지를 발견했는데,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공동으로 키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을 아이들은 밥만 먹으면 비어있는 경비실 옆에 묶어 놓은 강아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학원 마치고 저녁에야 잠깐 들러 쓰다듬는 게 고작이라 개꼴은 말이 아니었다. 오물도 치우지 않고, 짖거나 울어대는 통에 민원이 쇄도했다.

며칠을 더 기다렸지만 끝내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어떤 개인가 싶어 막내와 함께 가보았다. 가장 연장자인 여자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있었고, 주위에 꼬맹이들이 둘러서서 쓰다듬고 있었다. 검고 긴 털의 제법 귀엽게 생긴 3개월쯤 되는 수컷이었다. 나는 ‘앗!’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강아지가 처음 본 내게 양쪽 입꼬리를 올리고 두 눈썹 끝을 내리며 빙그레 웃는 게 아닌가!


“개가 웃네!”

많은 개들을 보았지만 저렇게 분명히 웃는 표정을 짓는 개는 처음이었다. 내 말에 애들이 타박을 놓았다.


“아빠, 유치해.”

“정말이야. 정말 똑똑한 놈이야. 개의 세계에서는 아인슈타인급일걸.”


이번에도 나는 깨끗하게 무시당했다. 여자아이에게 네가 입양할 게 아니라면 이 아저씨가 데려가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자기 집에서 키울 거라며 자신하고는 데려가 버렸다. 하지만 다음날, 강아지는 또 빌라 앞에 묶여 있었다. 여자애가 키우겠다고 눈물로 간청했지만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강아지를 데려오자 두 녀석은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나는 터가 넓은 어머니 댁으로 강아지를 데려갔다. 남의 눈치 보는 빌라촌 보다야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야생이 개에겐 천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께 내가 본 개중 가장 똑똑한 녀석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키워달라는 덕담으로 받아넘기시며, 새끼도 못 낳는 수놈이고 팔아도 고기 근수도 별로 안 나가는 작은 종자라며 시큰둥해하셨다.

‘역시나’였다. 강아지는 상상보다 훨씬 똑똑했다. 어머니가 산책을 나가려 하면 강아지가 제 목줄을 자기가 물고 앞장을 섰다. 20여 년 넘게 개의 출산을 수없이 지켜봐 왔던 어머니셨지만 이 강아지는 사람 말귀를 다 알아듣는 거 같다며 신통방통해하셨다. 강아지 재롱 덕에 어머니는 하루가 적적하지 않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지은 강아지 이름을 ‘로또’였다. 굴러들어 온 복덩이란 뜻이었다. 과거 검둥이, 깜상, 누렁이, 흰둥이, 점박이에 비하면 파격적인 작명이 아닐 수 없었다. 로또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받아 세 달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 이놈이 혼자 빈집을 지키며 다른 강아지도 돌보는 게 아닌가. 가끔 빈 집에 들러 참치 통조림을 주면, 혼자 다 먹지 않고 남겨서 다른 개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기 밥을 나눠주는 개라니!

로또는 지금 12살이 넘었어도 왕성하게 산천을 뛰어다니며 어머니 곁에서 자식 노릇을 하고 있다. 막내는 로또가 똑똑한 걸 어떻게 내가 단번에 알았는지 신기해했다. 텔레비전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동물들과 교감하는 장면을 본 아이들은 동물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아날로그 세대로서 디지털 IT 세대인 아이들 교육을 고심하고 있었다. 만약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가장 큰 한 가지만 가르치라면 뭐가 좋을까?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나는 장수풍뎅이 두 쌍을 입양했다. 반들반들한 검은색 갑옷을 두른 엄지 크기의 수컷이 코 뿔을 치켜세우고 버티는 위엄 넘치는 자태는 기개를 뽐내는 전쟁터의 장수 같았다. 수컷들이 서열 싸움을 하느라 마주 달려 코뿔을 부딪히자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두 사내 녀석에게 잠재된 야생성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애들은 장수풍뎅이의 매력에 홀딱 빠졌다.

수많은 애완동물 중에 내가 장수풍뎅이를 고른 건 독특한 생김새와 격렬한 전투 때문만은 아니다. 비교적 짧은 수명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틈만 나면 장수풍뎅이 사육통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놈은 지금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고, 저놈은 서열 싸움을 걸고 있고, 요놈은 부끄럼을 많이 탄다고 내가 통역을 해주자, 아이들은 곤충에 성격이 있냐며 신기해했다.

한 쌍씩 사육통을 달리해 알 낳을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3개월쯤 지나자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암컷은 알을 낳느라 배지 톱밥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도 않았고, 대장 수컷은 움직임이 어눌해져 나무토막 위에도 제대로 올라가지 못했다. 며칠 뒤엔 대장 장수풍뎅이의 배가 하늘을 향해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아이들은 뒤집어주며, 요즘 먹이를 잘 안 먹는다고 걱정했다.

그날은 아이들이 아침부터 호들갑이었다. 대장 수컷의 다리 끝마디가 잘려 떨어진 까닭이다. 놀란 아이들은 우왕좌왕했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찾아봤는지, 알 낳는 암컷의 공격 때문인지 모른다며 대장 수컷을 다른 통에 격리하고 젤리 밥을 따로 주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다리가 하나 떨어져 나뒹굴었다. 당황해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놈 수명이 다 되었나 보다.”


큰 애가 삐뚤 한 글체로 통에 메모지를 붙여 놓았다.

‘풍뎅이가 아파요. 건들지 마세요.’

하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다리 끝마디가 모두 떨어진 대장 장수풍뎅이는 간간이 움찔할 뿐 기척이 없었다. 첫째 놈은 죽어가는 장수풍뎅이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 살짝 엿보니 녀석은 눈시울을 붉히며 죽지 말라고 그렇게 두 손으로 풍뎅이를 감싸고 염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감히 죽음을 막을까. 빛바랜 대장 장수풍뎅이는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첫째는 눈물을 그렁거리면서도 애써 속으로 삼켰다. 녀석들에겐 처음 당하는 사별이라 충격이 상당했음에 틀림없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죽은 풍뎅이를 화단에 묻어주고는 침울한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질문을 하려고 장수풍뎅이를 키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장수풍뎅이가 왜 죽었겠니?”


원인을 말해야 장수풍뎅이를 계속 키우게 해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애들과 선문답을 시작했다.


“밥을 잘 안 줘서요.”


아이의 답에 잘라 말했다.


“아니다.”

“방이 너무 추워서요.”

“50점.”

“흙을 제때 갈아주지 않아서요.”

“60점.”

“잘 돌봐주질 않아 외로워서요.”

“아니다.”


아이들이 이유를 댈 때마다 난 번번이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진전 없이 며칠이 지났다. 아이들이 따졌다.


“아빠, 안 키워도 좋으니 100점짜리 답을 말해보세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그건 태어났기 때문이지. 생물은 태어났으니까 죽는 거야.”


아이들은 허탈해했다.


“에이, 그게 왜 100점짜리야?”

“잘 생각해 봐. 네가 아무리 잘 돌보고 키워도 살아있는 생물은 언젠간 죽게 되어 있잖아. 살아있는 걸 사 올 때는 언제나 죽음도 같이 사 오는 거야. 왜 살아있는 것만 생각하니?”

“…….”

“엄마, 아빠도 언젠가 저렇게 될 거야.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갈라지고, 팔다리가 뒤틀리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꼬맹이들이 숙연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은 내 기억 속에 가족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다.

장수풍뎅이 사건이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후 두 아이의 태도는 예상치 못하게 갈렸다. 자기 손 안에서 죽음을 막지 못했던 큰 아이는 다시는 애완동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언젠가 죽을 텐데 너무 가슴이 아파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나 보다. 그리고는 지구 너머 먼 우주를 관찰하는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첫째 녀석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그렇게 도피해버렸다.

반면 둘째는 동물에 더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죽은 대장 장수풍뎅이 후손의 알을 받아 무려 12대나 키웠다. 자연수명이 다한 풍뎅이를 묻어주며, 죽음도 삶의 마지막 과정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는 생물학자나 수의사가 되어 동물을 돌보겠다며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과학 동아리에 들어 실험쥐를 사육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었다. 생물학자 건 수의사 건 배우는 학도 과정에서는 실험용 동물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막내는 한동안 고심했다. 실험용은 애초부터 키우지 말까... 그리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생물학자나 수의사를 아예 포기하겠다고. 막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나도 살생에 대해 해결을 보긴 했던가?


내가 초등학생 때다. 키우던 개가 암탉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목을 물린 암탉은 피투성이가 되어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숨었다. 겁에 질린 눈에, 바람 새는 소리로 꼭꼭 거렸는데, 목이 절반쯤 뜯겨 기도에서 공기가 새는 소리였다. 살려달라는 애절한 눈빛과 우는소리에 너무 가슴이 아파 수건으로 닭의 목을 동여매 주었다. 방에다 수건을 깔고 보살펴주었는데, 닭은 뽀얀 알을 낳고 보란 듯 내 눈과 마주쳤다. 고맙다는 인사였을까, 아니면 계속 알을 낳고 싶으니 살려달라는 애원이었을까. 부모님이 돌아오자 울먹이며 목에 수건을 동여맨 닭을 보이며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닭을 살펴본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살진 못하겠구먼.”


그날 저녁 밥상에 암탉 백숙이 올라왔다. 목 부근에 피가 엉겨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른들 눈엔 처음부터 가축용이었나 보다. 죽었으니 그냥 고기라며 어른들의 끈질긴 권유로 나는 닭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말았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눈물이 나지만 닭고기도 여느 고기와 같이 맛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삼키는 내 모습....

그동안 고기를 먹으면서도 그때 같은 죄책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감정을 어찌할 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잊은 게 아니라 잠재돼 있었다.


나는 축산 대학에 입학했다. 축산이란 식용동물을 대량 생산하는 산업이다. 가축을 사육하는 목적은 단 하나. 이윤창출이다. 내 수업료 대부분은 어머니가 개를 판 돈으로 충당되었다. 결국 나는 개 판 돈으로 대학을 졸업한 셈이다. 졸업 후, 내 손으로 키운 동물을 처단하거나 처분하는 일을 꺼려해 사육 분야 취업은 아예 포기했다.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 식재료인 고기 단계에서 일하는 직장에 취업했다. 도축된 소 도체와 돼지 도체를 냉장실 안에서 육질 판정하는 업무였다.

그런데 얄궂게도 파견 근무지가 도축장이었다. 피를 흘리며 도축되는 과정은 검사원(수의사)의 업무여서 다행히 직접 도축 장면을 지켜볼 필요는 없지만, 생명이 고기로 변하는 생사의 경계선 위에 서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방 도축장에서는 쇠망치로 소의 머리를 타격하여 도축하고 있었다. 살생은 도축 라인에 종사하는 도부들에게 일종의 화두였다. 소고삐를 잡는 머리 희끗한 김 노인이 쇠망치로 소의 머리를 때리는 타격 반장 박 씨를 가끔 이렇게 놀려댔다.


“네놈이야말로 진짜 백정이야. 도축장에서 백정은 딱 한 명뿐이라니까.”


박 씨는 발끈했다.


“무슨 소리라요? 같이 일하는 마당에 노인네만 쏙 빠지겠다고라?”

“이놈아, 나는 소고삐만 잡아주잖아. 쇠망치 내리치는 놈이 진짜 백정이지.”

“칫, 그렇게 따지 자면 나도 소를 죽인 적이 한 번도 없지라.”

“뭐라? 소머리에 망치질하는 놈이 네 놈 이잖어. 어디서 오리발이여.”

“아따 무식해요. 잘 생각해보시오. 망치가 죽였지, 내가 죽였소?”

“에이, 이 눔이 이젠 억지를 부리네.”

“억지라뇨? 그럼 소고삐만 잡았다는 사람하고 뭐가 다르냥께요? 나도 쇠망치만 휘둘렀을 뿐인디.”

“그럼 죽인 놈도 없는데, 소는 왜 죽었니?”

“나도 모르지라. 지가 죽을 때가 됐으니 죽은 거지라.”

“그럼 식칼 들고 살인을 해도, 식칼이 사람 죽인 거냐, 이눔아?”

“그럴지도 모르지라. 세상에 죽이는 놈만 있겠소? 죽을 놈이 있으니까, 죽이는 놈도 있는 거지라. 그리고 까놓고 말하자고요. 딴 놈들이 안 하려 하니까 내가 쇠망치 맡은 거 아닌 게라?”


누가 진짜 소를 죽였느냐 하는 언쟁은 술안주처럼 단골이었다. 명쾌한 결론은 없었지만 김 노인은 억센 수염을 매만지며 이렇게 말미로 몰았다.


“우리보다 더한 놈들은 그 고기를 사 먹는 놈들이여. 익지도 않은 스테이크를 삼지창으로 찍고 칼로 베어서 피 흘리며 질겅질겅 씹어 먹는 놈들. 우리는 소에게 잘 가라고 명복이나 빌지, 그놈들은 그런 생각이나 하겠어? 그러면서 우리들 보고 백정이니 뭐니, 다 썩어 문드러진 소리들이여!”


그러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옳소! 먹는 사람이 있으니까, 잡는 사람도 있는 거시여.”


그들도 살생이 좋아서 즐기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 산업의 한 분업을 담당하는 그저 일일 뿐이었다. 백번 동감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소고삐 잡은 김 노인과 다를 바 없으니까.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두 생명체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매일 살생은 불가피하다. 참으로 인간은 모순적 존재다. 살인과 전쟁으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서도, 한편으론 동·식물 생명까지 측은하게 여기다니. 이런 모순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우리 선조들은 이 난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살펴보니 ‘살생유택(殺生有擇)’이란 게 있었다. 불가피하게 최소한으로 살생하겠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툭하면 영토전쟁으로 백성들이 피를 흘릴 때, 삼국통일을 목표로 신라 화랑들이 섬겼던 계율이다. 바람대로 삼국통일 이후엔 영토전쟁으로 인한 희생은 사라졌다. 살생유택은 우리 집 막내에게 돌파구가 될지 모른다.


근래 들어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생물’때문이다. 그날은 소나무 오솔길이 일품인 뒷산을 걷고 있었다. 발바닥이 따끔거려 신발을 벗어 털자 쌀알만 한 돌조각이 툭 떨어졌다. 문득 뒤통수가 번쩍했다.


‘돌도 살아있네!’


산책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구 맨틀 저 안쪽에서 솟아오른 화강암, 북극 빙하의 숨결을 간직한 한 줄기 바람, 수만 년을 비바람에 씻겨 고와진 흙, 바늘 잎가지 청청한 아름드리 소나무, 떨어진 솔잎 사이로 머리를 쳐든 이름 모를 버섯…….

모두 무심(無心)하지가 않다. 화가가 화선지에 그린 사군자는 살아있다고 칭송하면서, 인간보다 역사가 오래된 자연물이 죽어있다는 단정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학시절 전공 시간에 해외 유학을 갓 마치고 돌아온 생화학 교수님께서 리포트를 낸 적이 있었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조사하라는 숙제였다. 유기물을 흡수하고, 산소로 호흡하고, 번식을 하고, 세포벽이 있고, 염색체가 있고, 수명이 있고…….

그런데 생물의 특성을 일부만 지닌,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가 적지 않다는데 꽤 놀랐다. 결국 이 리포트는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이분법 개념을 확고히 하는 데 기여하는 교과과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에 회의가 든 것이다. 생물, 무생물에 대한 과학적 구분은 순전히 인간의 일방적인 잣대가 아닐까? 반드시 수명이 있고 유전 생식을 따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쇠, 돌, 물, 공기, 플라스틱... 저마다의 존재 양식으로 살아있는 건 아닐까? 인간의 오만이 임의대로 감히 생명이 있다, 없다를 판결하는 건 아닐까?


애완용 쥐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막내가 친구로부터 여왕개미 한 마리를 분양받아 왔다. 이번엔 개미 왕국을 건설할 모양이다.


“개미 통 안에 흙과 물도 살아있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이번에도 막내가 코웃음을 쳤다. 분명 학교에서 무생물이라 배웠을 테니까.


나는 요즘 건물 신축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도축장과는 달리 여기엔 ‘생물’을 다루지 않는다. ‘무생물’이라 불리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암석이 깨지고, 흙이 파이고, 철근이 잘리고, 목재가 토막 난다. 모두 또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니 여기도 도축장과 다를 바 없다. 빙글빙글 도는 레미콘에서 쏟아지는 콘크리트를 보면서, 이 새로운 생명체들은 어떤 기분일까 가만히 응시해본다. 자갈이 석회 가루에 엉겨 붙어 답답해하는 건 아닐까? 석회 기둥이 대못처럼 박힌 대지가 신음하는 건 아닐까? 환경개발에도 살생유택을 적용해야 하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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